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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해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한 후배의 인스타그램에서 읽은 글이다. 그는 말했다. "'삶'을 '육아'로 바꾸어 읽으면 이게 딱 육아지 싶다"고. 그런가? '삶'의 자리에 '육아'를 넣어 읽어봤다.
 
'육아는 고해다. 육아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육아는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또한 육아는 문제의 연속이다. 육아가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육아의 의미가 있다.'

아, 정말이지 100% 들어맞는다. 그가 쓴대로 육아(삶)는 '문제의 연속'이다. 특히 아픔의 연속이다. 한때 애만 안 아프면 직장맘 생활도 할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작스러운 변수가 없어지는 거니까. 왜 안 그렇겠나. 애가 열이 나서, 죄송합니다, 빨리 갈게요, 병원에 들렀다 갈게요, 휴가를 써도 될까요, 집에서 일해도 될까요 등 회사에 하지 않아도 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아이 때문에 늘 죄송한 엄마

또 그게 매번 애 아빠가 아닌 나라면, 엄마라는 이유로 내가 그래야 한다면 더 억울하다. '아이는 같이 키우는데 왜 나만 번번이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아니, 많다. 이제 막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하는 후배들도 비슷했다. 특히 애가 아파도 기댈 데가 어린이집뿐이면 더욱 그랬다.
 
"'죄송해요, 애 때문에…' 부서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양해를 구할 때면 자괴감과 무력감이 밀려온다. 당장 내일 출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직원이라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편으로는 애가 아픈 게 내 탓은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맨날 죄송하고 고마워야 할까 억울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죄송하다는 말을 살짝 빼기도 한다."

또다른 후배가 쓴 글이다. 그랬구나. 글을 보며 뒤늦게 그 후배 마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어디 애가 아플 때만 그런가. 어린이집에 일이 생겨도, 학교에 일이 생겨도 아빠보다 엄마들이 그 일에 참여한다. 기본값은 언제나 엄마다. 언제까지 육아하는 엄마는 당연한 거고, 육아를 돕는 데 급급한 아빠는 대단하고 훌륭한 존재가 되는 걸까.
 
 김민주 글 그림 '열이 난 밤에'
 김민주 글 그림 "열이 난 밤에"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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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의 그림책 <열이 난 밤에>는 열이 난 건이를 돌봐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비밀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보면서 "애가 열이 나서…"라고 시작되는 후배들의 문자 메시지와, 둘째가 열이 올라 고생했던 그 날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벚꽃이 피고 지는지도 모르게 보냈던 그해 봄, 둘째 아이가 독감에 걸려 격리된 그 병실에서 보낸 일주일. 책 속에 나오는 귀여운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내 아이도, 그들의 아이들도 덜 힘들었을 텐데 싶어서. 그런데 책을 읽고 난 뒤 여덟 살 아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아픈가 봐."
 
 아, 엄마도 열이 오르고 있구나. 언젠가의 내 모습이고, 누군가의 엄마들 모습 같아 뭉클했다.
 아, 엄마도 열이 오르고 있구나. 언젠가의 내 모습이고, 누군가의 엄마들 모습 같아 뭉클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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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밤새 아이를 간호한 엄마가 건이 옆에서 같이 잠들어 있었다. 표정은 편안해 보이는데, 안색은 그렇지 않다. 얼굴이 발갛다. 아, 엄마도 열이 오르고 있구나. 언젠가의 내 모습이고, 누군가의 엄마들 모습 같아 뭉클했다.

체력이 곧 모성이다

저러고 또 출근을 하겠구나, 저러고 또 종일 아이를 보겠구나, 아이고 고단해서 어쩌나, 같은 말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이 한창 아플 때는 지나서 그런지 요즘의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면 엄마를 토닥토닥이고 싶다.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간혹 주변에서 아이가 아플 때 엄마들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하는 심정, 이해는 하지만 나는 아니다. 엄마가 아파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서다. 아이 걱정, 회사 걱정, 내 몸 걱정으로 마음이 지옥의 끝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체력이 곧 모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안 아프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다. 나는 늙느라, 아이들은 크느라 아프다. 그래서다. 내가 가족이 아플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은. 타고난 성정이 겁이 많아 안절부절 불안해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길', 문제없이 지나가길 바란다.

아프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더라. 찬 걸 많이 먹으면 열이 난다는 거, 이불을 덮고 자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걸 아이들도 경험으로 배운다. 엄마도 배운다.

맨날 내 말은 안 듣는다고, 제 아빠만 좋아한다고, 누굴 닮아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던 나였다. 보기만 해도 예쁜 둘째라는데 나는 안 그랬다. 그래도 열이 떨어지지 않고,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붓고, 열꽃이 사그라지지 않는 아이를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진단이 빨리 나오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마음 졸이고 있을 때,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이 아이를 내가 얼마나 원해서 낳았는지. 의사도 만류한 둘째였다. 그런데도 낳은 아이였다. 둘째가 처음 내게 왔을 때, 그때의 기쁨을 잊고 살았다. 나를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내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위기를 겪으면 더 아프게, 더 크게 온다.

애들만 아프면서 크는 건 아니었다. 육아는 고해가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이가 클수록 더 많이, 더 깊이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기더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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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