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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30분에 야학에서 한문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규학교를 가지 못한 60대 여성들입니다. 고졸 검정고시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대부분 시험에 붙어서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더니 교탁 옆에 있는 조그만 탁자에 감과 귤이 각각 하나씩 접시에 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웬 것이냐고 물으니 한 학생이 가져왔다며, 나에게 먼저 감을 들고 수업을 하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먹은 뒤였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에 먹겠다고 한 뒤에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접시에 놓인 감에 자꾸 눈길이 가면서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감과 관련된 조선시대의 문인인 노계 박인로의 <조홍시가(早紅柿歌)>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먼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생들에게 그것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박인로가 친구 집에 갔습니다. 그 친구가 맛있는 붉은 감을 내놓았는데, 박인로는 그것을 보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던 모양입니다. 살아계시면 이것을 가져다가 드리면 참 좋을 텐데,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효도를 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작품입니다.

학생들은 감과 관련이 있는 그 이야기에 곁들어 있는 중국의 육적이란 사람에 대해 더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이 작품을 학교에서 배울 때에 그 작품에 나와 있는 배경 이야기에 더 감동을 받았던 것과 똑같았습니다.

육적이 어느 집에 갔더니 귤이 나왔는데 그는 그것을 집에 계신 부모님께 갖다드리려고 옷 속에 몰래 넣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나중에 일어나서 인사하려고 할 때에 그 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하지요. 뒤에 그 사연을 알게 된 집 주인이 육적의 효심에 감동해서 부모님 드리라고 귤을 아주 많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생들도 살아계신 혹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많이 생각났을 겁니다. 나도 17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잘 모시고 있지만 두 분을 모시는 것에 비길 수가 있겠습니까.

감에 관한 효도 이야기로 인해 수업 진도를 약간 바꾸게 됐습니다. 커리큘럼 중간 쯤에 배우게 될 한자성어 '풍수지탄(風樹之嘆)'을 먼저 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고자 하나 돌아가셔서 효도를 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는 성어입니다. 그것을 읽고 쓰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라는 겁니다.

80분 간에 걸친 한문수업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잘 끝났습니다. 한 학생이 나오더니 검은 비닐 봉투에 앞에 놓인 감과 귤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주면서 가방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감이 터지지 않게 조심스레 가방 한쪽에 잘 넣었습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2층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습니다. 일을 보고 나가니 학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둠 컴컴한 골목의 한 과일가게에서 두 학생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한 명은 주인과 뭔가를 주고받고 있고, 한 명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뒤에 그 두 학생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검은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아까 감 하나와 귤 하나 가져가시는 것이 좀 그랬어요. 그래서 빨리 나와서 감을 사려고 했는데, 먹음직스러운 감이 없어서 그냥 바나나를 샀어요. 집에 가서 맛있게 드세요."
 

아,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단 말입니까? 학생들의 그 따뜻한 마음에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많이 웃었습니다. 학생들도 나랑 같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골목에서 큰 길로 걸어가는데 반장 학생이 뭔가를 들고 나에게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감 한 팩이었습니다.

"선생님, 다행히 마트 문을 아직 닫지 않았어요. 감을 하나 샀어요. 아까 감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빨리 넣으세요."
 

세 명의 학생은 들고 가기 편하게 내가 들고 있는 바나나 비닐 봉투에 감을 함께 넣었습니다.

전동차를 타러 가는 나의 몸과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행복감에 젖어들었습니다. 나이가 대부분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학생들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따뜻한 마음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태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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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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