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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반대하는 유치원 관계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자 박 의원이 대화하자며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 단상 점거한 유치원 원장들... 설득하는 박용진 의원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반대하는 유치원 관계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자 박 의원이 대화하자며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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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에 적발된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이후 후폭풍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사립유치원의 천태만태 비리 행태가 폭로되자 유치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원성과 분노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여론도 덩달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리 유치원을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잇따라 게시되는가 하면, 관련 기사에는 사립유치원 비리를 비난하는 댓글이 봇물터지듯 올라오고 있다. 

실제 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2017년 감사 결과는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교비가 원장의 외제 승용차 유지비와 아파트 관리비로 사용되거나, 술집 및 숙박업소 등에서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비를 유류비로 지출하거나 헌금 용도로 사용하는 등 사적인 용도로 유용한 사례도 수두룩했다. 개중에는 심지어 명품백을 사거나 성인용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쯤되면 교비를 마치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사용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난 사립유치원 수는 176878곳에 이르며, 비리 건수도 무려 5,951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사립유치원 비리, 빙산의 일각에 불과

문제는 이 감사가 전수조사가 아닌 각 시·도교육청의 자체 기준에 의해서 이뤄진 선별조사라는 점이다. 이같은 사실은 이번에 적발된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내심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사립유치원 비리를 향한 국민적 비판이 뜨겁게 분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유치원총연합(한유총)이 16일 오후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 광교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덕선 한유총 비대위원장은 "이유를 막론하고 저희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시는 학부모님들께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한유총은 깊이 반성하면서 대한민국의 유아교육을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여론과 동떨어진 발언도 있었다. 이 위원장이 "이번 사태는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하는 유아교육을 만드는 논의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비화시켜 학부모들의 불안과 불신을 확산하는 소모적 양상으로 흘러가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라 억울함을 호소한 것. 감사에 적발된 일부 유치원의 비리를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유총의 항변은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와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2058개 중 모두 1878개 유치원에서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조사대상의 90%가 넘는 곳에서 비리가 적발됐다는 뜻으로 사립유치원 '일부의 문제'라는 한유총의 해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사립유치원 비리 백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 의원이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를 공개하기 이전에도 사립유치원 비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투명한 회계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한유총은 결사적으로 반대 입장을 피력해 온 터였다. 

지난해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확대'와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방침을 밝히자 한유총이 집단 휴업 카드를 꺼내든 것도, 지난 5일 박 의원이 주도한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한유총 소속 원장들의 실력행사로 파행을 겪은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제 밥그릇을 지키려는 집단 이기주의가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온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사립유치원은 매년 누리과정 예산 등 2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주지한 것처럼 사립유치원의 회계를 감시할 방법은 전무한 실정이다. 막대한 국민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만큼 투명한 회계시스템을 구비하고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그동안 국회 및 지자체, 교육당국 등은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이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유총의 보이지 않는 힘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 감사 결과에 의하면 사립유치원 측은 감사를 앞둔 공무원을 골드바와 억대의 금품으로 회유하는 등 로비를 벌여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결국 사립유치원 비리가 우리 사회 교육시스템 전반의 총체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감추어져 있던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사립유치원 문제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유총이 분노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던 정치권과 교육당국 역시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설을 동반한 문자폭탄은 물론이고 갖은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박 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다. 그러나 그의 용기있는 결단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곳곳에 만연해 있는 사학 비리는 비단 사립유치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럴 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립유치원 비리를 발본색원하고 이 기회에 투명한 회계감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여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다. 사립유치원 비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사립 교육기관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의 확립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사립유치원 비리,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학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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