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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향 시인이 18일 열린 '향림 논두렁 축제'에서 어린 농부들에게 시 낭송을 들려주고 있다.
 조계향 시인이 18일 열린 "향림 논두렁 축제"에서 어린 농부들에게 시 낭송을 들려주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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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향림 논두렁 축제'에서 어린 농부들이 탈곡 체험을 하고 있다.
 18일 "향림 논두렁 축제"에서 어린 농부들이 탈곡 체험을 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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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올라와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시골 고향이라는 모판에서 뽑혀와 서울에 모심기되어 살고 있지만 이 도시 속에서 알찬 풍년의 가을걷이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메뚜기 참새 떼도 거들어 농약 없는 논빼미 문전옥답처럼 매연 없고 오염 없고 미움 없는 우리 도시 우리 동네 실하게 알곡을 맺게 한 것처럼 이 가을, 심어놓은 일마다 무탈하고 알찬 결실을 거두게 하옵소서."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향림도시농업체험원'(아래, 향림원)에서 18일 열린 논두렁 축제는 시 낭송으로 시작됐습니다.

조계향 시인은 김성규의 시를 각색해 낭송한 '우리 삶에도 풍년들게 하옵소서!'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벼논에 쓴 물, 물꼬를 통해 이웃 논들에게도 나누어 쓴 것처럼 어려운 이웃들과 쌀 내음 밥 내음 함께 맡게 해"달라면서 "우리나라의 살림살이도 풍년 되게" 해달라고 기원했습니다.
 
'향림퉁소전통문화반' 회원들이 퉁소와 장구, 북으로 풍년가와 농부가 등을 반주하고 있다.
 "향림퉁소전통문화반" 회원들이 퉁소와 장구, 북으로 풍년가와 농부가 등을 반주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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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에 풍년이 왔네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좋구 좋다


도시에 풍년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풍년가를 부르고 반주한 이들은 향림원의 도시농부들입니다. 글 쓰는 도시농부이자 국악지도사인 정혁기(64)씨에게 퉁소를 배운 '향림퉁소전통문화반' 회원들이 퉁소와 장구, 북으로 풍년가와 농부가 등을 반주하며 신명을 돋구는 가운데 향림 논두렁 축제의 본 행사인 벼 베기가 시작됐습니다.
 
어린 농부들이 도시농부들의 벼 베기를 구경하고 있다.
 어린 농부들이 도시농부들의 벼 베기를 구경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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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베기를 하고 있는 도시농부
 벼 베기를 하고 있는 도시농부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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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평 규모의 향림원 논에는 고개 숙인 벼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논두렁에 들어간 도시농부들이 낫으로 벼를 벴습니다. 어린 농부들은 탈곡을 체험했습니다. 도시농부들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수확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논두렁 축제 참가자들에겐 연잎 밥과 바람 떡, 오곡강정 등의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수확의 기쁨과 나눔의 정이 깊어졌습니다.

향림원을 운영하는 'S&Y도농나눔공동체' 문대상(75) 대표는 "작년엔 172Kg을 수확했는데 올해도 그 정도 수확이 예상된다"면서 "수확한 쌀은 저소득층 이웃들과 향림원 도시농부들에게 나누어드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벼 베기와 탈곡 등의 체험을 통해 어린이들에겐 농사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도시농부들에겐 공동체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논두렁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면서 "풍년을 위해 땀을 흘려준 도시농부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습니다.
 
지난봄의 모내기.
 지난봄의 모내기.
ⓒ 정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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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의 모내기.
 지난봄의 모내기.
ⓒ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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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모내기를 한 도시농부들은 향림원 벼들을 친환경으로 재배했습니다. 어느 날, 백로가 도시에 날아들었고 쨍쨍한 햇볕이 곡식을 익게 했고 비바람도 몰아쳤습니다. 곡식이 쌀이 되고 밥이 되기까지 도시농부들은 땀을 흘렸고 하늘은 그 수고를 갸륵하게 여겨 풍년이 들게 했습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수고할 뿐입니다. 도시의 삶이 흉흉한 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서 땀을 흘리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충남 대천이 고향인 김용제(76·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씨는 1997년부터 3년 연속 벼 다수확왕을 차지했던 일등 농사꾼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촌을 떠나야했습니다. 2000년 상경한 김씨는 농사에 대한 향수를 도시농사로 달랬습니다. 그가 농사꾼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덕분에 향림원에 풍년이 든 것입니다.
 
벼들에게 분무기로 한방 영양제를 주고 있는 도시농부.
 벼들에게 분무기로 한방 영양제를 주고 있는 도시농부.
ⓒ 정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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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 날아든 백로.
 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 날아든 백로.
ⓒ 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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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으로 재배한 향림원의 벼들은 한방 영양제를 먹고 자란 귀한 나락입니다. 사람도 기력이 쇠하면 한약을 먹듯이 벼들에게도 한방 영양제를 뿌리면 면역력이 강화되고 힘이 생겨서 병충해도 생기지 않고 잘 쓰러지지도 않습니다. 지난 여름, 분무기로 한방 영양제를 치는데 어떤 사람이 농약을 뿌린다고 해서 그 사람 보는 앞에서 분무기에 담긴 한방 영양제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일화를 들려준 김씨는 "세상이 아무리 달라진다고 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라면서 "고향 농촌에서 벼를 벨 때면 깃발을 꽂고 징을 치면서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한바탕 놀았다. 두레 공동체의 미풍을 도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힘들어도 전통 방식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가을 논에서 노는 어린 농부와 허수아비.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가을 논에서 노는 어린 농부와 허수아비.
ⓒ 정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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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축제를 주최한 은평구(김미경 구청장)는 "향림원은 서울시 최초 도시농업체험원으로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문화와 복지가 어우러진 체험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면서 "전통 음악과 함께하는 벼 베기 행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눔의 즐거움과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도시에 빌딩과 아파트와 자동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는 땅을 투기 대상으로 취급했지만 땅은 도시농부들을 친구로 삼았습니다. 이 도시에도 텃밭이 있고, 논이 있고, 농부들의 땀이 있었기에 풍년가가 울려 퍼진 것입니다. 이제, 향림원의 텃밭과 논과 도시농부들은 생명의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내년 봄이 오면 도시농부들은 텃밭과 논에 곡식을 심으면서 회색 도시를 녹색으로 물들일 것입니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봄.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봄.
ⓒ 서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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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향림도시농업체험원, #S&Y도농나눔공동체, #논두렁축제, #벼 베기, #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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