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1 16:44최종 업데이트 18.10.21 16:44
 

백산상회 1914년 부산 중구 동광동에 설립한 백산상회. ⓒ 독립기념관

 
박재혁이 사는 부산에서도 대동청년단이라는 비밀지하단체가 결성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 조직된 이 단체는 1920년대 초까지 활동하였다. 부산 동래에서 결성되어 만주지역으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대동청년단은 1910년 10월 안희재ㆍ서상일ㆍ이원식ㆍ남형우 등의 주도하에 17세부터 30세 미만의 청소년 80여 명으로 조직하였다. 


단규(團規)는 단원은 반드시 피로써 맹세할 것. 새 단원의 가입은 단원 2명 이상의 추천을 받을 것. 단명이나 단에 관한 사항은 문자로 표시하지 말 것. 경찰 기타 기관에 피체될 경우 그 사건은 본인에만 한하고 다른 단원에게 연루시키지 말 것 등으로 정하였다.

단원은 단장 남형우, 부단장 안희재(2대 단장), 단원 서상일ㆍ윤현진ㆍ이호연ㆍ장건상ㆍ윤병호ㆍ이수영ㆍ이경희ㆍ최병찬ㆍ윤경방ㆍ차병철ㆍ백광흠ㆍ이극로ㆍ김갑ㆍ박영모ㆍ윤상태ㆍ오상근ㆍ김사용ㆍ서세충ㆍ신백우ㆍ박중화ㆍ윤세복ㆍ신성모ㆍ신팔균ㆍ민강ㆍ최윤동ㆍ송전도ㆍ김관제ㆍ최완ㆍ배천택ㆍ신상태ㆍ곽재기ㆍ김흥권ㆍ이범영ㆍ이병랍ㆍ박광ㆍ서초ㆍ김홍량ㆍ최인환ㆍ김동삼ㆍ김삼ㆍ고병남ㆍ김규환ㆍ김희태ㆍ임현ㆍ남백우ㆍ김기수ㆍ신채호ㆍ이시열ㆍ고순흠ㆍ이학수ㆍ이우식ㆍ김용환ㆍ이형재 등 54명의 명단이 밝혀져 있다.

영남지역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여타 지역 출신들은 대체로 신민회 계열이었다.

즉 신민회ㆍ교남교육회ㆍ달성친목회ㆍ조선국권회복단ㆍ백산상회와 연관이 있는 중소지주ㆍ부농ㆍ부상 출신이었으며, 신사상과 신지식을 수용하고 계몽운동에 참여한 지식인들이었다. 1910년대 일부 단원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항일독립운동 진영에 합류하였으나, 대부분 국내에서 활동하였다.

3ㆍ1혁명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ㆍ만주지역의 독립군단체 및 의열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일부는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하여 1919년 7월의 조선노동문제연구회 조직과 1920년의 조선노동공제회 조직에 가담하였다. 

독립운동 방략은 국내외운동에 역점을 두고 인재 육성과 군자금의 조달,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락에 주력하였다. 독립운동의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각지에 신교육기관을 설립하였으며, 기미육영회를 조직하고 유망한 청소년의 해외유학을 통해 국권회복운동의 동량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군자금의 조달과 국내ㆍ외의 연락활동은 동래의 백산상회 지점 또는 연락사무소가 주요 거점이 되었다. 대구 서상일의 태궁상회, 서울 이수영의 미곡상, 봉천연락사무소는 이해천의 해천상회가 담당하였다. 이외 왜관 윤상태의 향산상회, 통영 서상호의 미곡상(정미소), 원산의 원흥상회, 마산의 원동상회 및 환오상회도 연계되어 있었다. 

3ㆍ1혁명 시에는 만세시위운동의 지방 확산에 노력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활동 목표로 삼고, 연통제의 경상도 조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단원들이 크고 작은 독립운동에 연루되기도 하였으나 노출되지 않았고, 1945년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주석 1) 박재혁은 성향으로 보나 사업상으로 보아 부산대동청년단과 연계되었을 것이다.  

주석
1> 권대웅, <대동청년단>, <한국독립운동사사전(3)>, 69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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