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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행진하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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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사분이 화장실에 간 사이 전기 콘센트가 합선됐는지 불이 튀어 올랐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근육 장애인이기 때문에 119도 부를 수 없었다. 활동지원사분이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이라 다행히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30분, 1시간 동안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3살 때부터 근육장애를 앓고 있는 서혜영(35)씨가 며칠 전 겪은 일이다. 서씨는 "모기가 얼굴에 앉아 피를 빨아먹고 있어도 팔은커녕 손을 들어 올릴 수도 없어 그저 물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서씨처럼 거동은커녕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을 쉬는 것도 힘든 근육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에 타거나 침대에 누운 채 1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거리행진에 나섰다. 대부분 인공호흡기 호스를 코에 연결한 채였다.

박동석(29)씨는 "온몸에 있는 근육이 신생아보다 약한 상태다"라며 "폐근육이 약해져 자가호흡이 힘들어 호흡기를 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어 "5분 아니 3분만 호흡기가 없어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라며 "그럼에도 거리로 나온 것은 집에만 있다가는 생존권을 보장 받지 못 할 것 같아서다"라고 강조했다.

근육장애인들 "휴게시간 30분? 숨도 멈추는 시간"
 
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행진하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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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숨 쉬는 것도 버거운 이들이 휠체어와 침대를 끌고 거리로 나선 것은 장애인활동지원사의 휴게시간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 7월 1일부터 장애인활동지원사는 휴게시간 변경가능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은 4시간 일하면 근무 도중 최소 30분은 쉬어야 한다.

근육장애 등 최중증장애인들은 30분의 공백이 공포라고 말했다.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서다. 장애인단체에 따르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희귀질환자 1812명 중 93.7%인 1649명이 근육장애인이다. 24시간 내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이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공포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이날 거리 행진을 할 때도 활동지원사들은 근육장애인들을 밀착 수행했다. 앞을 보고 걷다가도 혹여 호흡기가 빠졌을까 잠깐씩 멈춰서 장애인들을 살폈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잠깐'에도 호흡기가 빠질 수 있고 그 순간 장애인들의 생명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2018년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와 두 아들 모두 근육장애를 앓는 집이었다. 활동지원사가 집으로 돌아간 밤 사이 아들의 인공호흡기 호스가 빠졌다.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24시간 활동보조가 없어 죽거나 죽을 뻔한 상황까지 가는 사례가 매년 생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게시간까지 도입되면 최중증장애인들은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이달부터 '운 좋게' 24시간 활동지원을 받게 된 임성엽(29)씨는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에 호흡기가 빠져서 혹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다음에는 내가 되는 것 아닌가 늘 불안하고 무서웠다"라고 했다.

서혜영씨도 "친한 언니 한 명은 활동지원사 교대 시간이었던 30분 동안 혼자 있다가 휠체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라며 "30분 내내 그 상태로 있다가 활동지원사가 와서 다시 일으켜줬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30분간의 공백은 '고통'이기도 하다. 서씨는 "근육만 없을 뿐 감각은 다 살아 있다"라며 "10분만 같은 자세로 있어도 온몸에 쥐가 나고 통증이 극심하다"라고 했다. 서씨는 "자세를 바꿔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길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활동지원사도 장애인도 "복지부 대안, 현실성 부족" 비판

앞서 보건복지부는 6개월간 계도기간을 갖는 동시에 돌봄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최중증장애인들에 대해서는 가족이 휴게시간 동안 돌보는 것을 허용하고 대체근무 할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돌봐줄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고 교대근무, 휴게시간 근무를 위한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이재익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연대(이하 근장연) 부위원장은 "근육장애인의 경우 호흡기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하다"라면서 "전문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휴게시간 30분을 위해 일을 하러 올 사람들이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했다. 박동석씨도 "활동지원 서비스의 목적은 가족의 짐을 덜어주고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라며 "하지만 지금 정부 대책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근육장애인들의 활동지원을 5년째 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근육장애의 경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라며 "장애인콜택시 흔들거림으로도 호흡기가 쉽게 빠질 정도다"라고 했다. 그런 이들을 앞에 두고 30분, 1시간을 쉴 수 있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애인분들의 집에서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데 휴게시간 가진다고 밖에 나가 있다가 들어와야 하냐"라며 "현실성이 없다"라고 했다. 휴게시간을 의무로 하기보다 기존처럼 자유롭게 쓰거나 비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들 "이낙연 국무총리님,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행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행진하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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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3시간여의 '인공호흡기 행진'을 마친 근장연은 이날 오후 5시쯤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육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 시간 확대와 장애인활동지원사 특례업종 포함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거나 위기대처능력이 없는 근육장애인에게 활동지원사는 생존권 그 자체다"라며 "정부가 개정된 제도와 지침을 아무런 준비 없이 시행해 24시간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희귀난치성 최중증 근육장애인들은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를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하고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제도를 즉각 시행하라"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낙연 국무총리와의 면담도 요청했다.

태그:#근육장애인, #장애인활동지원사, #특례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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