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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백운교 앞에서
 불국사 백운교 앞에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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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도 식후경
 

원성왕릉을 나와 불국사 가는 길에 식당을 들르기로 했다. 혼자 다녔으면 그냥 건너뛸 점심이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끼니를 챙기는 건 필수였다.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배고프면 인정사정없이 징징대는 아이들. 시간이 부족할 때는 야속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그 지역 맛을 알게 되니 그 역시 가족 여행의 백미임은 분명했다.

불국사 주변에 맛집이 있으려나. 스마트폰 앱으로 검색하니 의외로 밀면을 파는 식당들이 많았다. 웬 밀면? 부산이 가까워서 그런가? 부산 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 장사를 하는 건가?

어쨌든 우리는 그 많은 밀면집 중 한 군데를 골라 들어갔고 서울에서는 말이 안 되는 돈을 내고 밀면과 불고기를 흡입하듯 먹었다. 때가 약간 지나서 배고프기도 했지만 음식이 워낙에 맛있었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한산하던 식당은 어느덧 사람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맛집을 잘 골랐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탄을 연발하며 연신 불고기를 추가하는 아이들. 그런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배부를 수밖에. 그래, 여행이란 보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중요한 요소지. 그것은 혼자 여행하면 절대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불국사 관람

불국사 도착. 차는 후문에 세웠지만 우리는 굳이 몇백 미터를 걸어 정문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사찰이란 사바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므로 여러 개의 관문을 거쳐 부처님을 뵈어야만 그 감동이 배가되는 법. 일주문을 시작으로 사천왕문을 지나 누각을 건너 대웅전을 봐야 사찰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다다르니 조금 긴장되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천왕만 보면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웬걸.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곳을 천연덕스럽게 지나갔다. 무섭지 않냐며, 너희들이 잘못하면 이분들이 잡아갈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이들의 콧방귀였다. 6살 막내만 긴가민가할 뿐이었다. 오호라 통재라. 이제 너희들의 순수한 시절도 거의 끝나가는구나.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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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드디어 그 유명한 백운교와 청운교가 자태를 드러냈다. 개인적으로 불국사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자, 수학여행 때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 역시 아이들을 앞에 세워 사진 찍기에 바빴다. 아마 너희들도 나중에 이 사진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아빠가, 우리가 모두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시간의 유장함을 이야기하게 되겠지.

다음은 불국사의 백미 석가탑과 다보탑이었다. 사찰을 거닐면서 다보탑을 바보탑이라 칭하며 깔깔대던 아이들은 정작 석탑을 마주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와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란 듯했다. 석탑 앞에서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는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기 바빴다.

"어때? 10원짜리 동전에서 볼 때와는 많이 다르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응? 10원짜리? 맞아. 나, 동전에서 이 탑 본 적 있어."


까꿍이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아이들은 10원짜리 동전은 고사하고 500원짜리 동전도 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물가가 워낙 올라 기본이 천 원이고, 많은 사람들이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던가. 그러니 아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다보탑에 대한 감흥이 적을 수밖에.

결국 그것은 세대 차이였다. 경험의 다름에서 나오는 온도 차. 안타까웠다. 내가 다보탑을 보면서 느끼는 이 감동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니.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면 바로 그것이 소위 '꼰대'의 시작이겠지. 나의 경험을 일반화시켜 타인에게 강요하는. 아쉬웠지만 그 뒤의 감동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 놓은 채 불국사를 나왔다.

석굴암도 스탬프
 
 토함산 석굴암
 토함산 석굴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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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를 나와 오직 스탬프를 찍기 위해 동리목월문학관을 잠깐 들른 뒤 토함산 석굴암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고 올라서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석굴암 가는 길은 꽤나 길고 구불구불했다. 이 깊고 험한 길을 오로지 부처님 뵐 생각으로 올랐을 신라인들을 생각하니 새삼 종교의 힘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석굴암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금방이라는 나의 말에 가볍게 생각했던 아내는 내내 툴툴거렸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그 역시 스탬프의 힘인 듯했지만 그렇게라도 아이들이 석굴암을 즐겁게 접할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어쨌든 석굴암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후 몇 번 더 와야 할 텐데 그때 처음 찾았던 기억이 힘들다면 그건 나의 책임 아니겠는가.

저 멀리 석굴암의 모습,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석굴암 보존을 위해 앞을 가리고 있는 한옥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 때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과연 저 모습이 최선인지는 의심스러웠다. 아주 오랜 세월 외부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석굴암이건만, 과학으로 보수한답시고 저렇게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일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석굴암 머리 위로 동해의 햇살이 내린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알면 알수록 더욱 신기하고 감탄해 마지않는 석굴암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스탬프를 찍는 문화재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래, 이렇게 찍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자,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감은사지로 출발하자.

천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신라의 힘
 
 감포 문무대왕릉 앞에서
 감포 문무대왕릉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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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을 나와 다시 토함산을 휘휘 돌아 감천 앞바다 쪽으로 차를 몰았다. 감은사지가 이내 등장했지만 그곳을 지나쳐 내가 향한 곳은 동해의 문무대왕릉이었다. 비록 스탬프 안내서에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문무대왕릉을 아이들에게 안 보여줄 수 있겠는가.

김춘추와 문무대왕릉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아빠를 뒤로하고 아이들은 바다가 보이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으레 그랬듯이 바다와 모래밭의 경계에 서서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 너희들에게 무슨 문무대왕릉이냐. 바다는 바다일 뿐.

그래도 못내 아쉬운 생각에 아이들을 데리고 문무대왕릉이 가장 잘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자 그곳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무속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촛불을 피고 치성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문무대왕릉이 가장 잘 보이는 횟집 방마다 무속인들의 제사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낯설지 않은 굿소리까지.
 
 문무왕을 모시고 있는 무속인들의 공간
 문무왕을 모시고 있는 무속인들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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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말로만 듣던 영남 세습무들의 동해 별신굿인가. 인천 자유공원에 가면 무속인들이 맥아더 장군을 모시듯이, 이곳에서는 무속인들이 문무대왕이 죽어서 되겠다고 한 동해 용왕을 모시는 중이었다. 혹자들의 눈으로 보면 한낱 미신이겠지만, 그것은 천년 넘게 내려져 오는 신라의 힘이었으며, 아직 우리 핏속에 흐르는 샤머니즘의 전형이었다.

낯선 풍경과 낯선 소리, 그리고 낯선 향내였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여기도 경주라는 이야기에 다만 신기해할 뿐이었다. 왕릉과 사찰만 생각했던 녀석들에게 우리의 전통적인 유전자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부디 아이들이 그 모든 것들을 경험한 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감은사지가 가장 아름다운 때
 감은사지가 가장 아름다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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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은사지 석탑
 감은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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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뒤로하고 감은사지로 향했다. 석양이 질 무렵, 감은사지 석탑이 가장 아름다운 때였다. 붉게 물든 노을을 배경으로 폐사지의 쓸쓸함과 감은사지의 웅장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보탑이나 석가탑보다 거칠고 조악한 모습의 감은사지 석탑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 질박함의 미에 매료되었다. 사찰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두 탑이 오롯이 만들어내는 힘찬 기운. 아마도 이것이 신라의 저력일 것이다.

경주 시내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 아이들이 오늘 본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분황사 모전석탑에서부터 감은사지 석탑까지. 그래서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머뭇거리는 아이들에게 내가 외쳤다.

"불국사는 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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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