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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듣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한 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100번쯤 설명을 들어도 아리송하기만 했던 게 실물이나 실물 사진을 보는 순간 번갯불에 드러나는 어떤 실체를 본듯 훤하게 이해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열 줄의 기사보다 사진 한 장이 갖는 설득력이나 현장감이 훨씬 더 큰 파급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역사적 사건이나 사고뿐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하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나 상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흑백사진으로 담은 <상무주 가는 길>
 
<상무주 가는 길> / 지은이 김홍희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9월 20일 / 값 19,800원
 <상무주 가는 길> / 지은이 김홍희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9월 20일 / 값 19,8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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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 가는 길>(지은이 김홍희, 펴낸곳 불광출판사)은 이미 10년 전인 2008년, 일본 니콘의 '세계 사진가 20인'에 선정된 저자가 하늘이 감춰 놓은 듯 돌구멍 속에 숨어 있고, 땅이 감춰 놓은 듯 기암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어 쉬 드러나지 않은 26곳 암자를 사진으로 꿰고 글로 엮어낸 기행문입니다.

순천 송광사 불일암으로 시작해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으로 마무리되는 26곳 암자를 찾아가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서정들이 바람결에 실린 물소리만큼이나 눅진합니다.

사진은 그 순간 그 곳에 있지 않으면 낳을 수 없는 찰나의 결과물입니다. 찰나를 기록한 사진 속에 암자를 찾아가는 여정이 구불구불 녹아있고, 여정을 기록한 글 속에 찰나를 붙잡으려는 변명이 구구합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진즉 알록달록한 컬러에 익숙해진 눈에 훅 하고 들어오는 흑백사진에 조금은 생경할 수도 있습니다. 왜 흑백사진이지?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라면 컬러로 인화할 수 있는 슬라이드필름으로 찍었을 것 같은데…

달랑 두 가지, 검고 하얀 입자만 갖고 농도와 명암을 달리해 주변의 풍광은 물론 바람의 실체와 물결 소리까지 담아낸 듯한 사진을 보며 왜 컬러 사진으로 하지 않고 흑백사진으로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질 않습니다.
 
방에는 스님 외에 대여섯 명의 객이 앉아있었다. 스님께 가볍게 인사하고 상무주암에 23년 만에 찾아왔다고 하니, 객 중 하나가 부부처럼 보이는 두 분을 가리키며 30년 만에 상무주암에 오신 분들이라고 소개를 했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진정한 암자일 것이다. - <상무주 가는 길>, 178쪽
 
그러면서도 흑백에서만 찾을 수 있는 여백의 미와 여유가 느껴집니다. 이미 알록달록한 색으로 모두 다 채워진 컬러 사진이었다면 보는 이의 마음으로 채색해 볼 여백은 없고, 읽는 이의 마음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여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자가 담아온 사진에 초록색을 조금 상상하면 한여름에 찾아간 암자가 되고, 노란 빛이나 분홍빛을 조금 더 떠올리면 암자로 가는 길이 만산홍엽의 산길로 그려집니다. 뚜벅뚜벅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절집 풍경, 절집을 단장하고 있는 단청빛깔마저 내 마음대로 골라 칠해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담보됩니다.

흑백사진으로 만나는 암자는 어두컴컴한 마음을 단청하게 하는 유혹이고, 서정의 글로 더듬어 나가는 암자는 현란하도록 뒤숭숭한 마음을 차분히 도닥여주는 차분한 여정입니다. 책에서는 암자 26곳만을 읽을 수 있지만 26곳 암자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에는 지은이가 살아온 인생의 여정까지를 어릿어릿 어림하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상무주 가는 길> / 지은이 김홍희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9월 20일 / 값 19,800원


상무주 가는 길 - 사진가 김홍희의 다시 찾은 암자

김홍희 지음, 불광출판사(2018)


태그:#상무주 가는 길, #김홍희,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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