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현역 투수들 중 최고의 왼손 선발투수는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다. 3번의 사이 영 상(2011, 2013, 2014)과 1번의 리그 MVP(2014)를 수상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투수 영역을 통틀어 지구 최강의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의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하락세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 선발투수 중에서 커쇼의 아성을 뛰어넘은 선수가 아직은 없다.

다만 정규 시즌의 모습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다. 라이벌 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는 소속 팀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한 뒤 3번의 월드 챔피언 등극에 모두 기여하면서 자기 자신도 한 차례 월드 시리즈 MVP(2014)를 수상했지만, 그 동안 커쇼는 가을만 되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커쇼는 데뷔 시즌인 2008년과 2009년 당시에는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에서 후배의 역할로 포스트 시즌에 출전했다. 이후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하며 정규 시즌에서의 최고 영예를 안은 뒤 본격적으로 출전한 2013년 포스트 시즌부터 그는 매번 불운에 시달리고 있다.

NLCS 1차전 패한 커쇼, 상대 "구원투수"에게 홈런 허용

물론 커쇼가 데이비드 프라이스(보스턴 레드삭스, 포스트 시즌 선발 10경기 무승 9패)만큼 포스트 시즌에서 선발로 나갈 때마다 항상 부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 무자책 경기를 펼친 적도 몇 차례 있었고, 지난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는 전날 류현진의 7이닝 무실점 투구에 긍정적 자극을 받아 처음으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6일을 쉬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커쇼는 또 다시 가을만 되면 찾아오는 불운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10월 13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 밀러 파크에서 열렸던 경기에서 커쇼는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2번째로 등판했던 '구원투수' 브랜든 우드러프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충격적인 기억을 남기게 됐다.

물론 이날의 경기는 두 팀 모두 선발투수를 일찍 내렸다. 브루어스는 당초 선발로 등판했던 왼손 투수 지오 곤잘레스를 2이닝 만에 내리고 자신들의 강점 중 하나인 불펜 이어 던지기 작전을 가동했다. 그리고 그 교체된 투수 우드러프가 3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커쇼를 상대로 홈런을 날린 것이다.

포스트 시즌에서 투수가 홈런을 날린 적은 23번이 있는데, 브루어스 프랜차이즈 역사에서는 우드러프가 처음이었다. 커쇼가 상대 투수에게 홈런을 맞은 기억이 정규 시즌에서 3번(모두 우타)이 있었지만, 포스트 시즌 및 좌타 투수에게는 처음이었다.

커쇼는 2회까지 실점 없이 던지고 있었고, 다저스도 2회초 매니 마차도의 선두타자 홈런으로 브루어스의 포스트 시즌 20이닝 연속 무실점을 중단시키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커쇼가 상대 팀 구원투수에게 홈런을 맞은 이후 경기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고 말았다.

커쇼는 로렌조 케인과 크리스티안 옐리치에게 각각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설상가상으로 다저스의 포수 야스마니 그란달은 커쇼의 공을 놓치는 패스트 볼 허용에 이어 심판에게 타격 방해 판정까지 받는 바람에 1사 만루 위기까지 맞이했다.

그리고 헤르니안 페레스의 역전 희생 플라이 작전이 나올 때 그란달은 홈으로 들어오는 송구를 놓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8이닝 동안 85구 밖에 던지지 않았던 커쇼는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3회까지 무려 63구를 던졌다.

커쇼는 4회말에도 일단 마운드에 오르긴 했다. 그러나 7번타자 매니 피냐에게 볼넷, 8번타자 올랜도 아르시아에게 안타를 허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번에는 좌익수 크리스 테일러가 공을 뒤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브루어스의 크레이그 카운셀 감독은 투수 타석에 대타 도밍고 산타나를 냈고, 초구 2타점 적시타가 터지며 커쇼의 투구를 중단시켰다.

