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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곳곳에 700만의 재외동포 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살면 국내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무뎌질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빠르게 챙겨보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해외 곳곳에는 국내외 이슈로 활동하는 개인 활동가, 활동 단체들이 있습니다. 활동 성격과 방향은 다양합니다. 같은 주제로 활동한다 하더라도 그곳의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재외동포 한인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전세계의 한인 활동가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기자말

홍일씨는 독일 데트몰트 극장 베이스 솔리스트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극장의 베이스 솔리스트를 역임할 정도로 실력 있는 성악가 입니다. 현재는 프리랜서 오페라 가수로, 여러 오페라 공연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문화 담론의 장을 열고자 뜻을 모은 비엔나 문화인들의 게릴라 조직인 비엔나 문화 제작소의 일원이기도 한 홍일씨를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인터뷰했습니다.

홍일씨는 한국에서 음악 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유학을 위해 유럽 이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성공한 오페라 가수로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2016년 겨울, 거리로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연일 계속되는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를 보며 이곳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퇴진 집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비엔나 문화 제작소 퇴진 집회
 비엔나 문화 제작소 퇴진 집회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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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 집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로도 이어졌습니다. 이후 국내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홍일씨는 '세월호 가수'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4월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모임을 준비하는 전세계 지역으로부터 초청받아 '순회 공연'을 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를 시작으로, 광화문광장, 휴스턴, 시카고, 디트로이트 앤하버,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서 음악회를 가졌습니다. 이 공연을 하며 홍일씨는 '세월호는 정치 이슈'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마음도 바꿔놓았습니다. 순회 공연 이후 홍일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 문화제 순회 공연을 하는 홍일씨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 문화제 순회 공연을 하는 홍일씨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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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의 공연을 본 적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 앞에서 찬송가 '때로는 너의 앞에'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전, 수천 명 앞에서도 수차례 공연한 베테랑 오페라 가수인 그가 매우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 곡을 연습하며 목이 메여 한 번도 끝까지 부른 적이 없습니다. 중간에 제가 노래를 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노래했습니다.
 
 수요시위에 참석하여 공연중인 홍일씨
 수요시위에 참석하여 공연중인 홍일씨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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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얼마 전부터는 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엔나 퇴진 시위 이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만난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로부터 평화에 대한 중요성을 배웠다고 합니다. 홍일씨는 처음으로 평화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5월 한국에 방문했을 때 정의기억재단에서 운영하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도 가보고 수요집회에 나가 공연도 했습니다. 또 평택의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시설인 '햇살 센터'에도 방문하여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 직접 느꼈습니다. 이후 그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노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요시위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은 홍일씨
 수요시위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은 홍일씨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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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되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맙다며 달고 있던 노란리본을 쥐어줬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노란 리본을 넉넉히 넣어 다니며 자신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합니다. 활동을 하며 힘든 순간에 대해 묻자, 그는 단호히 힘든 순간은 한번도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힘든 순간이 없진 않았을 것입니다. 홍일씨가 행복을 느낀 순간이 그 힘든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기 때문에 그는 힘든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홍일씨는 요즘에도 공연과 여러 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홍일씨는 인터뷰할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인터뷰 하면서 느낀 점은 정신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의 마음 중심에는 항상 평화와 정의를 향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정치를 잘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만, 같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거리로 뛰쳐나갔던 그 마음으로 계속해서 정의와 평화를 노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홍일씨의 아름다운 마음과 정의로운 목소리가 그의 바람처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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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자카르타 촛불행동 공동리더 박준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