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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하루는 유치원을 다녀온 뒤, 침대에 벌렁 눕더니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나 아무래도 피아노를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유치원이 끝난 뒤, 추가 비용을 내고 특별활동으로 하던 피아노를 무척 재미있어 하던 아이였다. 의외의 태도에 깜짝 놀란 나는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왜? 도대체 왜 피아노를 끊고 싶은데?"
"선생님이 친구들이 있는 데서 피아노 책으로 내 머리를 이렇게 때렸단 말이에요."
 

아들 아이는 화가 난 얼굴로 바이엘 교본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는 상황을 재현해 보여줬다.

"네가 뭐를 잘못했나 보지."

나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에 아이는 정색을 하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아니예요. 선생님이 친구들이 보는 데서 내 머리를 책으로 이렇게, 이렇게 때렸단 말이에요."

야단을 맞은 적 없는 아이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피아노 교본으로 자기 머리를 때렸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하고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좀처럼 자기 고집을 피우지 않던 아이가 완강하게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여러 번 말하는 데도 나는 어리석은 충고를 하며 아이를 달랬다.

"꼭 피아노 레슨을 끊어야겠으면 네 맘대로 해.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너 바이엘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음표를 읽는 시험도 있어서 악보를 볼 줄 알아야 하거든."

내 말에 아이는 고민을 하더니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알았어요. 그럼 그냥 다녀보도록 할게요."

당시에는 아이의 상처와 의견을 묵살한 내 대화법과 해결 방법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잘 몰랐다. 이후로 다신 피아노를 끊겠다는 말이 없어 오히려 나는 내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이후 아이 모르게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와 있었던 상황을 전하며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선생님은 대답 대신 내게 이렇게 반문했다.

"혹시 요즘 집안에 무슨 일이 있나요? 현이가 방학이 끝나고 이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전엔 안 그랬는데... 친구들과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책도 같이 치우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서 친구들만 시키더라고요. 피아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연습을 안 해 오는 것 같아요. 때린 건 아니고요. 가볍게 머리에 책을 댄 정도예요."

이유를 알고나니 가슴이 아팠다. 사정을 잘 모르는 유치원 선생은 아이가 꾀를 부린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사실 연습할 피아노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빠 아이가 유치원이 끝나고 바로 집에 오면 아무도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하여 유치원 특별활동으로 피아노며 미술을 시키며 아이를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있도록 했던 것이다.

아이는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서너 명이 남는 시간까지 유치원에 억지로 붙들려 있던 셈이었다. 아이들이 거의 오지 않는 방학조차 아이는 유치원에 가야했다. 아이가 '다섯 시에 집에 오면 안 되느냐'고 몇 번이나 애원을 했지만 방법이 없어 아이를 달래야 했다.

아이는 사실 유치원에서 너무 외롭고 힘들었던 것이다. 아이는 나름대로  '내가 지금 이렇게 힘이 들다고 자기의 힘든 것을 알아달라'고 외쳤지만 나는 그저 알아서 숨을 쉬며 생존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소통과 공감의 능력이 없었다. 
  
치유자 정혜신이 전하는 공감의 모든 것
▲ 당신이 옳다 치유자 정혜신이 전하는 공감의 모든 것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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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때 내가 정혜신의 적정심리학<당신이 옳다>(해냄)를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진짜 공감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물어야 할 것을 먼저 물었을 것이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단 하나의 핵심 화두는 '공감'이다.

그이가 말하는 공감은 태아가 엄마 뱃속 양수에 안온하게 싸여 보호받으며 생명의 숨쉬기를 이어갈 때 느낀 그런 호흡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열 달 동안 아이와 일체였던 대부분의 엄마조차 자녀와 공감하는 데 미숙하다. 어른의 판단과 잣대를 먼저 들이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애가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말이 끝나곤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저는 아이 마음이 어땠는지 얼마나 속상했는지, 왜 때릴 수밖에 없었는지 하나도 묻지 않았더군요. - 160
 
친구를 때린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친구를 때리는 건 잘못된 거야,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고 말이다. 어른 생각으로 판단하고 충고하고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결론까지 내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묻지도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한다. 부모 역시 공감을 받고 자라지 못했고, 공감 감수성을 키우고 훈련하지 못한 탓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고 싶은 일이 많다. 그때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가 누구든 반드시 진실한 '공감'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 공감하는 이로부터 위로와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공감은 누군가를 살리는 능력이다. 하지만 저자는 공감이 상대방을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공감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 '해주는 일'이 아니다. 상처가 공감 받는 것에 예민하지 못하면 누군가를 공감하는 일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와 너, 양방을 공감하지 못하면 어느 일방의 공감도 불가능한 것이 공감의 오묘한 팩트다. 그래서 공감은 너도 살리고 나도 구한다. 그래서 공감은 치유의 온전한 결정체다. 이 온전함의 토대는 오로지 자기 보호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고 유지되며 자기 보호는 자기 경계에 대한 민감성에서 시작된다. - 187쪽
 
자기보호는 세상의 모든 상처받을 일로부터 자기를 감싸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처 받은 자신에 대한 자기연민과 징징거림,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도 필요하다. 내 안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을 애써 소리를 안으로 삼키거나 마음의 빗장을 잠글 필요가 없다. 위급할 땐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하니 알려야 한다.

안으로 곪은 상처가 밖으로 터져 나와 상처가 치유되고 새 살이 돋을 수 있도록 말이다. 마음 속에서 곪을 대로 곪은 상처 부위를 적절하게 건드려 터지도록 하는 능력이 '공감'이다. 턱 막혀 있는 숨을 내쉬며 숨통이 틔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공감이 가진 최고의 가치며 마력이라 할 수 있다.

그 모든 '공감'의 힘과 경험을 담아낸 책이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이다. 세상살이에 지쳐 호흡이 가빠진 우리들, 영혼의 편한 호흡이 필요한 당신과 내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가슴으로 읽어야만 한다는 말을 덧붙여야겠다.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짝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없던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공감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공감의 힘을 내가 가진 경험과 정성을 다해 펼쳐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지금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이다. - 315쪽

덧붙이는 글 | 당신이 옳다/ 지은이 정혜신. 영감자 이명수/ 해냄/ 15,800원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해냄(2018)


태그:#당신이 옳다, #적정심리학, #정혜신. 이명수, #공감, #마음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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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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