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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 서울 강남구 숙명여자고등학교에 한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경찰은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 이 학교 교장실과 교무실 등을 압수수색 했다.
 지난 9월 5일 서울 강남구 숙명여자고등학교에 한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경찰은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 이 학교 교장실과 교무실 등을 압수수색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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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인 사람들끼리 모여 통성명이라도 할라치면, 교사라는 직업을 밝히기가 꺼려질 때가 많다. 교육계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학교는 질타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표적이 됐고, 교사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철밥통이라는 조롱을 넘어 숫제 무능하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빗발치는 여론의 한복판에 끌려나와 뭇매를 맞고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거나, 산업화 시절 산업역군을 길러낸 터전이라는 자긍심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로 치부될 뿐이다. 교육 관련 비리가 터질 때마다 십중팔구는 사립학교라며, '교육이라는 외피를 쓴 조폭 집단'이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시험지 유출 사건에다 특수학교 내 폭력과 묵인, 학생 성추행, 학교발전기금 전용 등 비리의 종류도 다양하다. 안을 들여다보면, 이사장과 교장이 부부고, 행정실장이 동생이고, 교사가 조카인 학교가 '확대가족'인 곳도 여럿이다. 학교가 비리의 '종합백화점'인 마당에, 만연한 교직원 채용 비리 정도는 애교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물론 일부 악덕 사립학교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사람들은 비리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지목된 해당 학교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마찬가지일 거라고 단정한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전국 학교를 전수조사하자는 목소리가 비등하는 이유다.

학교가 비리의 종합백화점인 시대

교사라는 걸 숨긴 채 술자리 등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예나 지금이나 교육 문제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화제다. 나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며 사립학교와 교사를 짐짓 두둔하지만, 그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오십보백보일 뿐,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썩었다'는 것과, '그런 나이브한 인식 때문에 사립학교가 기고만장해진 것'이라는 질책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는 반론을 펴는 것 또한 공식이다. 각 학교마다 교육의 지표로 삼는 건학이념이라는 게 있는데, 자칫 설립 취지와 교육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학교 편을 든다. 그러면 사립학교 관계자라도 되느냐며 아예 토끼눈을 뜬다. 논쟁은 대개 이렇게 진행된다.

"그들이 입만 열면 되뇌는 건학이념은 방패막이로 기능할 뿐, 정작 교육활동의 지표였던 적이 있었던 가요? 시험지를 유출하거나 생활기록부를 대놓고 조작하지는 않았더라도, 명문대 진학 실적을 놓고 애면글면하는 건 사립학교들의 공통된 교육 목표 아닌가요? 온존한 학벌구조에 기댄 채 건학이념 운운하는 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죠."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당연하지만, 그걸 빌미로 사립학교 운영에 대해 간섭하는 건 사유재산권 인정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상충될 우려도 있지 않나요?"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천박한 사고입니다. 국가 예산을 들여 사립학교의 운영을 지원하고 있는 건 교육은 엄연히 공적 영역이라는 방증입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마치 사유재산권의 하위 개념처럼 여기는 타성이야말로 근본적인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이쯤 되면 반박 불가다. 논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썩었다'는 결론을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별무관심인 사람들에게도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가 소수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나아가 사립학교의 운영에 대한 불신은 공교육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쉽게 확산된다.

아무리 과장이며 오해라고 외쳐본들, 사립학교 편에 서서 두둔하고 변호해줄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귀 기울여줄 사람도 마땅찮은 마당에 한가하게 남 탓만 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비리가 만연한 그런 학교들과는 다르다'는 외마디 말로 들끓는 반대 여론에 맞설 수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이미 때는 늦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에 들보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다른 학교의 비리를 먼 산 불구경 하듯 할 게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도 당장 내일이라도 유사한 사건이 터져나올 수 있다는 비상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 학교 밖에서 메스를 들이대는 것보다 내부 구성원들의 자정작용이 훨씬 더 효과적임은 불문가지다.

상시 작동하는 카르텔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 쉽지 않은 문제일 테지만, 사립학교 운영상 폐쇄적인 특성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례로, 사립학교에 임용된 교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년퇴직까지 수십 년간 한 곳에서만 근무하게 된다. 중고등학교를 동시에 운영하는 사학법인이라면 중고등학교를 오가는 게 고작이다.

가족만큼 오랜 세월을 보내는 관계이다 보니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교사의 허물을 지적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혹여 그랬다가는 '너나 잘 하세요'라는 지청구를 듣거나, 자칫 큰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괜히 얼굴 붉히기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서로 못 본 체하거나 묵인하는 게 상수다.

한번은 아이가 지각했다고 교무실 앞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리는 동료교사가 있어 나무랐다가, 이후 한참 동안을 서먹서먹하게 지내야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의 숙제를 줄여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되레 '오지랖 넓다'는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자신의 수업과 생활지도 방식에 대한 타인의 지적을 교권 침해로 간주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특히 교장과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직 교사나 선후배 교사들끼리도 국공립학교와는 달리 위계가 작동한다. 그저 행정 지원과 수업 등 담당 업무의 내용이 다를 뿐인데, 직위나 직급에 따른 상하 관계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교사가 선배 교사들의 수업과 생활지도에 토를 다는 건 퇴근 후 뒷담화 자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라면, 생사여탈권을 쥔 교장과 교감은 물론 선배 교사들 앞에서조차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 평판이 나빠지면 하등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는 지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립학교의 경우는 법인에 인사권이 있어 '잘만 하면' 정규직 교사로 발령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의 근무를 두고 '희망 고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4대강 수문 개방하듯 사립학교의 문 열어야

요컨대 사립학교는 교사들끼리 '침묵의 카르텔'이 상시 작동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사 집단 내부가 수평적인 관계가 정착되어 누구든 할 말을 하는 분위기였다면, 시험지 유출도, 학교 내 폭력도, 학생 성추행도, 심지어 채용 비리조차도 벌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기실 최근 연이어 터진 학교 내 비리 사건을 두고 많은 교사들은 '침묵의 카르텔이 불러온 적폐'라고 규정한다.

가능하다면 썩어버린 4대강의 수문을 개방하듯 사립학교의 '문'을 열어야 한다. 국공립학교 교사들처럼 전근 다닐 수 있는 장치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학생 선택 중심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지역 교육청 단위의 '순회 교사제'가 좋은 모티프가 될 것이다. '순회 교사제'란 학생의 요구에 맞춰 개설된 다양한 과목을 찾아 교사가 여러 학교를 순회하는 제도로, 현재 여러 교육청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교사의 인사이동이 없는 대부분의 사립학교에서는 호황과 불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젊은 교사가 대부분인 시절은 대개 아이들도 학부모도 선호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교사가 나이가 들어 노쇠한 학교는 아무리 경륜을 내세워도 그들의 관심을 이어가긴 힘들다. 부모를 가르친 교사가 여전히 교단에 남아 그 자녀를 가르치는 경우가 사립학교에선 드물지 않다.

사립학교의 '남초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여교사의 비율이 70~80%가 넘는 초중학교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고등학교 역시 국공립학교는 여교사의 비율이 절반을 넘은 지 오래지만, 사립학교는 여전히 셋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 초중등 교원의 '여초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적어도 사립학교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방법이 문제일 뿐, 폐쇄적인 사립학교의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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