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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유통업체 판매직 노동자들이 복도나 창고에 앉아 쉬고 있다.
 대형유통업체 판매직 노동자들이 복도나 창고에 앉아 쉬고 있다.
ⓒ 서비스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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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용하게 해달라,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나온 구호다. 2018년에 값비싼 명품 브랜드를 파는 노동자들이 화장실도 못 가 방광염에 걸리고 생리대를 교체 못해 피부염에 걸리고 있다."

화려한 쇼윈도 안에서 일하는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의자는커녕 화장실도 사치였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발표한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7층짜리 면세점 건물에 여성 직원용 화장실은 4칸

화장실에 제 때 못 가 방광염에 걸리거나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판매직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3배 이상 많았고, 하지정맥류는 25배, 무지외반증은 67배나 높게 나타났다. 감정노동과 직장 내 폭력에 따른 정신적 고통도 심각해 우울증을 겪는 노동자는 3배, 공황장애는 12배 수준이었다.

김승섭 교수는 "(판매직 노동자들이) 의자에 앉지 못해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에 걸리고, 일하는 동안 기댈 수 없고 물도 못 마시는데 휴게실 공간도 없어 요통, 상지통, 하지통에 걸리고, 일부 고객과 백화점 갑질에 대응할 길은 없고 조직은 보호해주지 않아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연구팀은 지난 1월부터 10개월 동안 전국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화장품, 시계 등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노동자 2806명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에는 샤넬을 비롯해 입생로랑, 시세이도, 지방시, 에스티로더, 펜디, 토즈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조사 대상 노동자 60% 이상이 5년 이상 근무했고, 96.5%는 여성이었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는 '화장실'이었다. 대부분 백화점, 면세점에서 직원의 고객 화장실 이용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직원용 화장실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 면세점의 경우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쓰면서 여성 직원용 화장실은 3층과 5층에 2칸씩, 남성 직원용은 4층에 2칸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판매직 노동자 10명 가운데 6명(59.8%)은 근무 중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5명 중 1명(20.6%)은 최근 1년간 방광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는 같은 연령대 여성 노동자 평균(6.5%)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또 화장실에 가기 어려워 일부러 물을 안 마신 경험도 42.2%에 달했고, 건조한 근무 환경까지 겹쳐 성대 결절(5.2%)이나 안구건조증(38.4%)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성노동자 10명 중 4명(39.9%)은 생리대 교체를 못한 경험이 있었고, 이로 인해 피부질환이나 염증을 경험한 노동자도 17.2%에 달했다.

'의자 투쟁' 10년... 직원 휴게실도 부족해 복도 바닥에서 '뻗치기'

지난 2008년 대형마트 계산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앉아서 일할 권리를 요구한 '의자 투쟁'이 10년을 맞았지만, 이들 명품 매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의자가 없거나(27.5%) 있어도 앉을 수 없다(37.4%)는 답변이 60%를 넘었고, 발이 많이 붓다보니 근무할 때 신는 유니화를 신청할 때 자신의 사이즈보다 크게 신청한 경험이 72.2%에 달했다.

오랫동안 서서 근무하다보니 혈액순환이 잘 안 돼 하지정맥류(15.3%)나 족저근막염(7.9%)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구두를 오래 신다보니 무지외반증(6.7%)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역시 같은 연령대 여성노동자들에 비해 하지정맥류(0.6%)는 25.5배, 족저근막염(0.5%)은 15.8배, 무지외반증(0.1%)은 무려 67배나 많은 수치다.

그나마 판매직 노동자들이 잠시 쉴 공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비스연맹은 이날 창고나 복도 구석에 앉아 쉬고 있는 국내 판매직 노동자들과 호텔 못지않게 안락한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 유럽 대형유통업체 노동자 모습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유럽계 대형유통업체인 이케아 광명점 직원 휴게실 모습도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김 교수는 "판매직 노동자들은 기대거나 앉을 수 없고 물도 못 마셔 휴게실 이용이 필수적이고 절박하지만, 휴게실이 부족하거나 멀어 복도에서 쉬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내 한 대형마트 직원 휴게실(위)과 유럽계 대형매장인 이케아 광명점 직원 휴게실(아래)
 국내 한 대형마트 직원 휴게실(위)과 유럽계 대형매장인 이케아 광명점 직원 휴게실(아래)
ⓒ 서비스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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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휴게실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노동자가 58.1%였는데, 휴게실 의자가 부족하거나 면적이 좁고 너무 멀어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 때문에 면세점의 경우 공항 게이트 근처(44.1%)를, 백화점의 경우 카페(47.9%)를 휴게실 대신 이용하고 있었다. 이밖에 직원식당이나 비상계단, 복도를 이용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제 때 쉬지 못하다 보니 노동자 10명 가운데 8명꼴로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 3개월간 요통(76.6%), 상지통(77.1%), 하지통(82.0%)을 경험한 노동자는 같은 나이대 여성 노동자에 비해 각각 5.3배, 2.3배, 3.7배 많았다.

