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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대표가 산머루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백승현 대표가 산머루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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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와인기행] 김천 수도산 와이너리①에서 이어집니다

백승현 대표의 인생 이력은 상당히 특이하다. 그 일면을 수도산 와이너리 리플릿에 실린 글귀에서 엿볼 수 있다.

'사각 링 위에서 이루지 못한 챔피언의 꿈을 대자연에서 이룰 것입니다.'

사각 링과 챔피언이라면? 바로 권투를 의미한다. 고교시절, 그는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동했고, 졸업 후 프로선수로 데뷔했다. 프로선수로 3번의 시합을 했다. 세 번째 시합에서 난타전을 벌였고, 패배했다. 군대에 가서 술과 담배를 배워, 몸 관리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 길로 권투가 내 길이 아니다 싶어서 그만뒀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경호' 일을 시작했다. 백 대표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 같은 운동은 전부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쉰을 앞둔 나이에도 탄탄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경호 일도 3년6개월 정도 하고 나니, 또 아니다 싶더란다. 그 뒤, 몇 가지 일을 더 해봤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귀향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시작한 산머루 재배가 그를 와인메이커 길로 이끌었다.

"여기는 머루, 다래가 지천이라, 산머루를 심었어요. 처음에는 와인은 생각조차 안 하고, 주스를 개발해볼까 하는 쪽으로 생각해봤어요. 수확은 문제가 아닌데, 판매가 문제인 거라. 판매할 데가 없으니까. 오는 사람들마다 와인을 해보라고 하는 거라."

우리나라의 와이너리 대부분이 이런 수순을 밟는다. 백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백 대표도 산머루 생과를 팔고, 산머루즙을 만들어 팔았지만 판매에는 한계가 있었다. 팔리지 않은 산머루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품가치가 떨어지지만 와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진다. 물론 모든 와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도산 와이너리를 찾아오는 고객들을 위한 체험용 산머루 밭은 와이너리 바로 옆에 있다.
 수도산 와이너리를 찾아오는 고객들을 위한 체험용 산머루 밭은 와이너리 바로 옆에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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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또 있었다. 땅이었다. 산머루를 재배하기 적당한 상태가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지역에는 담배농사밖에 안 지었어요. 토양이 다 죽었어요. 담배농사하면 매일 제초제 쳐대지. 땅을 살리는 것만 해도 5년은 걸렸어요. 내가 직접 미생물을 만들어서, 부엽토와 섞어서 한방영양제를 만들어 뿌려줬죠. 지금은 땅이 살아나서 약을 안 쳐도 웬만한 병충해는 다 이겨내요."

산머루 수확을 포기 하면서 5년을 넘게 땅 힘을 되살리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땅이 살아나니 수확하는 산머루의 맛도 좋아졌고, 당도도 높아졌다. 땅은 기후와 함께 산머루의 맛과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의 끈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첫 와인은 2004년에 만들었다. 와인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인터넷을 검색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아 고향과 농촌을 주로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면서 홍보가 많이 됐지만, 문제가 있었다. 주류제조면허가 없었던 것. 가양주로 술은 빚을 수 있지만, 면허가 없으면 와인을 판매할 수 없다. 와인을 만들면서 점점 와인에 빠져든 백 대표는 와인메이커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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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전문적으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경북농민사관학교'였다. 2007년이었고 경북농민사관학교가 막 시작하던 해였다. 그곳에서 와인제조과정을 배웠다. 배움은 배움을 부른다. 와인제조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와인제조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경북대에서 1년을 더 공부했다. 다음 단계는 농촌진흥청의 와인심화과정 강의였다.

2008년에 주류제조면허를 획득했다. 이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와인인생이 시작됐다. 쉽지 않았다. 당연했다. 와인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한국와인 판매시장 역시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옹기로 했어요. 옹기에서 와인 숙성을 하니 숙성이 너무 빨라. 맛도 단순해. 과일 향밖에 안 나요. 아로마밖에 없고, 부케가 없었어요."

부케는 와인 맛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그게 없다면 와인은 실패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 정도면 괜찮지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 특히 외국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백 대표는 와인판촉 행사에 가서 만난 외국 와이너리 관계자들을 자신의 와인판매부스로 데려와 시음을 시키면서 반응을 살폈다. 반응은 그의 예상을 넘어섰다. 와인으로 인정을 안 해주더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크통에 숙성을 시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와인의 부케를 살리려면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9년, 오크통을 샀다. 돈이 없으니, 225리터짜리를 샀다. 오크통을 사도 문제였다. 사용법을 아는 게 아니니,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은 지식이나 이론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 대표의 말에 따르면 "오크통을 사용하면서 별의별 쇼를 다했다"고 한다.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저장고에 있는 오크통들.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저장고에 있는 오크통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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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시설
 수도산 와이너리 와인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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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오크통에서 오랫동안 묵힐수록 좋다고 해서 오래 숙성을 시켰더니 와인 색깔이 죽고, 오크 향밖에 나지 않아 와인을 버려야했다. 오크통이 새것인지 여부와 숙성기간에 따라 와인 맛은 크게 달라진다. 와인 숙성 기간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지, 오크통에 들어간 와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등을 습득하기 위해 참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산머루 와인 외에도 캠벨 얼리로 만든 와인이나 MBA로 만든 와인도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면서 경험을 쌓아야 했다.

와인을 더 잘 만들려고 오크통을 샀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자신감이 점점 사라졌다. 미친 짓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왜 와인을 시작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편이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친 끝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와인 맛을 낼 수 있는 오크통 숙성 기술을 터득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와인 맛은 깊이가 더해졌고, 향 또한 제대로 어우러졌다.

궁금해졌다. 2004년부터 와인을 만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언제부터 스스로 만족하는 와인이 만들어졌는지, 이 정도라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와인이라는 자신감이 언제 생겼는지. 2013년부터란다. 와인을 시작하고 딱 10년 만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10년은 해야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다는 말이 있는데, 그가 그랬다. 당연히 가만히 있으면서 세월이 흐른다고 그런 경지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백승현 대표가 만든 수도산 와이너리의 와인들.
 백승현 대표가 만든 수도산 와이너리의 와인들.
ⓒ 수도산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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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집스레 만드는 와인은 산머루와인이지만, 그가 산머루 와인만 만든 것은 아니다.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캠벨 얼리나 MBA로도 와인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와인을 찾았으나, 결국은 산머루가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일 그가 캠벨 얼리나 MBA를 선택했다면 아마도 지금 그는 산머루가 아닌 다른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실험용으로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많은 포도품종을 전부 기억하거나 기록할 필요는 없다. 30종 이상의 포도품종을 들은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그가 매년 새로운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서 새 와인 개발에 열정을 쏟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만든 와인보다 미래에 더 좋은,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은 게 와인메이커들의 욕심이니까.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가 산머루 농장에서 재배하는 포도들.
 백승현 수도산 와이너리 대표가 산머루 농장에서 재배하는 포도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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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다른 와인메이커처럼 농장에서 직접 외국 포도 품종들을 재배한다. 와인 원료를 구하려면 직접 재배하는 것이 원료 확보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의 산머루 농장에 가면 한쪽에서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포도들이 자라고 있다.

백 대표는 김천농업기술센터에서 시험 재배하는 스페인 품종의 포도들도 가져다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와인 양조에 대한 깊이가 더해지면서 자신만의 와인을 만드는 노하우가 축적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와인기행] 김천 수도산 와이너리③으로 이어집니다.

태그:#백승현, #크라테와인, #수도산와이너리, #한국와인, #권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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