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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차별금지법제정촉구 평등행진 <우리가 간다>가 개최된다.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평등행진에 여러분을 초대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평등을 바라는 우리가 간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 기자말


쉽게 말을 걸고,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몸 
 
 중증장애여성인 나와 낯선 타인과의 권력 구도는 늘 이렇게 스치는 만남 속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중증장애여성인 나와 낯선 타인과의 권력 구도는 늘 이렇게 스치는 만남 속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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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근길 아침,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중년 여성이 내게 손을 뻗으며 "아가씨, 머리 좀 묶고 다니지? 답답해 보이잖아! 내가 넘겨줄게!"라고 말하면서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묶어 주려고 했었다. 나는 머리 모양에 대해 어떠한 불편한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순간 불쾌감이 온몸으로 퍼져갔지만 거부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처음 본 사람에게 어이없는 일을 겪고 말았다. 도대체 나는 그 중년 여성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친 것일까?

사실 나는 이런 일을 일상다반사로 겪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훈계도 자주 듣는다. 아침 일찍 출근할 때면 "아침 출근길 복잡하게 왜 나왔어?" 저녁 늦은 퇴근길에는 "이 늦은 시간까지 뭐하다 이 시간에 돌아다녀?" 이런 말들을 종종 듣는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인 것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나는 쉽게 말을 걸어도 되는 존재로서 자신들의 훈계가 필요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나의 모습을 5초 안에 훑어보고 빠르게 판단해 자신들이 느낀 불편함에 대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을 내뱉고 손을 뻗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증장애여성인 나와 낯선 타인과의 권력 구도는 늘 이렇게 스치는 만남 속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이것은 차별이 허용되는 사회의 민낯일 것이다. 

차별은 늘 다양하게 꿈틀거린다

이러한 경험을 수없이 겪어내며 사회 안에서 나는 언제나 불편한 손님으로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부장제 비장애 중심의 사회)는 너(중증장애여성인 나)가 이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해!! 얼른 나가줄래? 안 나가면 추방한다!' 이런 메시지를 매일 매일 건네받는 느낌이다.

그리고 몇 해 전, 모 문화센터에서 대중 강의를 신청해서 들은 적이 있다. 강의 첫날 내가 강의실에 들어서자, 강사와 수강생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치 이 강의는 중증장애여성인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자기 소개 시간에 나를 소개할 차례가 왔는데, "그 쪽은 말하기 불편하니까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쪽지로 알려 주세요~"라고 말하며 강사는 나의 소개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바로 다른 수강생에게로 차례를 넘겼다. 나는 이 공간에서 어떠한 말을 내뱉은 적도 없고 나의 언어장애 정도를 판단할 근거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음성 언어를 낼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버린 것이다. 내가 보인 것은 강의 시작하고 5분 동안 뇌병변 장애로 인해 몸의 경직과 불수의적인 움직임뿐이었다. 하지만 그 강사에게는 그 움직임이 말할 수 있고 없고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돼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언어장애를 가졌다. 그러나 음성 언어가 아예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나의 언어장애 발성은 너무나 쉽게 거부당했다. 마치 매끄럽게 이어져 놓은 도미노를 나의 언어장애가 불쑥 끼어들어 와르르 무너지게 할까봐 나의 존재는 차단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도미노에 나의 존재 한 조각도 허용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혐오의 장대비를 잠시 멈추게 한다

증증장애여성인 나는 공간과 관계에 따라서 차별을 다양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공간에서든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때로는 나의 존재 자체가 보이지 않은 존재로 여겨질 때도 많았다. 어떤 공간에서는 나란 한 사람은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닐 뿐더러 지워야 할 존재로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은 어느 특별한 날, 특별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었다. 내가 집 밖을 나가는 순간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순간순간마다 발생하고 작동되었다. 그것은 차별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사그라지지 않고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나를 차별했던 그 공간과 사람들은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을 만들어 차단하고 지우려 할 것이다. 차별은 고정되어 어떤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별의 이유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나를 차별했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 하여금 차별의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그 누군가는 성소수자가 될 수 있고, 이주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 난민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복합적인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기나긴 투쟁 끝에 2007년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이 제정되었다. 장차법이 제정되고 나서 '어떤 상황에 있어서 그것은 장애인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차법이 제정되고 나서 의문이 생겼다. 만약 장애를 가진 성소수자가 차별을 받았다고 했을 때, 어디까지 장차법으로 시정요구를 할 수 있을까? 차별받았던 상황에서 장애차별만 걸러낼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차별의 이유는 각기 다르게 보이는데, 한 사람의 복잡한 정체성을 두고 어느 한 쪽 정체성만 놓고 이야기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물론 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한국 사회에 차별이 모두 소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혐오를 표현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것도 권리처럼 되고 있는 이 한국 사회에 브레이크를 조금씩 밟아주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빗발치는 혐오의 장대비를 조금은 멈출 수 있게 하거나 잠시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법률이 되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헌법처럼 우리 사회에 당연히 있어야 할 법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약자들이 2미터 낭떠러지 같은 이 사회 안에서 버티며 까치발 들고 서 있는 구조에 작은 기둥 하나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까지 반대하고 싶어하는 혐오 세력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이 작은 인권의 기둥 하나 세우는 것마저 반대하고 싶으세요?"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상희님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제연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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