명품 매장에서 요구하는 이른바 '꾸밈노동'도 판매직 노동자들에겐 큰 고통이었다. 화장하고 옷 갈아입느라 1시간 이상 추가 근무한다는 노동자도 25%에 달했고 심지어 안경도 못 쓰게 해 안구건조증을 호소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오전 6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공항 면세점 노동자들의 경우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주로 일하는 면세점 노동자 가운데 출퇴근시간이 2시간 이상 걸린다는 응답이 26.2%로 일반 노동자(5.5%)의 4.8배에 달했다. 이 때문에 수면시간이 3시간 이하인 노동자도 20%에 달했다.

판매직은 여성 노동자 비중이 높지만 근무 환경은 모성 보호와도 거리가 멀었다. 판매직 노동자들 가운데 동료의 유산을 목격했다는 응답이 절반(49.8%)이었고, 본인이 유산을 경험한 노동자도 11.4%였다. 자녀가 아파도 병원에 가보지 못한 경험도 56.9%에 다했다.

현장 노동자들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속 들여다보면 처참"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과 건강실태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과 건강실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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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강규혁 위원장, 이하 서비스연맹)이 공동 주최한 이날 발표회에선 현장 판매직 노동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면세점에서 일하는 최상미 엘카코리아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면세점이 화려해보이지만 직원들 동선은 화려하지 않고 처참할 정도"라면서 "직원용 화장실 칸 수도 적고 갈 수도 없어 방광염으로 병원을 다니고 입이 말라도 물을 못 마시고, 생리대를 못 갈아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직원도 있다"고 밝혔다.

백화점 문 연 시간을 포함해 하루 평균 10-12시간씩 일한다는 김수정 한국시세이도노동조합 사무국장은 "겉보기엔 유니폼 입고 화장 예쁘게 하고 물리적 사고 없이 안전하고 편하게 근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외적 모습과 달리 (직원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장시간 서서 근무해 건강을 해치고 있다"면서 "백화점 노동자도 지금보다 건강하게 일할 날이 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승섭 교수는 "백화점과 면세점의 아름답고 깔끔한 상품들과 고급스러움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고 있다"면서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가게 해달라, 의자에 앉게 해 달라는 건 2800여 명 노동자들의 상식적인 요구"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직원도 고객 화장실을 함께 쓰는 게 1차적 해법"이라면서 "직원용 화장실 개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가까이 있는 고객용 화장실을 두고 멀리가라는 건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경윤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큰 매장의 경우 직원 휴게실이 5분 거리에 층마다 있어야 한다는 노동부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너무 이상적이고 노동자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외국 사례만 보고 만들어 업체들이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휴게실, 의자) 가이드라인을 의무 규정으로 만들고, 건물 신축할 때 직원용 화장실도 의무적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고객-원청 '갑질'에 무방비... 공황장애, 일반노동자 12배 수준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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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고객과 백화점, 면세점의 '갑질'에 따른 감정노동과 정신적 고통은 이런 육체적 고통을 뛰어넘었다. 노동자들 대부분 고객에게 '업무 규정상 불가능한 요구'(82.5%)를 경험했고, 깔보거나 업신여김(36.6%), 인신공격(27.7%), 외모평가(18.3%),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차는 행위(20.5%), 성적 수치심(13.2%), 욕설(12.9%), 불필요한 신체접촉(10.1%)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죽이겠다'는 식의 협박(5%)이나 폭력(1.5%)을 경험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직장 내 폭력도 위험수위였다. 언어폭력 25.4%, 원치 않는 성적 관심 5.9%로 일반 여성노동자보다 3배 정도 높은 수준이었고,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17.8%)은 8.6배, 신체적 폭력(3.4%)은 16.9배, 왕따(1.6%)는 8배, 성희롱(4.4%)은 5.5배나 높게 나타났다.

협력업체(본사) 소속으로 원청(백화점,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의 특수한 업무 구조상 이같은 갑질과 직장 내 폭력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고객 폭언시 관리자에게 보호받은 적 있다(9.7%)는 응답보다 보호받은 적 없다(17.6%)는 응답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우울증(6.1%), 공황장애(2.4%)를 앓고 있는 판매직 노동자는 같은 연령대 여성 노동자들의 3.5배, 12배에 달했다.

김승섭 교수는 고객 갑질 못지않게 갑질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조직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1차적으로 고객 갑질을 줄여야 하지만, 갑질이 발생할 때 조직에서 부당한 일을 경험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면서 "보호 행동 여부에 따라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 직원 건강에 큰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당장 18일부터 시행되지만, 정작 협력업체 소속인 판매직 노동자들은 보호받기 쉽지 않다.

이성종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백화점에 직접 소속된 직원은 10%도 안 되고 협력업체, 납품업체 파견 등 간접고용이 90%를 차지한다"라면서 "내일부터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돼도 원청 사업주(백화점/면세점)는 자기 직원만 조치해야 하고 간접 고용한 타사 직원은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전체 노동자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 될 것"이라며 법 개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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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교육, 인권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