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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욕망은 다르다. 아델의 것은 배꼽 아래 범주다. 어떤 세속적 가치도 맞먹을 수 없는 강도다. 색욕에 장악 당할 때의 아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촉수들이 뻗대는 무뇌충 같다. 낯선 남자의 "사랑스럽고 부드러우며 특별할 데 없는" 동물적 구애가 절실할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과 아들은 삶의 보루다. 남편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기에 아델의 알리바이는 쌓여 간다.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아들은 벅차 성가시다.
 
'그녀, 아델' 표지
 "그녀, 아델" 표지
ⓒ 아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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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델은 일상에 얹혀 산다. 낙하산으로 얻은 신문기자 역을 일탈의 구실로 삼는다. 남편 리샤르(로빈슨 박사)에게 들통 나지 않으려, 남자들과 연락하는 전용 휴대폰을 따로 챙기고, 핑계 거리가 궁할 때마다 친구 로렌의 조력을 구한다. 아델에게 상대는 가는 곳마다 널려 있다.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모든 계층을 망라하니 그렇다. 

탈이 난 건 아델이 휴대폰을 흘려서다. 일회용의 룰을 어기고 자비에에게 집착해서다. 자비에는 리샤르의 동료 의사다. 사실을 알게 된 리샤르는 교외로 집을 옮겨 개업하고 아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든다. 내쫓기지 않으려 아델은 리샤르가 내건 "지침"들을 군소리 없이 따른다. 변명조차 없이 잘못을 인정하는 아델을 옆에 두느라 정작 "영혼까지 털린 건 리샤르였다." 질병을 고쳐주는 의사 경력이 속절없다.

성적 욕망은 인간이 포유류임을 입증한다. 평소 같으면, 별 고민 없이 양심을 내버리는 아델류는 인간답지 않아 눈을 돌렸으리라. 소설의 장점은 어떤 인물이든 거리를 두고 보게 한다. 나와 다른 인간들의 심층 심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게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내치기보다 아델을 안타깝게 여기고 만다. 님포매니아(Nymphomaniac, 여성 색정증)에 갇힌 아델의 좁은 시야는 분명 질병이다.

아델은 다그치는 리샤르를 등진 채 말한다.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욕망에 대해, 추스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충동에 대해, 마침표를 찍는 게 도무지 어려운 고뇌에 대해" 설명하려 애쓴다. <그녀, 아델>은 아델의 병인(病因)이 심리적임을 암시한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고독이다. 누가 됐든, 누군가의 시선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것, 무심한 익명이 된다는 것, 군중 속의 하찮은 돌멩이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끌고 싶은 욕구는 너나없이 있다. 더군다나 분리 고독은 개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열 살 미만에 병증을 보인 아델의 경우, 극명하게 겉돌며 불화하느라 아델에게 곁을 주지 않은 부모 탓이 크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델을 기다리느라 리샤르는 제 정신이 아니다. 아델은 리샤르의 "강박이고, 광기고, 이상향이었다. 그의 또 다른 삶이었다." 마음이 볶여 병원일도, 아들 보살피기도 가욋일이 된다. 삶을 좀먹는 치명적인 집착이다. 

아주 선하지도, 모질지도 못한 리샤르는 중산층의 안온한 가부장이길 바란다. 오쟁이 진 남편이라는 타인들의 시선이 끼어드는 게 싫고, 아델이 떠나는 게 싫다. 그러니까 아델의 병세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곁에 두기로 한 건 아델을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리샤르의 선택은 아델을 향해서도 남들을 향해서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아델과도 외떨어진 리샤르의 사랑이 공허한 이유다. 어딘가에 있을 아델을 향해 리샤르는 속으로 외친다.
 
"아델, 그게 끝이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끝나지 않아. 사랑은 인내일 뿐이야. 경건하고 열정적이며 폭군과도 같은 인내. 비이성적일 정도로 낙천적인 인내. 우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인간다움은 이성과 양심의 협업으로 유지된다. 그 주체적 해결 과정에서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삶의 지혜가 작동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그 관점에서, 무늬만의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아델을 방치하다 목메는 리샤르는 에고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다. 에고는 욕망의 산물이다. 아델류의 인간만이 욕망의 꼭두각시가 아님을 <그녀, 아델>은 일깨운다.

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arte(아르테)(2018)


태그:#그녀, 아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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