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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에게 도덕을 가르치면서 느낀 도덕교과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현행 중등교육에서 교과서는 도덕①·② 두 권입니다. 이중 심화과정인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를 텍스트로 다룹니다.-기자 말

우리사회에서 차별과 혐오에 가장 노출된 취약계층을 뽑는다면 아마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일 것이다. 특히 아시아 및 아프리카 약소국 출신자에게 혐오가 집중되어 있다.

이 같은 혐오를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마땅한 시대 과제 중 하나다. 특히 도덕 과목은 근저의 가치관과 사회 윤리를 다루는 교과인 만큼, 다문화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첨예하고도 섬세하게 선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도덕교육은 다문화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를 살펴보자. 소단원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중단원 <세계화 시대의 우리의 과제>의 첫째 목차다. 세계화와 국가 간 교류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고 확립하는 것이 단원의 목적이다.

'국가' '민족' 구분 못하는 도덕교과서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29쪽. 소단원<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첫 장은 재외동포의 한국 문화 체험 사진으로 시작한다.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29쪽. 소단원<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첫 장은 재외동포의 한국 문화 체험 사진으로 시작한다.
ⓒ 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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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원명은 "한국인의 정체성"인데 정작 서술한 것은 '한민족의 정체성'이다. 국가와 민족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먼저 첫 장을 보자. 전통 한복을 입은 이들과,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사진 두 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설명을 보니 "우리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재외동포들", "장구를 치며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이라 기술돼 있다. 출처를 검색하니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행사 장면이다.

재외동포재단법에 따르면, 재외동포란 장기간 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적자 혹은 한민족 혈통을 지닌 자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 아닌 타 국적의 소유자라도 한민족의 혈통을 일부라도 지녔다면 재외동포에 해당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평생을 산 미국인이라도 직계 할머니가 한민족이라면 재외동포다. 한국인의 정체성 단원에, 이처럼 한국 국적이라기보다는 한민족인 재외동포가 민족문화를 체험하는 사진을 소개하는 것은 주제와는 다소 이질적이다.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30쪽.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사례로 만주족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오히려 민족 정체성이 국가 정체성에 흡수된 사례다.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30쪽.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사례로 만주족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오히려 민족 정체성이 국가 정체성에 흡수된 사례다.
ⓒ 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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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만으로 교과서의 잘못을 단정 지을 순 없다. 한국인 대다수가 한민족인 만큼,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정체성이 상당부분 겹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장을 보자.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사례로, 교과서는 중국 만주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교과서는 "자신이 만주족이라는 정체성조차 지니지 않"은 탓에 한족의 문화에 흡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또한 '민족의 정체성'을 다룬 사례에 불과하다. "한국인의 정체성" 단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문화 배제 양산하는 도덕 교과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2012)의 한 장면. 극중 음악감독 유일한(김래원 분)과 아역배우 영광(지대한 분). 영광은 한국-필리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극중에서도 영광은 많은 편견과 차별을 겪는다. 실제로 배우 지대한은 한국-스리랑카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2012)의 한 장면. 극중 음악감독 유일한(김래원 분)과 아역배우 영광(지대한 분). 영광은 한국-필리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극중에서도 영광은 많은 편견과 차별을 겪는다. 실제로 배우 지대한은 한국-스리랑카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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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대체 한국인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정의할까. 교과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효도 정신. 둘째, 선비 정신. 셋째, (조상의 문화에서 기인한) 자연 애호 정신. 넷째, 풍류 정신. 다섯째, 평화 애호 정신과 국난 극복 정신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존재 이전의 민족에 기반한 개념들이다.

한국인 대다수가 한민족이고 국토의 역사가 한민족의 역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곧 한민족은 아니다. 한국인의 정체성 일부가 한민족의 정체성인 것은 당연하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모조리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채우는 것은 현대국가의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이같이 은밀하지만 무책임한 교과서 서술은 생각의 기저에서 이주민과 다문화를 배제하며, 나아가 사회의 편견을 부추기게 된다. 다문화 사회인 오늘날, 진정 도덕교육이 사회 윤리 확립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서술하는 한국인 정체성 중 적어도 한둘은 민족을 떠나 대한민국 자체 내에서 찾아야 옳다.

교과서가 제시한 "선비 정신"과 "풍류 정신" 등은 현대 한국인이 지켜야 할 정체성이라기에도 오늘날 너무 거리가 멀다. 교과서는 두 정신의 사례로 각각 조선 맹사성과 신라 화랑을 소개하는데, 이 역시 21세기 세계화에 임하는 한국인의 정체성으로서는 다소 고리타분한 사례다.  

그보다는 평화와 인권 정신 등 당면한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더 적절하면서도 현실에 유의미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일본제국주의와 군부독재 등 불의에 맞서 온 현대사로부터, 정의로운 항거 정신을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끌어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처럼 한민족이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유하고 확립할 수 있는 정체성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의 학교 현장이 교육해야 할 내용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세계화의 대상도, 교류할 타자도 아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엄연한 한국인이요 '우리'다.

귀화인이 늘어나는 다문화사회이자 이들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현실에서, 교과서는 보다 현실과 밀접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책임 있는 서술을 지향해야 한다.

※ 본문에서는 줄곧 '다문화'란 말을 사용했으나 '상호문화'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음을 밝힙니다. '다문화'는 '한국문화를 제외한 나머지 문화들'로 수직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상호문화'는 한국문화 역시 다른 문화와 상호교류 하는 개념으로, 보다 수평적이기 때문입니다.

태그:#상호문화, #다문화, #도덕교과서, #도덕교육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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