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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이오덕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오덕은 "우리 말을 지키던 큰 느티나무"(김경희)라고 불릴 만큼 우리말을 바로 쓰는 일에 평생을 바쳤고,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그가 쓴 책을 글쓰기 교본 삼아 읽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를 읽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이 말하는 '우리 문장'이 과연 2018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좋은 문장인가? 이 책이 오늘날 좋은 글쓰기 교본으로 추천할 만한 책인가?

"외국어 섞어 쓴 글은 반민주의 글"

이오덕이 '우리 문장 쓰기'를 논할 때 그가 말하는 '우리 문장'은 '깨끗한 우리말'로 쓴 문장이다.

그는 '우리 문장'이 더럽혀지면서 글이 일반 대중의 삶과 괴리됐다고 지적한다. 유식한 사람들이 한자, 일본어, 영어 등을 지나치게 많이 쓰다 보니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에게 '깨끗한 우리말'을 쓰지 않는 글은 곧 "반민주의 글"이다.
 
중국글자를 섞어서 쓴 글은 반민주의 글이다. 그리고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안 쓰고 어려운 말, 보통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 유식한 중국글자말이나 일본글에서 나온 말, 쓰지 않아도 되는 서양말을 쓴 글은 모두 반민주의 글일 수밖에 없다. - <우리 문장 쓰기> 198쪽

결국 글을 바로 잡는 일은 곧 "우리 말을 우리 말법대로 써서 말을 살리는 것"(51쪽)이라는 게 이오덕의 주장이다.

사투리는 깨끗한 우리말?
 
 <우리 문장 쓰기> 표지
 <우리 문장 쓰기> 표지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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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오덕 자신도 인정하듯 이미 너무 많은 한자어, 일본어, 영어 등이 들어와 있는데 어떻게 '깨끗한 우리말'을 쓸 수 있을까.

이오덕은 '깨끗한 우리말'을 쓰는 방법의 하나로 "겨레의 삶이 배어 있는 말, 가장 믿을 수 있는 우리 말"(193쪽)인 사투리를 쓰자고 제안한다. 그는 사투리에는 한자어, 일본어, 영어 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투리에서도 외국어의 영향은 찾아볼 수 있다.

국어학자 이익섭은 "제주도방언은 몽고어와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제주도방언에는 붉은 말(赤馬), 검은 말(黑馬), 얼룩말(班點馬)등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는데, 이는 몽고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쟈왕(밥공기), 간대기(풍로), 후로(목욕탕), 이까리(돛) 등은 일본말의 영향을 받은 단어로 보인다(<국어학개설> 362~363쪽 참고).

제주도방언에 남은 외국어의 흔적은 이오덕이 말하는 '깨끗한 우리말'이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가 적고, 따라서 '깨끗한 우리말'을 쓰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한자어는 말을 풍부하게 만든다

우리말이 다른 나라 말의 영향을 받고, 다른 나라 단어를 빌려 쓰는 일을 모두 '변질'이나 '오염'으로 볼 수 있는지도 문제다. 적어도 이오덕이 <우리 문장 쓰기>에서 든 예 중 일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이오덕은 '웃다'가 '미소하다', '만나다'가 '상봉하다, 해후하다, 조우하다'라는 뜻으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켜 말이 변질했다고 말한다(46쪽). 이오덕은 또 다른 대목에서도 '영원의 미소'는 '영원한 웃음'이라고 말한다(195쪽).

하지만 '웃다'와 '미소하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미소'는 '작을 미', '웃음 소'로 이뤄졌기 때문에 '웃음'으로 바꾸면 '작을 미'가 담고 있는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 웃음에는 미소 외에도 실소, 냉소, 고소, 조소, 파안대소, 폭소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미소'를 '웃음'으로 바꾸면 그 웃음이 미소인지, 실소인지, 냉소인지 알 수 없다.

'미소'를 '작은 웃음'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작은 웃음'이 '미소'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미소'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 또는 그런 웃음'이란 뜻인데 '작은 웃음'이라고 쓰면 '작게 소리 내 웃음. 또는 그런 웃음'이라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다.

'만나다' 역시 '상봉하다'라면 모를까 '해후하다', '조우하다'와는 뜻이 다르다. '해후하다'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나다', '조우하다'는 '우연히 서로 만나다'는 뜻이다. 수많은 만남 중에서도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해후고, 우연히 만나야 조우다.

이오덕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자는 조어력(造語力·말을 만드는 힘)이 뛰어나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세한 의미 차이를 담은 말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자어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만들고,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깨끗한 우리말에 대하여

'깨끗한 우리말'을 너무 중시하다 보면 대중이 쓰지 않는,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언어를 쓰게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이오덕은 한자어 뒤에 '-리'를 붙여 쓰지 말아야 한다며 '극비리에'를 '극비밀로', '절찬리에'를 '절찬속에'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일상에서 '극비밀로', '절찬속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문법 용어를 우리말로 표현한 부분도 심각하다. 이오덕은 동사를 '움직씨', 과거완료를 '지난적 끝남때', 과거진행완료를 '지난적 나아가기 끝남 때'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다음 인용에서 괄호 안 설명이 없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우리 말에 임자말(주어)이란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움직씨(동사)가 어떻게 많이 쓰이고 있는가? 그 움직씨의 끝바꿈에서 마침법의 여러 가지 모양(종결어미)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대이름씨(대명사)는 어떤 것이 쓰이는가? 매김자리로(관형격조사) '-의'는 있는가 없는가? - <우리 문장 쓰기> 71쪽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는 분명 장점이 있는 책이다. 글이 보통 사람들의 삶과 괴리된 현실을 지적하는 내용은 의미 있고, 귀 기울일 만한 대목도 여럿 있다.

하지만, 정작 이오덕이 강조하는 우리말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얼마나 맞닿아있는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고종석은 <감염된 언어>에서 "언어민족주의자의 상당수는 민중주의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는데, 사실 언어에 관한 이들의 실천은 극단적으로 반민중적이다"(101쪽)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를 읽으면서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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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