전날 류현진에게 충격적이었던 하루가 지나간 뒤, 같은 장소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활짝 웃었다. 다저스는 10월 21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 밀러 파크에서 열렸던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경기에서 승리, 7차전 혈투 끝에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등극했다.

선발투수 워커 뷸러가 4.2이닝 1실점으로 비교적 잘 던졌지만,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한 박자 빠르게 투수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지난 6차전에서 경기 후반 점수가 벌어지면서 선발투수 리치 힐을 패전처리로 투입하여 다른 투수들을 아낀 다저스는 7차전에서 클레이튼 커쇼까지 투입하며 남은 4.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의 투수 워커 뷸러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의 투수 워커 뷸러(자료사진) ⓒ EPA/연합뉴스


홈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었던 브루어스도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했다. 전날 5점 차 승리로 인해 불펜 에이스 조쉬 헤이더를 아꼈던 브루어스는 선발투수 줄리스 차신을 2이닝만 던지게 하고(2실점) 헤이더를 3회부터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3이닝 무실점).

헤이더에게 고전한 다저스, 헤이더 투입 전에 사실상 끝냈다

그러나 헤이더가 투입되었던 시점은 이미 다저스가 리드를 잡은 뒤였다. 이번 시리즈에서 헤이더에게 고전했던 다저스는 이번 시리즈에서 헤이더를 상대로 끝내 한 점도 내지 못했다(헤이더 올해 포스트 시즌 7경기 무실점, 다저스 상대 4경기 7.2이닝 12탈삼진 무실점).

6차전에서 류현진을 무너뜨렸던 브루어스 타선은 1회말 크리스티안 옐리치가 선제 솔로 홈런을 날리며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전날 패배의 충격을 잊지 않고 있던 다저스는 2회초 바로 매니 마차도의 기습 번트에 이어 코디 벨린저가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렸다(2-1). 벨린저는 4차전 끝내기 타점과 이 결승 타점의 활약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가 됐다.

헤이더가 조기 투입되었지만 브루어스 타선은 헤이더가 던지는 동안 추가 점수를 내지 못했다. 다저스는 5회말 2사에서 첫 타석 홈런을 기록한 옐리치의 타석을 앞두고 호투하던 뷸러를 일찍 내린 뒤 훌리오 유리아스를 투입했다. 전날 밤 할머니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리아스는 5회를 끝내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다저스 불펜이 브루어스 타선을 봉쇄하는 동안 타선은 헤이더가 내려가자마자 다시 점수를 벌렸다. 6회초 야시엘 푸이그가 스리런 홈런을 날리면서 사실상 시리즈 전체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다(5-1).

6회말에 투입된 라이언 매드슨이 7회말 2사까지 막은 다저스는 바로 마무리투수 켄리 잰슨을 조기 투입했다. 예년과 달리 그 동안 포스트 시즌에서 1이닝만 던졌던 잰슨을 올해 포스트 시즌 처음으로 1이닝을 초과해서 던졌다.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지만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였던 만큼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6년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5차전에서 다저스는 잰슨을 조기 투입한 뒤 클레이튼 커쇼가 9회에 등판하여 0.2이닝 세이브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잰슨이 조기 투입되자 5차전 승리투수였던 커쇼가 2일 휴식 후 9회의 아웃 카운트 3개를 잡아내며 시리즈를 끝냈다.

커쇼가 아웃 카운트를 잡아가는 동안 밀러 파크의 홈 팬들은 점점 표정이 굳어가고 침묵했다. 월드 챔피언 경험 없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1회(1982)가 우승 경험의 전부였던 브루어스는 1998년 내셔널리그로 옮긴 뒤 첫 리그 챔피언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102년 만의 리턴 매치, 레드삭스와 다저스의 진검 승부

다저스는 1988년 마지막 월드 챔피언 뒤 한 번도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르지 못하다가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챔피언 자리를 지키게 됐다. 이제 다저스는 30년 만에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되찾기 위해 1차전이 열리는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로 가게 됐다.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를 5차전에서 끝내고 다저스를 기다리고 있다. 정규 시즌 승률이 30팀 중 가장 높기 때문에 월드 시리즈에서도 홈 어드밴티지를 가졌으며 1,2,6,7차전은 펜웨이 파크에서, 3,4,5차전은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치르게 된다.

레드삭스와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대결 기록을 찾아보면 무려 102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16년 당시에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없이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정규 시즌 챔피언이 바로 월드 시리즈를 치르는 시대였다(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1969년 시작).

1916년 당시 다저스는 뉴욕 주 브루클린에 연고지를 두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로빈스라는 팀 이름을 사용했다. 다저스라는 팀 이름을 사용한 것은 1932년부터다. 1916년 당시 다저스는 팀 역사상 4번째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차지한 시즌이었으며, 레드삭스는 5번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는 그 유명한 베이브 루스가 레드삭스에서 투타 겸업을 하던 시대였다. 레드삭스는 1916년 월드 시리즈에서 로빈스를 꺾고 팀 역사상 4번째 월드 챔피언을 차지했다. 이후 레드삭스는 1918년 한 차례 더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뒤 2004년에 우승할 때까지 86년 동안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렸다.