3이닝+ 6피안타(1피홈런) 2볼넷 2탈삼진 5실점을 기록한 커쇼의 자책점은 4점이었다(74구). 3회에 그란달의 각종 실책으로 인해 비자책점이 1점 반영된 것이었다. 커쇼는 2013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에서 4이닝 7실점(무득점 패전)에 그친 적이 있었는데, 이번 경기를 통해 포스트 시즌 선발 등판 최소 이닝 기록을 3이닝으로 단축하고 말았다.

정규 시즌과는 너무 다른 커쇼, 불운은 언제까지?

커쇼의 정규 시즌 성적은 318경기(316선발) 153승 69패 평균 자책점 2.39, 포스트 시즌 성적은 26경기(21선발) 8승 8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4.26이다. 선발 등판으로만 한정하면 21경기 8승 8패 4.34인데, 사실 커쇼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5경기를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나쁜 성적은 아니다.

커쇼가 카디널스가 아닌 다른 팀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을 때의 기록은 16경기 8승 4패 평균 자책점 3.79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렬한 모습의 커쇼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역할은 했다는 뜻이다.

카디널스 상대로 5경기 선발 등판 성적 무승 4패 6.14 역시 그 기록을 뜯어보면 항상 나쁜 것은 아니었다. 무자책 경기를 포함하여 퀄리티 스타트 경기가 5경기 중 3경기나 될 정도로 괜찮기는 했다. 다만 2013년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4이닝 7실점) 경기와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6.2이닝 8실점, 7회에만 6실점) 2경기가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커쇼는 포스트 시즌의 라운드 별 성적을 나눠 봤을 때도 유난히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성적이 불운한 투수였다. 디비전 시리즈 12경기(11선발) 5승 3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3.72, 월드 시리즈 3경기(2선발) 1승 무패 4.02와 비교해서 챔피언십 시리즈 11경기(8선발) 2승 5패 5.24의 모습은 유난히 크게 보인다.

다저스가 2013년부터 매년 우승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성과는 2017년 내셔널리그 챔피언 등극 뿐이었다. 2017년에도 월드 시리즈 7차전까지 갔지만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창단 첫 월드 챔피언 등극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동안 다저스의 우승 도전에는 항상 커쇼의 불운한 스토리가 있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번의 포스트 시즌 중 2015년 디비전 시리즈를 제외한 4번의 포스트 시즌에서 다저스가 최종 탈락한 경기는 모두 커쇼가 등판했던 경기(4경기 중 선발 등판 3전 전패)일 정도였다.

올해에도 일단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그 불운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커쇼가 정규 시즌 밀러 파크 등판 기록이 7경기 4승 1패 1.40이었는데, 그 때의 모습을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적지에서 먼저 1패를 당하면서 2차전에 등판하게 되는 류현진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게 됐다.

커쇼가 조기에 강판되었고 경기는 패했지만, 그나마 희망적인 요소는 다저스가 경기 후반에 브루어스의 불펜을 어느 정도 공략은 했다는 사실이다. 브루어스는 곤잘레스(2이닝), 우드러프(2이닝), 조시 헤이더 3명의 투수는 도합 7이닝 1실점으로 다저스 타선을 봉쇄했다.

그러나 이후 하비에르 시데뇨(0.1이닝 1실점), 호아킴 소리아(0.1이닝 2실점), 제레미 제프리스(0.1이닝 무실점)에 이어 마무리투수 코리 크네이블(1이닝 1실점)까지 도합 4명이서 2이닝 4실점으로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이닝을 분담한 선발 요원이나 롱 릴리프들과는 달리 정작 경기 후반을 책임지는 불펜 요원들이 난조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브루어스는 선발로 충분히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투수를 1차전에만 3명을 소모했다. 또한 마무리투수 크네이블이 경기를 쉽게 끝내지 못했다는 점도 다저스에게는 희망적인 요소로 보였다. 경기 자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다저스가 2차전에서 류현진을 앞세워 설욕전을 펼치고 커쇼 개인에게도 5차전에서 설욕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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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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