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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협력이 진척될 때마다 '한미공조 균열' 혹은 '남북관계 과속'을 지적하는 보도가 넘쳐난다. 심지어는 외교부 장관이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을 했다가 사과하고 취소했는데도 '한미공조 삐걱' 비판이 나온다.

균열을 지적하는 쪽은 미국이 대북제재 유지 입장인데 한국이 이를 거스르고 있다고 본다. 북한 핵 문제의 당사자인 미국과 협조하지 않으면 핵 문제 해결도, 평화체제 정착도 불가능하므로 한미공조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에 큰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조'란 건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한국만 미국을 돕는 게 아니라, 미국도 한국을 도와야 그게 한미공조다. 그렇게 보면 한미공조는 일찌감치 깨질 위기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 5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취소 서한을 공개한 걸 뉴스를 통해 알았다. 미국 측이 미리 알려주지 않고 발표와 거의 동시에 주미한국대사관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공조를 다짐한 지 딱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이 공조를 이탈해도 비판은 한국 정부로 향하기 일쑤다. '왜 몰랐냐'는 것이고, 결국 '외교 무능' 프레임으로 이어진다. 미국과의 불화는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한국의 현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한국 언론으로부터 한미공조 이탈 여부에 대해 감시를 받고 있다시피 한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공조 이탈에 불만을 제기하기 힘든 이유다.

'한미공조'를 '조화와 병행'으로 대체하려 했던 김영삼 정부
 
1993년 6월 27일 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최근 나오고 있는 기사들과 비슷하다. '한미 북핵공조 균열 우려'.
 1993년 6월 27일 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최근 나오고 있는 기사들과 비슷하다. "한미 북핵공조 균열 우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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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와 관련해 '한미공조' 혹은 '북핵공조'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자주 쓰이기 시작한 것은 1차 북핵위기가 있었던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다. 집권 중반기부터 김영삼 정부는 한미공조를 '조화와 병행'이란 말로 대체하려 했다. 한미공조 하에서는 북미 간 협상에 한국의 이익을 반영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3년 6월 27일 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최근 나오고 있는 기사들과 비슷하다. '한미 북핵공조 균열 우려'.

그해 6월 11일 나온 북미공동성명은 북한이 NPT 탈퇴를 유보하고, 미국은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양측의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지지 내용도 담겼다. 김영삼 대통령은 영국 BBC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 결과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얘기였다.

이 기사는 한국 외무부가 인터뷰 내용을 축소하기에 부심했다고 전하면서 "미국이 김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을 것이 뻔한 데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북한 핵 문제에 관한 한미공조체제는 결정적으로 흔들릴 것이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2월 21일 자 동아일보 '한미 북핵공조 어떻게 돼가나'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현재까지는 한미 간 공조체제가 원만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북한-미 3단계 회담에 이어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개선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정치협상단계에 접어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제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결국 이렇게 됐는데,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한국은 협상에서 배제된 채 경수형 원자로 비용만 대는 상황이 됐다.

정세현 "한국의 견제 막으려 미국이 만든 말이 한미공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2018.6.12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 문 대통령, 북미정상회담 마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2018.6.12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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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에 나온 공저 <담대한 여정>에서 다음과 같이 '한미공조'라는 말의 정치적 의미를 설명했다.
 
"미국으로선 한국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동안 동맹이란 말은 안보동맹(security alliance) 의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만든 말이 '한미공조'입니다. 우리가 사사건건 미국에 엇박자를 내니까. '이렇게 가면 안 된다. 한미가 공조(coordination)를 해야만 한다. 북핵 문제를 한미공조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한국이 미국을 견제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말이라는 겁니다."
 
1995년부터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조화와 병행'이란 말이 등장한다. 정 전 장관은 "그나마 우리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해서 나온 표현"이라며 "그런데 그게 오래가진 못했다, 워낙에 그땐 판이 그랬다"고 평가했다.

한미공조 프레임으로 가장 자주 비판과 공격에 시달렸던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도 자주 '찰떡 공조'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UN 제재 등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에 한미공조를 활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공조를 중시하고 있지만 이전 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7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에 대해 한미 사이에 전혀 이견이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부부 사이에도 서로 생각의 차이가 있고, 뭐 애들 진학 문제, 집 문제,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혼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사전협의는 충실하게 하되 미국의 '승인'이 없더라도 추진해야 할 일은 한다는 기조로 읽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다른 '한미공조'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상황 상황마다 한미공조 프레임을 활용한 비판과 반대는 줄을 이을 것이고, 앞으로도 '엇박자' '균열' '파열음' 등이 들어간 기사제목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남북 철도·도로 연걸 착공식 개최 합의에 대한 17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 미 국무부의 논평을 인용해 미국의 우려를 전달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걸 착공식 개최 합의에 대한 17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 미 국무부의 논평을 인용해 미국의 우려를 전달했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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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한미공조 균열' 기사가 계속된다면

남북의 새로운 합의나 협력 조치가 발표되는 현장에서도 '이런 것 하기 전에 미국의 동의는 받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이럴 땐 기자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왜 한미공조를 깨려고 하느냐'라고 물으면 "한미공조는 무엇인가"라고 답하라. '동맹끼리 보조를 맞춰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 아니냐'고 묻거든 "동맹이란 무엇인가"라고 답하라. '서로의 이익을 위해 동일 행동을 취하기로 국가 사이에 약속한 게 아니냐'고 묻거든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답하라. '국가는 영토, 주권, 국민으로 구성된다'고 답하거든 "주권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물어라.

태그:#한미공조, #란무엇인가, #균열,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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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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