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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지글. 향긋한 들기름을 두르고 송송 썬 야채로 부침개를 부쳐낸다. 구수한 호박된장국 간을 보던 찰나 '띠리릭'하고 현관문이 열린다. '어떤 놈이여?'하고 뛰어나가 왈왈거리던 달콩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뱅글뱅글 돌면 등장하는 사람, 바로 남편이다.

"피곤하지?"

꽃 같은 웃음을 입에 물고 버선발로 달려가 볼따구에 "쪽"하고 뽀뽀를 해준다.

"흠흠, 맛있는 냄샌데, 아, 배고프다."

하루를 버티느라 앙다문 입과 사색이 되었던 얼굴이 사르르 풀리고 혈색이 발그레 돌아온다. 빨간 저녁놀을 배경으로 마주 앉은 우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사이좋게 밥을 나누어 먹는다.

신혼 초, 유난히 먹는 것을 좋아하고 미각이 초자연적으로 발달된 남편은 잔뜩 기대를 담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기름진 밥상을 고대했다. 식물성 입맛으로 고기조차도 먹을 줄 모르는 염소 같던 내가 다양한 육질의 식감을 즐기던 육식의 왕, 사자에게 시집을 갔던 것이다.

상추를 절이고 오이를 무쳐서 정성껏 해 바치면 '이 무슨 해괴한 밥상인고?'하는 까칠한 표정으로 끼적거리다 만다. 보름달이 뜨면 굶주린 드라큘라가 신선한 피를 찾아 울부짖듯 정기적으로 고기의 제물을 바쳐야 하니 우리의 갈등은 식성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기도 했다.

요리에 서툴기도 했지만 '먹는다'는 행위를 심오하게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고 적당히 배만 채우면 되지 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살아왔던 터였다. 어쩌면 조금쯤은 가볍게 경시하는 마음도 있었을까. 내면의 채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먹는 걸 중시하고 한 끼도 소홀함 없이 든든히 먹어야 행복해지는 남편. 정작 요리를 해야 하는 나는 귀찮고 번거로워서 어떻게 하면 한 끼라도 안하고 넘어갈까 잔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기 싫다고 생각하니 끼니때는 더 자주 돌아오는 듯 느껴졌고 밥해주러 시집왔나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오늘은 뭘 해먹나'로 시작해서 '내일은 또 뭘 해먹지?'로 끝나는 수많은 날들이 지나고 어느 날, 사자는 고지혈증에 걸리고 중성지방의 수치도 많이 높아졌다. 그 순간 염소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서 안절부절 하다가 건강식을 고민하고 사자를 구슬러서 식단을 바꿨다.

세월이 만들어 준 합일점에서 염소와 사자의 식성은 비슷해져서 큰 싸움 없이도 가능할 수 있었다. 사자를 따라 살다보니 염소도 고기 맛을 알게 되어 입맛을 다시는 날들이 있었고 사자도 향긋한 풀 맛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염소는 요리를 한다. 육류가 적당히 섞인 식단에 야채를 곁들여 건강식을 만든다. 이제는 요리하는 것도 재미가 진다.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행위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새는 힘든 마음에 위로를 주고 행복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 깨닫는 중이다.

남편은 차려진 밥상의 정성의 정도로 애정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코로 먼저 사랑의 냄새를 큼큼거리며 맡다가 크게 한 입 '앙'물고 행복한 사자미소를 방출한다. "냠."

태그:#밥, #요리, #건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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