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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식이 심화반에 들어가 온갖 특혜를 받을 땐 당연하게 여겼을 분들이 뭔 일이래요?"

경찰 수사와는 별개로 매일이다시피 벌어지고 있는 강남 S여고 교문 앞 시위를 본 한 아이의 일성이다.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울분을 토로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보는 그의 삐딱한 시선이 읽힌다. 교문 앞 그들은 어쩌면 지금 '불의'에 맞서고 있는 게 아니라, '불이익'에 저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조롱까지 튀어나왔다.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색안경 끼고 보는 이유는 뭘까. 교육 관련 시민단체는 예외로 하더라도, 손에 촛불을 든 사람들 십중팔구는 그 학교 심화반 학생들의 학부모들일 거라고 단언했다. 중하위권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최상위권의 순위 경쟁에 별반 관심이 없다는 게 근거다. 한 끗 차이로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밀렸다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7~8등급 아이들에게는 그마저 꿈에서나 가능한 성적이기 때문이다.

쌍둥이 자매가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가로챘다는 건 중대한 범죄지만, 그로 인해 직접적 피해를 봤다고 여기는 경우는 최상위권 아이들일 거라는 생각에서다. 되레 그들 역시 학교의 특별한 관리를 받아왔을 텐데, 왜 그땐 잠자코 있었는지를 되물었다. 중하위권 아이들을 들러리 삼던 그들이, 이번 일로 자녀가 쌍둥이 자매의 들러리였다 생각에 발끈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개 1등급의 기준인 상위 4% 이내에 드는 최상위권의 경우, 학교마다 '몰아주기'가 관행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학원이 아닌 다음에야 공식적으로 '심화반'이나 '특별반', '연고대반' 등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학교는 드물지만, 최상위권 학생들을 별도로 뽑아 특별 관리해주지 않는 학교는 거의 없다.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은 그들이 좌우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예컨대, 이번 일처럼 대놓고 시험문제를 빼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명문대 진학이 가능한 아이들을 위한 '깨알 배려'는 학교마다 차고도 넘친다. 그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면 스스로도 '모교를 빛낸 인물'이 되고, 덩달아 학교도 명문고라는 찬사를 받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이 낡고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오늘도 전국의 모든 학교를 뒤덮고 있다.

수상 경력을 채울 수 있도록 각종 교내 경시대회 참가에 우선권을 주고, 자율동아리도 적성이나 흥미보다 내신 성적에 따라 구성되는 게 보통이다. 아이들이 이미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교사가 부러 유도하지 않아도 '그들만의 리그'는 자연스럽게 조직된다. 당장 담임교사와의 진로, 진학 관련 상담 횟수부터 성적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다.

최상위권의 경우 자기소개서 첨삭지도에 신경을 더 쓰고, 진로탐색활동이나 봉사활동이 진학하려는 대학의 지원에 유리하도록 맞춤형 지도가 이뤄진다. 애초 과목을 개설할 때 내신 1등급이 나올 수 있도록 수강 인원을 조정하는 건 기본에 속한다. 생활기록부를 채울 비교과 영역 활동의 양과 질은 내신 성적과 정확히 비례한다. 어느덧 관행으로 자리 잡은 명백한 특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험지 유출 사건에 경악하면서도, 지금껏 최상위권 아이들이 당연시하며 누려온 온갖 특혜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최상위권 아이들끼리의 피 말리는 경쟁이 낳은 극단적인 부작용이라는 시각이 많다. 쌍둥이 자매와 교사인 아버지의 일탈로만 한정해 단죄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매일 교문에 나와 공정과 정의, 참교육을 외치는 학부모들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신 자녀에게 직접적 피해가 없다면, 밤마다 나와 촛불을 들기는커녕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을 거라고 확언했다. 만약 그들이 학교로부터 온갖 특혜를 누려온 최상위권 아이들의 학부모라면, 그들이 팻말마다 적은 교육적 가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대화가 이어지자 불똥이 학부모가 아닌, 일부 최상위권 아이들의 행태에 대한 불만으로 튀었다. 학교로부터 그들이 받는 특혜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는 지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학교로부터 받는 관심과 혜택을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여기며, 특혜 운운하는 걸 두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괜한 트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중하위권 아이들의 시각은 다르다. 성적이란 게 애초 출발선이 다를 뿐 아니라, 한 번 뒤처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복불복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와는 달리, 고1때 내신 등급이 고3때까지 거의 변동 없이 이어지는데, 아이들은 고등학교 내신에도 '신분제'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입학할 때 최상위권이면 큰 사달이 나지 않는 한 졸업할 때까지 '신분'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물론, 고등학교 3년 동안 하위권의 수렁을 벗어나 상위권에 편입한 경우가 있다면, 홍보용 '미담 사례'일 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몇몇 아이들은 이것이야말로 최상위권이 학교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 아니겠느냐며 나름의 논리를 들이댔다.

더욱이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덕에 그들의 부모는 학교 안팎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갖는다. 학교운영 전반에 관한 심의의결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 위원도 대체로 그들이며, 교육 관련 공청회 때 학부모 여론이라며 압력을 행사하는 목소리 또한 그들이다. 실상 한줌도 안 되는 그들이 학부모 전체의 의견인 양 과잉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의 매서운 지적에 교사로서 공감되는 구석이 많았다. 강남 S여고 교문 앞 학부모들의 시위를 마뜩찮게 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기실 타인과 공동체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기성세대를 향한 죽비였다. 오로지 우리 아이와 우리 가족, 우리 학교에만 매몰될 때 우리 모두는 '괴물'이 된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일갈을 차마 아이들 앞에서 들려주지 못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호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이다. 학부모들은 강남 S여고 교문 앞을 비롯해 곳곳에서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다'며 외쳐대고 있지만, 아이들은 앞선 '기회의 평등'은 왜 간과하는지 묻고 있다. 애초 기회가 평등하지 않으면, 과정이 공정할 수도, 결과가 정의로울 수도 없다는 뜻이다. 

날선 주장을 쏟아내던 그는 부모님과의 갈등 한 꼭지를 들려주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여느 가정에서처럼 공부 못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한다거나, 지방대 출신은 사람대접 못 받는다, 대학입시 하나로 미래의 삶이 결정된다는 등의 조언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한다. 정작 아이들을 '공부 지옥'으로 몰아넣는 사람이 바로 학부모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이렇게 겁 없이 반문했단다. 물론, 되돌아온 건 부모님의 철딱서니 없다는 핀잔이었다고.

"우리 사회가 그렇듯 정의롭지 않다면 바로잡도록 가르쳐야 옳지, 책임져야 할 기성세대가 오히려 불의한 구조에 순응하도록 다그치면 되겠어요?"

그는 강남 S여고 교문 앞 시위에서 학벌구조를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특권의식을 조장하는 학벌구조를 해체하지 않는 한, '제2의 시험지 유출 사건'은 반복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한 꼭지를 소개했다. 글에 나오는 '이윤'을 '명문대 합격 가능성'으로 바꿔 대입해보면, 쌍둥이 자매 아버지의 극단적인 선택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명문대는 거룩한 '신전(神殿)' 아닌가.

'50%의 이윤이 있으면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100%의 이윤이 있으면 모든 법률을 무시하며, 300%의 이윤이 있으면 교수형의 위험까지 감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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