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부 243cm, 여자부 224cm 높이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경기를 벌이는 배구에서 키와 높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체조건이 좋은 중국이나 유럽팀들이 세계 무대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는 비결이다. 선명여고 2학년생 정호영이 '리틀 김연경'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이유도 190cm라는 축복 받은 신체조건을 가진 윙스파이커이기 때문이다.

실업배구 시절 장소연과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이라는 걸출한 센터진을 겨울리그 5연패를 달성했던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지난 2014년 출산 후 잠시 배구계를 떠나 있던 김세영을 영입했다. 기존의 양효진과 함께 '190cm 트윈타워'를 구축한 현대건설은 2014-2015 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무려 4시즌 연속 팀 블로킹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지난 4년 동안 배구팬들에게 현대건설은 언제나 '높이와 블로킹의 팀'이었다.

하지만 지난 5월 FA자격을 얻은 김세영은 V리그 높이의 평준화를 위해(?) 6개 구단 중 블로킹 높이가 가장 낮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이적했다. 아직 양효진이 건재하지만 '트윈타워'를 앞세워 높이의 배구를 추구하던 현대건설의 시즌 운영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매 시즌 우승 후보로 거론되면서도 최근 두 시즌 동안 챔피언 결정전조차 오르지 못했던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다시 우승후보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 부상 후, 급격히 무너져 버린 현대건설
 
 현대건설의 대체불가 주전 센터 양효진은 지난 시즌에도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현대건설의 대체불가 주전 센터 양효진은 지난 시즌에도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 한국배구연맹

 
2015-2016 시즌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과 국내 최고의 라이트 공격수 황연주, 그리고 압도적인 높이를 앞세워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2016-2017 시즌 정미선, 고유민의 부상에도 제대로 된 백업멤버들을 키우지 못했고 염혜선 세터(IBK기업은행 알토스)와 양효진도 잔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4위로 추락했다. 결국 양철호 감독은 시즌이 끝난 후 사임하며 팀을 떠났다.

현대건설은 작년 4월 90년대 명세터 출신의 SBS스포츠 해설위원 이도희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도희 감독은 GS칼텍스 KIXX의 조혜정 전 감독,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에 이은 V리그 역대 3번째 여성 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도희 감독 부임 한 달 후 부동의 주전 세터였던 염혜선이 기업은행으로 이적했다. 이도희 감독은 프로 4년 차가 되는 유망주 이다영을 주전 세터로 낙점하고 집중 과외에 들어갔다.

FA시장에서는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비와 서브리시브를 보완하기 위해 여자배구 최고의 살림꾼 황민경을 영입했다.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고려했던 한유미도 '보상선수 지명 후 트레이드'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재영입 후 한 시즌을 더 뛰도록 설득했다. 여전히 건재한 최강 센터진과 언제든지 제 몫을 해주는 검증된 공격수 황연주, 여기에 황민경이 더해진 현대건설의 멤버구성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시즌 중반까지 도로공사, 기업은행과 선두 다툼을 벌이던 현대건설은 지난 1월 30일 외국인선수 엘리자베스 캠벨이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며 중도 이탈했다. 현대건설은 부랴부랴 체코 출신의 소냐 미키스코바를 영입했지만 소냐는 공수에서 엘리자베스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결국 현대건설은 시즌 마지막 10경기에서 2승8패로 부진했고 플레이오프에서 기업은행에 패하며 시즌을 마쳤다.

현대건설이 가진 전력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즌이었지만 V리그 여자부 최고의 스타 양효진의 활약은 지난 시즌에도 반짝반짝 빛났다. 양효진은 지난 시즌 세트당 0.87개의 블로킹으로 9시즌 연속 블로킹 부문 1위에 올랐고 485득점은 전체 7위, 국내 선수 3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었다. 양효진이 날개 공격수들에 비해 공격시도 자체가 적은 중앙 공격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효율이 아닐 수 없다.

김세영 떠난 현대, 기존 선수들 똘똘 뭉쳐야 좋은 성적 나온다
 
 '흥부자' 이다영 세터가 지난 시즌보다 더 성장한다면 현대건설의 성적도 그만큼 더 상승할 수 있다.

'흥부자' 이다영 세터가 지난 시즌보다 더 성장한다면 현대건설의 성적도 그만큼 더 상승할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김세영이 팀을 떠났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풀타임을 뛰어주던 김세영의 부재는 큰 손실임에 분명하다. 이도희 감독은 센터진의 공백을 줄이기 위해 라이트와 센터를 오가는 정시영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 김세영이 높이를 이용한 공격과 블로킹에서 강점을 보이는 선수라면 정시영은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앞세워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이다영 세터의 토스워크가 더욱 중요하다.

현대건설은 다른 구단과 달리 공격력이 보장된 황연주를 주전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브리시브가 가능한 외국인 선수가 필요하다.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난 2011-2012 시즌 GS칼텍스 소속으로 12경기를 뛰었던 레베카 페리를 지명했다. 페리는 190cm의 신장과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터키 리그를 두루 거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서브리시브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지는 뚜껑을 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지난 시즌 3위를 하면서 신인 드래프트에서 4순위 지명권을 얻은 현대건설은 경남여고의 정지윤을 지명했다. 황연주가 어느덧 한국나이로 30대 중반을 향하는 만큼 여고부 최고의 윙스파이커 박혜민(GS칼텍스)을 지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현대건설까지 순서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지윤 역시 경남여고 시절 레프트와 라이트, 센터까지 두루 소화했던 만능 선수이기 때문에 성장 속도에 따라 현대건설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시즌 주전 세터로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던 이다영의 성장도 현대건설 경기를 지켜보는 흥미요소다. 물론 경험이 풍부한 이효희 세터(도로공사)나 염혜선 세터에 비하면 아직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만 179cm의 좋은 신체조건과 빠른 성장속도는 분명 한국 여자배구의 차세대 세터로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다만 아무리 젊은 세터라 해도 긴 시즌을 버티기 위한 체력관리는 이도희 감독이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흔히 여자배구가 흐름과 분위기를 많이 탄다고 하지만 현대건설은 흐름과 분위기를 더욱 심하게 타는 팀이다. 지난 시즌 개막 후 첫 9경기에서 7승2패로 시작했다가 마지막 10경기에서 2승8패로 무너진 것이 그 증거다. 이번 시즌에도 현대건설은 좋은 흐름을 타면 그 흐름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원인을 빨리 파악하고 그 차이를 줄여나갈 수 있다면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더욱 안정된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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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2018-2019 도드람 V리그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이도희 감독 양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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