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5 10:07최종 업데이트 18.10.15 16:14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교육'에 대한 나의 철학이 존재했기에 부푼 마음을 안고 도전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막 읽고 난 후였기 때문에 교육에 있어서 아이들의 자율성, 선택, 즐거움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던 때였다.

"다양성, 차이, 차별에 관한 교훈을 안겨주는 영화, <주토피아>를 감상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따라 부를 영어 노래도 나오고, 다양성과 차이에 관한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중요한 문장은 직접 써보고 말하는 시간을 가질 텐데, 아이들이 영화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라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참여할 겁니다. 영화의 교훈을 바탕으로, 글 나눔 수업도 진행할 겁니다. 깨달은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직접 표현해보고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영어 문장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단어를 써도 됩니다. 한국어를 써도 됩니다. 모르면 찾아보면 되니까요. 스스로 그 내용을 채워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수업이 될 겁니다."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지역아동센터 원장은 "음,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알겠는데, 그런 건 필요 없고요. 그냥 영어만 가르쳐주세요"라고 했다. 노동자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 네"라고 했지만, 끊임없이 '가르침, 교육, 철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되짚어보았다.

아르바이트 면접에 참여하기 전부터 나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간 것에 스스로 미심쩍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 방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친구들과 함께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나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최소한의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그냥 영어만 가르쳐달라'는 원장의 말은 아이들의 자율성, 선택, 즐거움을 지우는 말이었고, 내게 심히 충격이었다.

'교육은 가르침 자체보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즐거울 수 있을까? 교육 속에서 자아를 찾고 꿈을 찾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 아닐까? 아니,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지역아동센터 정문에는 '자유, 정의, 사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이들의 자유를, 정의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그토록 원하면서 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지 않는지 의문이 생겼다.

나는 총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유미라는 친구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를 꿈꾸고, 현민이라는 친구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한다. 가령이라는 친구는 만화 캐릭터에 관심이 많아 만화가가 되고 싶고, 유희라는 친구는 떡볶이 먹는 것을 좋아해 떡볶이집 사장님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나는 아이들의 꿈이 존중받는 사회가 오길 희망한다. 그렇지만 갇혀 있는 교육 속에서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도 자신의 흥미와 꿈을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갇힌 교육 속에서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꿈만 존중받고, 밥벌이가 되는 활동만 의미 있다고 생각되며, 그 안에서 1%의 승자와 99%의 패배자가 나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 나의 꿈은 세상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탐험가였다.

TV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애청자였던 나는 세상의 미스터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판타지,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소설가 댄 브라운의 책을 가장 좋아했다. 그렇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나는 꿈에 대한 자신감을 점차 잃어갔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아무것도 쓸모없다는 말을 듣고, 좋은 대학의 취직 잘 되는 과에 입학하라는 압박을 받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꿈은 없고요, 그냥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어요"라는 SNS 소개 글이 내 삶의 신조였다.

학교 가는 것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고, 입시 기간에는 하루하루가 힘들어 우울증까지 걸렸다. 친한 친구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철학이 부재한 교육 속에 나의 꿈은 점차 사라져갔고, 그 과정에서 이웃, 사랑, 행복, 연대, 자유의 가치는 배부른 소리였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그렇다면 나와 아이들은 잃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 꿈을 잃지 않기 위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더불어 선택하는 즐거움을 끊임없이 알려주려고 한다. 원장은 영어만 가르치라고 했지만,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결정하고 함께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즐거운 영어 '교육'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활동과 생각을 목소리 내어 말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못'하기에 '안' 하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못'해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독려할 것이다. 센터 밖으로 나가 야외체험도 진행하고, 밖에 나가 활동하는 수업도 진행할 것이다. 원장에게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여실히 깨닫게 해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선물해보려고 한다.

나에게는 "이미 늦은 인생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예상치 못하게 건축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서 인간을 위한 건축과 도시를 설계하고자 하는 꿈이 생겼다. 그림 그리기도 잘 못하고, 손재주도 없지만 그냥 해보려고 한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연합 건축 동아리에 지원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약간 부끄럽기도 하다. 스스로, 더불어, 즐거운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어도, 이 철학이 나만의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이 되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역아동센터부터 변한다면, 정문의 '자유, 정의, 사랑'이 그 내부에서 실현되고 꿈틀거린다면 사회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처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볼 때 말했던 영화 <주토피아>에는 'Try everything'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에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거야. 나는 내가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해보고 싶어. 모든 걸 해보고 싶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실패해도 괜찮고, 잘하지 못해도 괜찮은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부족한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그 힘으로 옆 사람을 이끌고 함께 나아가는 행복사회가 오길 희망한다. 노래 'Try everything'을 아이들과 함께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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