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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지난 2010년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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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전, 이명박 정부가 집권 직후 추진했던 '학교자율화' 정책을 기억하는가?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 정책은, 2008년엔 기존에 시행되던 정책 중 29개를 '즉시 폐기 지침'으로 분류, 2009년엔 학교장이 교육과정에서 수업시수를 20% 증감할 수 있게 하며 교원 인사를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조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결과, 특성화고(전문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이나 사설 모의고사 제한 방침, 0교시 금지 지침 등이 폐지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설 모의고사 실시를 학교 자율에 맡긴다든지,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국·영·수 등 교과 수업을 허용하여 사실상 보충수업을 확대하는 등의 모습이 나타났다.

또한 수업시수 면에서는 다수의 학교가 수학, 국어, 영어, 과학, 사회 등 과목 시수를 늘리고, 체육, 실과, 음악, 미술 등의 과목 시수는 줄여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가중되었다. 학교의 자율성, 즉 학교장의 재량권 확대가 오히려 획일적인 교과 구성을 부추기고, 학생들의 부담을 더하며 교육권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학교의 자율성' 논리는 비단 현장실습이나 수업시수 등의 문제에서만 대두된 것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초,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바꿔서,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학교 규칙을 제·개정할 수 있으며 학교 규칙에는 '두발·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 등을 기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학생인권은 학교장 마음대로?

2010~2012년 사이에 경기, 광주, 서울에서 연이어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결국 학교규칙의 기재사항을 나열했을 뿐인 해당 조항은 마치 학교장이 두발규제 등 마음대로 학생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의미로 둔갑하였다.
 
초·중등교육법 (2012년 3월  21일 개정)
제8조(학교 규칙) ① 학교의 장(학교를 설립하는 경우에는 그 학교를 설립하려는 자를 말한다)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 규칙(이하 "학칙"이라 한다)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
② 학칙의 기재 사항과 제정ㆍ개정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2012년 4월 20일 개정)
제9조(학교규칙의 기재사항 등) ①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의 학교규칙(이하 "학칙"이라 한다)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
(……)
7. 학생 포상, 징계, 징계 외의 지도방법, 두발ㆍ복장 등 용모, 교육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및 학교 내 교육ㆍ연구활동 보호와 질서 유지에 관한 사항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
(……)

물론 그런다고 헌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해야 할 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학생인권조례가 여전히 유효한 법인 이상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인 지역의 학교장 및 학교 기관은 이를 준수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2012년 이렇게 한번 정부가 학생인권조례를 약화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이를 빌미로 학생인권조례 등 인권 보장을 규정한 법령을 무시해도 되는 양 행동하는 학교들이 늘어났다. 당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는 무효'이고 '학교 규칙은 학교장의 권한'이라고 말하며 두발규제와 소지품 압수 등의 인권 침해를 정당화한다는 학생들의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이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속속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는 이명박 정부가 집어넣은 독소 조항이 남아 있다.

이 조항들은 2013년 충청북도에서 주민발의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청구하자 충북교육청이 '상위법 위반'이라는 논리로 주민발의를 각하 처분할 수 있게 하는 등 직접적 악영향을 끼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러한 조항들을 근거 삼아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들은 모두 각하되거나 기각되어 학생인권조례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정부의 소송 제기는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 불러올 수 있었던 변화의 바람을 한층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두발자유화' 발목 잡는 독소조항
 
내년 2학기부터 두발규제가 사실상 사라져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내년 2학기부터 두발규제가 사실상 사라져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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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이른바 '두발자유화 선언'을 발표했다. 학교에서 논의를 거쳐 머리카락 길이 규제를 없애고 염색·파마 등 색깔과 모양도 되도록 규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선언의 내용에는 학교의 자의적인 두발규제의 여지를 긍정하며 학교에서의 논의를 거쳐서 진행하도록 권고하겠다고 표현했단 점에서 한계도 있었다. 이는 학교 규칙을 제·개정하는 것을 학교장의 권한이라고 해놓고 학교 규칙에 두발·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을 기재한다고 한 법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다. 6년 전 이명박 정부가 만든 조항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두발자유화 선언'이 나오자, 교총과 같은 단체들 역시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교총의 기존 행보를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학교의 자율성'은 오직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종 인권 침해를 하는 데만 유효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교총은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또 학교 단위에서 학교장을 직접 뽑을 수 있어 학교 자치를 강화하게 될 교장공모제나 교장선출보직제에도 반대하고 있다. 교총이 말하는 '학교의 자율성'이란, 학교장의 독재적인 권한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지 않은가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하지만 어쨌건 교총 등은 이명박 정부에서 만든 조항을 이용하여, '학교의 자율성' 논리를 계속해서 방패 삼고 있는 것이다.

두발자유화 추진이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학교의 자율성'을 명분으로 반대하는, 과거의 이명박 정부나 교총 등의 모습에서는, 학생인권 문제는 그만큼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공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믿음이 내비친다. 그런 건 학교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는 문제 아니냐는 것이리라.

그러나 시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사회가 가장 우선해야 할 공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청소년의 인권 문제는 국가가 보장할 사안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청소년, 초·중·고 학생에 대한 편견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도 2005년 두발자유가 인권에 포함됨을 인정하였고,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각종 권리들은 대개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과 국가인권위 결정례 등을 통해 기본권 또는 인권의 문제임이 확인된 내용들이다.

사기업조차도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공정거래법 등의 법률을 통해, 노동자나 소비자의 권리, 우리 사회의 공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감독을 받는다. 만약 기업에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거나 의무적인 안전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이를 자율성이라고 주장한다면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하물며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어떻겠는가. 학교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구현해야 하고, 그 구성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해야 할 당위성이 우리 사회의 그 어떤 기관보다도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법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켜야 할 자유는, 기관과 권력자의 자유보다도 국민의, 시민의 자유가 우선이다. 서울시 교육감이 '두발자유화 선언'을 내놓은 것은 학생들의 머리카락 같은 사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들에 대해 학생들의 자유에 간섭하지 말라고 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 기관의 의무를 수행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을 제시함으로써 정말로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은 이른바 '촛불 혁명'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세워지고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재차 당선되며 학교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더 확대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했던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역시 취임사에서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의 학교와 교육이 답할 때"라고 언급하여 기대감을 높였다. 경남교육청도 올해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들도 학생인권을 보장할 법적 울타리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법률과 조례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학교의 자율성'을 내세우며 벌어진 논란을 종식시키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때이다. 비민주적인 학교, 체벌과 두발복장규제 등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이었던 학교 문화 등의 '적폐'를 치우고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회에 걸맞은 교육의 토양을 일구어야 한다.

지난 10월 5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와 체벌을 일부 허용하는 듯 해석될 수 있는 제31조 등의 개정을 요구하는 안건을 다루었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명박식 '학교자율화'를 벗어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상의 독소 조항을 개정하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법령 정비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태그:#학생인권, #두발자유화, #초중등교육법, #이명박,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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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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