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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올림 공연 모습
▲ 김사월(싱어송라이터) 박희진(키보디스트)공연 모습 감수성 올림 공연 모습
ⓒ 시민기획단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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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옅게 흩뿌린 가을비를 맞은 단풍, 건조한 듯 바스락대다 찬 물기에 도르륵 눈물짓는 묘한 습기.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노래가 그랬다. 지난 10일 수요일 오후 7시 수원시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2018 편파적 콘서트 감수성 올림 첫 강연이 열렸다. 여는 공연으로 키보디스트 박희진과 함께한 김사월은 <프라하>와 <접속> 등 애틋한 노래를 불러 마음에 온도를 높였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은유 작가는 감수성도 능력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따로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 감수성을 키우기 쉽지 않다. 감수성이란 뭘까?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영향받을 수 있는 능력, 감응력이 아닐까? 이런 감수성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는 사람들이 은유 작가에게 유독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다.

감수성을 키우는 5가지 방법
 
감수성을 키우는 다섯 가지 방법에 대해 강연 중이다.
▲ 강연중인 은유 작가  감수성을 키우는 다섯 가지 방법에 대해 강연 중이다.
ⓒ 시민기획단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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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가만히 뭔가를 오롯이 바라보기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책을 쓴 이옥남 어르신의 글은 오롯이 바라보는 힘을 보여준다. 남편과 시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이 글씨를 안다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도라지 팔아 공책을 사서 써 내려간 일기를 시작으로 꼬박 30년 동안 글을 썼다.

온몸을 쥐어짜듯 울어대는 새를 보며 사람이 일하는 것 못지않게 새도 참 힘들게 산다는 걸 알게 됐다는 글은, 누구보다 자연을 오래 바라본 이의 통찰을 보여준다. 자연과 자신의 삶을 연결해 생각하는 힘은 바로 '가만히', '오롯이'에서 나온다.

감수성을 키우는 두 번째 방법은 영화 보기다.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들어가 보는 연습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은유 작가에게는 영화 보기다. 단순한 감상보다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며 영화를 본다.

최근엔 이언 매큐언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체실 비치에서>를 보며 진정한 사랑에 관해 묻고,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서는 청년 빈곤과 행복한 삶에 관해 생각했다. 평소 생활에서 붙잡지 못한 질문을 영화를 통해서 하게 된다. 다른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은 곧 감응력이며 감수성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세 번째 방법은 시 읽기다. 6년 전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절이었다. 토요일 오후 6시에 시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 함께 읽었던 시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천천히 시를 읊으며 무작정 시를 이해해 보려 했던 그 시간은,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암호를 풀 듯 시를 해석하며 언어에 집중하다 보니, 말도 안 된다 하고 싶은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되짚고 이해하려는 맘이 생긴다.

네 번째는 노인,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편견 없이 바라보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해야 한다. 발달 장애인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길을 찾고 있는 장혜영 작가의 <어른이 되면>을 읽어보길 권한다. (장혜영 감독은 10월 31일 '감수성 올림' 강연 출연자로 초대돼 강연한다.)

다섯 번째 감수성을 키우는 방법은 경청하기다. 최근 가난한 청소년 노동자 이야기를 글로 담고 있는데, 노동 현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다 사망에 이른 억울한 사연을 유가족에게서 듣다 보면, 화도 나고 뭐라 이야기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다. 그 자식들은 다 죽는다.' 한 유가족 아버님이 이런 말을 털어놓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먹먹하다. 그런 순간에 그저 듣는다. 뭐라 해석하거나 감정을 더하지 않고 들으면 상대가 가끔 들어줘서 고맙다. 말하고 나니 후련하다는 얘길 한다.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수성은 자란다.

감수성을 키우는 일은 대부분 자본주의 속성에서 벗어난 일이다. 사회적인 명예나 부를 쌓는 일과 역행하는 일들인데, 대신에 자신을 잃지 않게끔 지켜준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다. 감수성이 옅어지는 순간이다.
 
강연 마치고 참가자 함께 사진 촬영
▲ 감수성 올림 1강 은유 작가와 함께  강연 마치고 참가자 함께 사진 촬영
ⓒ 시민기획단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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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은유 작가의 책 제목이자 오늘 강연의 작은 제목인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투명해진다는 말의 뜻을 물었다. 최영미 시인의 '사는 이유'란 시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는데,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싸우다 보면 자신의 욕망과 가치가 뚜렷해지며,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그런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고.

잘 싸우는 법, 약자가 돼 억울할 때 해결하는 법, 사랑하는 법, 위로하는 법 등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신문 1면에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인가란 질문에, 앞서 이야기한 가난한 청소년 노동자 이야기를 맘껏 풀어보고 싶다고 한다. 다음에 만나게 될 은유 작가의 책은 아무래도 이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런 강연과 공연을 접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갖고 있던 걱정 고민 다 내려놓고 이 공간과 강연에 푹 빠져서 편안하게 즐긴 시간이었어요. 감수성을 올리기 위해 나를 내려놓고 가만히 바라보라는 은유 작가님의 말씀이 마음에 오래 남네요. 오늘 이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연 참가자가 남긴 후기를 보니 힘이 난다.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심장이 뛴다면, 당신의 꿈속으로 접속할 수도 있겠죠.'

김사월이 오늘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들려준 <접속>의 노랫말이 맴돈다. '감수성'에 주파수를 맞춘 두 번째 '접속'이 오는 10월 17일 수요일 오후 7시에 마련된다. 출장 작곡가 김동산의 노래와 연주 그리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뛸 누군가의 두근거림을 상상해본다.

태그:#은유, #김사월, #박희진, #싸울때 마다 투명해진다,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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