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5 16:29최종 업데이트 18.10.15 16:29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열여섯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나는 언제나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했다. 누군가 그랬다. 행복한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중학교 때는 어설픈 성적, 평범한 외모, 잘하는 것 하나 없다는 열등감으로 괴로웠다. 운 좋게 진학한 특목고에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학습량과 치열한 성적 경쟁에 치여 늘 꼴찌 근처에 머물렀다. 남들이 최고로 치는 대학에 가지 못해 늘 내가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해 공립학교 선생님이 되었지만, 늘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소위 잘나가는 '사'자 직업을 갖고 폼 나게 사는 듯한 모습에 상대적으로 초라함을 느꼈다. 언제나 최상위권을 위한 들러리에 그치면서 왜 이렇게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야 하나 고민했다. 인생의 몇몇 순간은 반짝거렸던 것도 같지만 대개는 공부에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컸다. 그리고 특별하지 못한 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교사가 되었지만 '실패한 인생'이라는 열등감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속에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적어도 나와 같은 후회를 하면서 살지 않게 지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학생들을 재촉하고 몰아대는 소위 전형적인 꼰대 선생님이 되었다. '얘들아, 더 공부해야 해. 안 그러면 좋은 직업을 갖기가 어려워.' '그렇게 집중 안 하고 딴짓하면 나중에 대학 못 가.'


늘 많은 학습량을 한정된 시간에 아이들의 머릿속에 효율적으로 쑤셔 넣으면서도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은 언제나 내 기대에 못 미쳤고, 나는 더 몰아댔다. 물론 가시적인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늘 잘 가르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엄격하게 행동하는 교사였다.

그러나 열심히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내 표정은 무엇에 쫓기는 표정에 가까워졌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표정은 억지로 끌려가는 소처럼 변해갈 뿐이었다. 가끔 아이들의 성적이 잘 나오면 잘 가르쳤다는 뿌듯함이 들기도 했지만, 대개는 이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왜 성적이 이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아쉬움에 화가 나곤 했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을 힘들어했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교직 생활 4년 차 무렵까지도 나는 평생을 짊어지고 왔던 내 학벌과 직업의 열등감을 학생들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슬럼프가 찾아왔다. '왜 사냐'는 질문은 이제 '내가 교사로서 존재 가치가 있는가', '학생들에게 나와 같은 삶을 살게 오염시키는 전염병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너희가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마음에 늘 비관적이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너는 공무원이니까 해고 걱정 없어서 좋겠다'며 나의 고민을 일축했다. 나도 객관적으로 사회에서 바라보는 직업적 위상은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회에서 소위 삶의 정석이라고 여기는 루트를 간신히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괜찮아야 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올해 초에 이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만났다. 선진국인 덴마크 학생들은 입시 걱정 없이 행복하다는 점과 우리나라에도 '꿈틀리 인생학교'를 설립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오연호 선생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고, 여럿이 어울릴 수 있도록 아이들을 믿고 교육 방법을 바꿔보자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도, 교육학적으로도 완벽했다. 대학 시절, 듀이의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이나 진보주의 교육을 공부할 때 수도 없이 들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덴마크와 꿈틀리 인생학교의 아이들은 그래도 선택받은 학생들이고 운이 좋아 선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 지금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지나친 경쟁에 내몰려 있는데 과연 실현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는 우리 공교육의 현실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러나 이 의문은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이 경쟁과 비교에 내몰려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으로 이어졌다. 다 바꿀 수 없다면 당장 나부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의 도서관 여행 '우리만의 덴마크'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수업이었다. 내 수업 시간만큼은 덴마크나 꿈틀리 인생학교와 비슷하게 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과감하게 교과서를 압축했다. 교과서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 요약본을 만들고, 대신 일주일에 1시간씩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 시간에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다.

덴마크 아이들처럼 1년을 통째로 비워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1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직접 자율적으로 고르는 경험을 하고, 자신의 수준과 흥미를 고려하여 각자의 속도에 맞춰 책을 읽도록 유도했다. 대부분 만화책만 고를까 봐 걱정했지만, 도서의 종류는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하도록 했다.

학교 도서관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이 진열되어 있고, 아이들은 내 우려와는 다르게 여행 서적을 고르기도 하고, 장편 소설을 읽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학 도서를 집어서 펼쳐보기도 했다. 자기가 고른 책에 푹 빠져서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는지도 모르고 독서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방과 후에 읽던 책을 대출해서 밤새 읽느라 퀭한 얼굴로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 누구 하나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재밌게 읽은 책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며 나 또한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충분히 그 1시간을 즐겁고 유익하게 보내고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난 후 아이들의 읽기, 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가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믿고 시간을 준 것뿐이었다. 최소한 이 '1시간의 덴마크'에서는 일등도 꼴등도 없고, 그 누구도 조급하지 않았다. 서로 기대서 책을 읽거나 재밌는 도서를 추천해주곤 했다.

여전히 내 아이들은 중간, 기말고사를 치러야 하고, 내 수업 시간에는 집중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아이들이 최소한 일주일에 1시간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달라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90%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이들과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나는 각자의 취향과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삶의 속도를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덴마크나 꿈틀리 인생학교처럼 우리나라가 변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아이들은 여전히 입시 전쟁과 삶의 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라 믿는다. 도서관에서 이미 우리 학생들과 나만의 덴마크를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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