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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조선 실록: 년표와 사료> 간행기념 워크샵’이 열렸다.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조선 실록: 년표와 사료> 간행기념 워크샵’이 열렸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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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탈 주민(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6.25 전쟁과 관련한 것들이다. 북한이 6.25 전쟁을 남한의 '북침'이라고 교육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복수의 북한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북한 이탈 주민들은 보통 한국에서 여러 해를 살고 겨우 북한의 '남침'을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북한사 연구자가 김일성의 항일 투쟁 관련 자료를 북한 측에 기증한 뒤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설전을 벌인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선즈화 중국 화동사범대 종신 교수는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북조선 실록: 년표와 사료> 간행기념 워크샵'에 참석해 "북한 측이 2013년에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와서 북한 자료를 달라고 했다"며 "대사관에서 내 책을 추천했다. 며칠 뒤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참사관과 직원 1명이 목록을 만들어서 나를 찾아왔다"고 운을 뗐다.  

선즈화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2년차인 지난 2013년 조부인 김일성의 일제시기 항일 투쟁을 기념하는 자료를 발간하는 등 관련 행사를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에 김일성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북한은 6.25를 겪으면서 각종 문헌 자료들이 소실되거나 미국에 약탈당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북한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중국 외교부는 북한사 연구 권위자인 선즈화 교수를 소개했다.    

선즈화 교수는 "우리 학교 총장에게 북한에서 사람이 왔는데 어떻게 접대를 하고, 자료를 제공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며 "총장이 외교부에 문의하니 '열정적으로 접대하되, 신중하게 대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대사관 직원들에게 일단 술대접을 했는데 그날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다들 취했다"며 "그래서 북한 참사관에게 '중국 문서는 안 되고 러시아 문서는 넘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김일성 자료를 CD 3개에 넣어서 줬다"고 전했다.  

선즈화 교수에 따르면, 그날 술에 취한 북한 참사관과 선 교수가 논쟁을 벌였다. 참사관은 "당신의 책을 우리는 다 봤지만, 김정은 위원장께선 아직 안 봤다"며 "왜 책에 이렇게 썼느냐"고 따졌다. 그는 "6·25 전쟁을 이승만 괴뢰와 미국이 발동한 것이지 어떻게 우리가 발동했다고 썼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선 교수가 "분명히 당신들이 발동한 게 맞다. 증거가 다 있지 않냐"고 맞섰다. 그러나 북한 참사관은 끝까지 북침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선 교수에 따르면 참사관은 북한에 가서 그를 초청하겠다며 돌아갔다. 2개월 뒤 전화가 와서 "자료를 다 찾아놨다. 평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매우 당황했다고. 그는 "당안(역사기록) 열람은 둘째 치고 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선 교수는 "내가 알기로 6·25 관련한 당안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군이 철수할 때 매우 다급했다"면서 "그래서 당안이 없다. 만약 있어도 미국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북한 자료는 수집하기 어렵고,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6.25가 휴전한 뒤 전쟁 실패 책임이 김일성 일파에게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남한이 먼저 북한을 침략했다고 주장했고,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굳히기 위해 학교에서 교육하는 등 공식화했다.   

선 교수는 또 "중국 당안관(역사기록보관소) 사료를 찾는 게 제일 힘들다. 중국 당안법에 따르면 정부 문서를 25년이 지나면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보고 싶은 당안을 신청해도 한 글자도 볼 수 없다"면서도 "제일 힘든 곳은 역시 북한이었다. 북한 자료는 보고 못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살고 죽는가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20년 전 한 중국인이 날 찾아와 자기가 북한 전자판 자료를 갖고 있다면서 10만 위안(당시 한화 2000만 원)을 주면 넘기겠다고 했다"며 "목록이라도 우선 보여달라고 했더니 은밀한 곳에서 봐야한다면서 돈을 준비해서 오라고 했다.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료 없는 게 오히려 남북 공동연구 실마리 될 수 있어"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 자료를 달라고 했었는데, 전쟁을 겪어서 자료가 다 없어졌다고 하더라. 미국 사람이 와서 다 노략질해 갔다고 했다. 실록이 있지 않냐고 했더니 완전한 것은 없다고 했다"면서 "자료가 없는 게 오히려 남북 공동연구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숨겨놓은 게 있을 수도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이완범 교수는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에 있는 북한군 노획문서에 대해 북한 학자들과 얘기했다. 독일 나치 노획문서를 미국이 마이크로 필름화한 뒤 돌려준 예가 있다"며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수교단계가 되면 북한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런 것도 김광운 박사가 주도적으로 하면 좋은 후속 작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북조선 실록: 년표와 사료> 간행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로, 해당 사료집은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겸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가 기획·책임편집했다. 김광운 편사연구관은 <북조선 실록>에 실린 북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전 세계를 다녔으며 일체의 외부 지원 없이 사재를 털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자문위원으론, 김우종 전 흑룡강성 당사연구소장,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박정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만열 상지대 이사장,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 등이 참여했다. 전 30권에 이르는 <북조선 실록>은 1945년 8월 광복~1949년까지의 북한사를 다루고 있으며, 향후 매해 60권씩, 김일성 사망시기인 1994년까지 1000권 완간을 목표로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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