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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네 학교에서 31년째 근무하고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 두 곳, 특목고 한 곳, 해외 한국국제학교 한 곳. 네 학교를 근무하면서 내가 맡은 업무는 대부분 진학지도였다. 심지어 해외 한국국제학교에서도 진학지도를 담당했다.

진학지도가 신명나기 시작한 것은 수시전형이 생기면서부터이다.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학생의 전반적인 학교생활 심지어 학생이 놓인 환경까지 헤아려 선발하기 때문에 교사의 할 일 많아졌다. 그런데도 재미있었다.

수시전형이 활성화되면서 각 대학에서 진학설명회가 잇따라 열렸다. 그때 우리나라 최고 대학 입학처장님으로부터 들은 강연은 나의 진학지도의 지표가 되었다.
 
"우리는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뽑고 싶다. 그렇게 하려고 정말 노력한다. 그런데 전형 결과를 보고 내신으로 선발하였다고 비난한다. 그것은 우리가 뽑고자 하는 창의적, 융합적 인재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위해 내신을 잣대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내신 위주로 선발하였다는 오해를 받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뽑고 싶다. 이제 시대가 급변하고 있으니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기르는 학교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달라."


 
나는 그 교수님의 말씀에 백퍼센트 공감하여 학교에서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고민 끝에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만들기 위해 '논문쓰기' 활동을 만들었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그 분야를 스스로 찾아 공부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진로와 연계 짓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힘들어 했지만 그 힘듦도 즐길 줄 알았다. '논문쓰기' 활동을 참여한 한 아이의 활동 후기는 나를 행복으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그냥 공부하는 것도 물론 재미를 느낄 때가 있지만 '논문쓰기'는 모든 과정에 내가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창조의 재미랄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 아닌 뭔가 의미 있는 일 하나는 하고 있구나라는 뿌듯함도 느꼈다.

또, 언젠가부터 꿈이 없어져 특정한 일에 몰두한 기억이 오래되었던 나였지만 이번 '논문쓰기' 활동에는 정말로 열정을 쏟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논문 생각을 끊을 수 없었고 힘들고 지쳐서 보기도 싫다가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내 치열한 고민에 빠져드는 내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니 나 또한 행복했다. 주말마다 학교에 나와 '논문쓰기' 지도하는 나를 보고 주위 선생님들은 고생한다면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고생을 즐기고 있었다. 발표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는 그 순간의 긴장감이 좋았고, 자기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종합전형 확대에 고개가 갸우뚱

수시전형이 종합전형이라는 이름으로 대폭 확대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종합전형은 '또는'이 아니라 '그리고'이다. 학업 또는 활동이 아니라 학업 그리고 활동이다. 그런데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또는'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물론 학업이 조금 부족한 것은 활동으로 메울 수 있지만 그 범위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게 넓지 않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종합전형은 많은 부담이 된다. 학업도 열심히 해야 되고 그에 다른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많은 학생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 16일 MBC PD수첩 '가짜 학생부'를 보면서 대입 수시전형 가운데 종합전형은 대폭 축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확신했다.

종합전형을 대폭 축소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학생 활동의 진위 여부를 가릴 능력을 대학에서 상실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학생들의 '논문쓰기' 활동이 대학에서 주요한 평가의 잣대로 알려지면서 사교육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사교육에서 학생들의 논문을 대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논문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논문쓰기' 활동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 어느새 사교육이 이를 점령하고 한걸음 더 깊게 들어가 교묘하게 꾸며낸다. 어떨 때는 학교를 앞서 학생의 활동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학생은 왜 이러한 활동을 했을까', '학생의 활동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학생의 활동은 자신이 했나, 꾸며낸 것인가' 등을 평가하는 것은 대학의 의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대학에서 이를 외면하고 있다.

학생의 능력이 아닌 교사의 서술 능력

종합전형을 대폭 축소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학생의 활동이 교사의 서술 능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학생의 활동이 학교에서 과장하여 서술하는 경우, 정확하게 서술하는 경우, 또 외면당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의 활동을 과장하여 서술하고 있다. PD수첩 보도에 의하면 학생들 74퍼센트가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읽지 않는 책을 읽은 것으로, 하지 않은 활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는 학생의 모습마저도 바꾸는(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질문도 제대로 못하는 학생인데, 궁금증이 있으면 교사를 귀찮게 할 정도로 질문을 통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적극적인 학생임) 웃지 못할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있어 더더욱 그렇다. 1등급은 10줄, 2등급은 7~8줄, 학생들의 활동 상황이 내신에 의해 등급화 되고 있다. 또한, 종합전형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가 너무 낮다는 것도 이 전형을 대폭 축소해야 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PD수첩에 의하면 종합전형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는 16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84퍼센트는 이 전형을 불신하고 있다.

종합전형은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종합전형이 대학입시의 주요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정시 인원이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내신이 부족한 학생들은 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대학은 과부하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학생이 애써 한 지적 활동을 믿을 수 없다하여 입시에 반영하지 않고, 일부 활동들은 진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게 되면서 사교육에 점령당하고 있다.

답은 정해져 있다. 학생의 활동, 학생의 창의적, 융합적 수준은 면접으로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수준과 진위 여부를 가려 낼 수 있는 면접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열쇠는 대학에서 학생의 활동 수준, 진위 여부를 담당할 수 있는 인원만큼 종합전형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대학에서 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고 있지 못하면 종합전형은 마땅히 폐지하여야 한다.

태그:#종합전형, #수시, #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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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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