이 때 우승에 실패한 다저스는 195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는데, 이 때가 뉴욕을 연고지로 했던 유일한 월드 챔피언 시즌이었다. 연고지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이후 다저스는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5번 들어올렸으나, 1988년을 마지막으로 2016년까지 28시즌 동안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레드삭스는 시리즈를 일찍 끝낸 덕분에 4일의 휴식 후 월드 시리즈에 임하게 된다. ALCS 5차전 선발투수였던 데이비드 프라이스도 정상적인 루틴으로 등판할 수 있지만, 1차전 등판 이후 복통으로 병원에서 쉬고 있던 크리스 세일이 1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서게 된다. 밤비노의 저주를 깨트린 2004년(와일드 카드)을 제외하고 2007년, 2013년 두 번의 월드 챔피언 모두 정규 시즌 승률 1위를 기록한 시즌이었다.

다저스는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게 되면서 이틀만 휴식한 뒤 월드 시리즈를 치르게 됐다. 다만 연장 13회까지 갔던 4차전에 비해서 7차전 경기는 6회에 사실상 승부가 갈리면서 투수 5명만 쓰고 4차전보다 다소 편하게(?)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뷸러, 유리아스, 매드슨, 잰슨, 커쇼). 체력적으로 불리하고 힐과 커쇼의 구원 등판으로 선발 등판 순서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시리즈에 있어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부진 만회할 기회 얻은 류현진, 등판 순서는 미정

류현진은 NLCS 6차전에서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 통산 첫 패전을 당했다. 인터뷰에서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자책했던 류현진은 팀 동료들이 7차전에서 승리하면서 월드 시리즈 선발 등판을 통해 NLCS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

다만 다저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선발로 등판하는 투수들의 순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선발 등판 기록만 봤을 때는 커쇼-류현진-뷸러-힐 순서였지만, 6차전에서 힐이, 7차전에서 커쇼가 구원 등판하여 1이닝씩 던지는 바람에 로테이션의 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상적인 선발투수 루틴은 경기에 등판한 뒤 4일의 휴식을 취한 후 등판하는 것이다. 류현진이 4일 휴식을 취할 경우 빨라도 월드 시리즈 2차전에나 선발 등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원정 2경기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2차전과 6차전 2경기 모두 원정으로 치르는 루틴이 아닌 다른 경기에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다저스는 1차전과 2차전에서 선발보다는 불펜의 힘을 믿고 시리즈를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6차전에 나왔던 힐이 3일 쉬고 1차전 선발을, 7차전에 나왔던 커쇼가 3일 쉬고 2차전 선발을 나오는 것이 두 선수에게 그나마 어느 정도 휴식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커쇼는 커리어 경력 중에 펜웨이 파크 등판 경험이 아직까지 없다.

7차전에 나왔던 뷸러가 5일을 쉬고 3차전에 나올 수 있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3,7차전의 중책을 맡았던 신참급 투수 뷸러가 월드 시리즈에서도 더 큰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일단 경험이 더 있고 선발 루틴이 적합한 류현진에게 3차전과 7차전 선발투수를 맡기고, 뷸러에게는 4차전 선발투수와 7차전 2번째 투수를 맡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다저스로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홈 경기로 진행되는 5차전 안에 시리즈를 끝내는 것이다. 홈 경기에 강한 류현진이 3차전 등판에 집중할 수 있으며, 설사 7차전에 등판하더라도 류현진 뒤에 모든 투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류현진에게는 한국인 최초의 월드 시리즈 경기 선발 등판을 통해 자신의 부진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LA 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이 지난 9월 11일(현지 시각) 신시내티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진행된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LA 다저스 투수 류현진(자료사진) ⓒ AP/연합뉴스


올 시즌 다저스는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끝에 내셔널리그 챔피언까지 올랐다. 한때 승패 마진 -10까지 떨어지며 지구 최하위까지 내려갔던 다저스였고, 규정 이닝을 넘긴 선발투수가 아무도 없었다. 정규 시즌 162경기를 다 치르고도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짓지 못하여 타이 브레이커까지 치렀고, 포스트 시즌에 선발로 등판한 투수 4명이 모두 1경기 이상은 고전했다.

류현진과 유리아스는 어깨 부상 이후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올해 포스트 시즌에 참가했고, 류현진이 충격적인 패전을 당했던 날 밤 구원 등판했던 유리아스가 할머니를 잃는 슬픔까지 맞이했다. 하지만 다저스는 류현진의 미안함을 덜어준 뒤 우승 기념 파티에서 유리아스에게 내셔널리그 챔피언 트로피를 전달하며 동료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한 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정규 시즌 최강의 팀이었던 레드삭스와 바닥을 치고 점점 더 강해진 다저스, 진정한 최강의 팀을 가리기 위한 승부는 24일 펜웨이 파크에서 시작된다. 한 해 동안 대본 없이 촬영되고 있는 드라마를 해피 엔딩으로 맞이할 월드 챔피언을 어떤 팀이 차지하게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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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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