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8 16:44최종 업데이트 18.10.18 16:52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몇 년 전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볼 때였다. 뉴스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자 파업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부모님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보수적이셨고 파업 뉴스가 나오자 얼굴부터 찌푸리셨다. (부모님과의 대화를 꺼내놓기가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날의 대화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고민을 던져주었으므로 솔직히 적어본다.)

"왜 또 파업이야."
"할 만한 이유가 있겠죠."
"그게 싫으면 공부를 더 했으면 됐지. 공부 안 해서 힘든 일 하는데, 힘들다고 요구만 하면 되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일한 만큼 처우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돼요?" 하며 한마디 덧붙이긴 했지만 머릿속에 근본적인 질문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덜 힘들고, 소득이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변호사나 의사는 공부를 많이 했으니 소득이 높은 것이고, 공부를 안 한 사람은 공장에 다니거나 청소 일을 하는 등 소득도 낮고 사회적으로도 소위 '낮은' 계급의 일을 하게 되는 현실. 이게 맞는 것일까?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이 현실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그러다 TV에서 덴마크의 직업의식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인터뷰 대상자였던 한 여성은 의사였는데, 예비 남편은 시청 청소부라고 했다. 우리나라였다면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어쩌다? 왜?

하지만 그 여성은 "덴마크에서는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거의 없다"며 "정당하게 노동해서 먹고사는데 왜 남들 앞에서 위축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여기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놀라웠던 이야기는 시청 청소부의 세후 월 소득이 대략 3만 5천 크로네이고, 일반 의사들의 평균 월 소득이 5만 크로네이니 소득 수준도 한국처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청소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저렇게 소득이 비슷하면 의사가 억울하지 않겠냐"고 물으니 (내가 딱 하고 싶었던 질문이다) "아니, 비슷한 시간을 노동하고, 또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방향만 다르지 둘 다 세상에 필요한 일 아닌가? 왜 공부를 많이 했다고 더 소득이 높아야 하는가?"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덴마크의 직업의식은 내가 막연하게나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기대를 '그것이 가능하다'는 현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나 기뻤다. 먼 나라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 가능하구나!

그렇게 시작된 덴마크에 대한 궁금증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책을 찾다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펼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엔 희망보다도 답답함이 더 크게 남았다. '여긴 덴마크 이야기잖아. 우리나라도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그러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나서야 웃으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우리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졌고 가능성이 보였고 자신감이 생겼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오연호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난 후의 사람들의 반응과 이미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 학보사 일을 시작하면서 학생운동을 했고, 최근까지도 노동조합 활동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천 등 소위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9개월 된 아이 덕분에(?) 활동은커녕 육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하면서도 한편에는 '정말 가능할까'라는 좌절의 마음도 자주 고개를 들었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쉽게 바뀔까 하는 걱정이 컸고, 그 마음에는 우리나라의 교육, 입시, 집값, 노동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단단히 얽혀 있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도 이러저러한 사안에 대해 "문제 있다", "바꿔보자"며 집회에도 나가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해보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과연 우리나라에서 바뀔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고 통일이 된다 해도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덴마크 같은 사회는 오지 않을 텐데…' 하는 답답한 걱정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을 해나가고 있고,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거대한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속에 (건방지게도) 혼자 걱정만 하는 척했지 사실 내 삶과 일상을 바꾸는 것에는 게을렀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미 행동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을 더 하자면, 아이까지 낳고 나니 사회 변화를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나조차도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남편과 함께 "우리는 아이가 스스로 인생을 결정하게 하자", "우리는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가 되자"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주변에서 누구는 무슨 교육을 시작했다는데 우리 아이도 뭔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떤 엄마들은 지금부터 그림책을 읽어준다는데 나도 그래야 하나?', '최고로 해주진 못해도 남들만큼은 해줘야 한다는데…' 등등 벌써부터 주변의 분위기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레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작가였는데, "작가는 돈도 못 벌고 힘든 직업이야"라는 엄마의 한마디에 '아, 그럼 작가는 하면 안 되나 보다' 하면서 바로 장래희망을 바꿨던 옛날 일부터 인생과 진로에 대한 주체적인 고민보다 '사회적 인식'에 눈치 봐야 했던 청소년기까지. 아니, 아이를 낳고 벌써부터 주변을 의식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까지.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행복하게 찾아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단순히 '나의 인생'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이렇게 일상에서 다른 고민을 해나가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겠구나, 우리나라도 이렇게 바뀌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몹시 든든해졌다.

"내일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 내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내일은 우리의 오늘이 만들어간다. 정권 교체 시기는 5년 만에 온다. 그러나 사회 교체는 매일매일 이뤄진다. 내가 결심하는 지금 이뤄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그 힘을 기반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꿈틀거림을 시작할 때, 사회 교체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작지만 큰 결심, '나로부터'를 결심하게 해준 고맙고도 무거운 책이다. 책은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를 보여주며 우리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계속 외치는 듯하다. 저자의 강연을 듣고 자식의 행복을 생각하게 된 부모님의 이야기에서, 주변의 시선과 눈치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해가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내가 다시 중3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부끄럽게 만든) '꿈틀리 인생학교' 학생들의 모습에서 덴마크 부럽지 않은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털어내고 "우리도 할 수 있다! 바로 나로부터"라는 결심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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