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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우연히도 쌍둥이 남매가 다니는 학교의 개교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그래서 매년 개교기념일에 학교를 쉬는 아이들과 함께 서울 근교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마침 올해는 15주년 결혼기념일이자 개교기념일이 금요일이라 연초부터 해외여행을 계획해두었다.

그런데 여행을 두 달쯤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나의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19년 차 사무직 워킹맘인 나는 목과 허리에 통증을 달고 산다. 전화를 많이 사용하고 오래 앉아있는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평소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는 편이지만 봄 또는 가을같이 급격히 계절이 바뀌는 즈음에 제일 먼저 아픈 기관이기도 하다. 한 달 넘게 치료를 받았지만 여느 해와 달리 허리 통증은 쉽게 낫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해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여행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어깨 전화
▲ 어깨 전화 어깨 전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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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출발일이 30일도 채 남지 않아서 약관에 따라 취소 수수료를 내야 하는 상태였다. 출발일이 30일 이상 남은 경우에는 취소수수료가 없지만 30일 이하 상품 금액의 10%, 20일 이하 상품 금액의 20% 등으로 출발일로부터 남은 날짜에 따라 취소 수수료가 발생한다.

예약을 취소할 시 취소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은 노쇼 고객을 예방하기 위해 생긴 규정이다. 노쇼(No-Show)는 외식업, 여행, 항공, 호텔, 공연 등에서 고객이 예약을 하고 예약 취소를 하지 않은 채 예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 중계업체인 여행사의 경우 항공, 호텔 등에서 발생한 패널티를 고객에게 부가하려는 제도로 사전에 취소를 해도 발행한다. 물론 취소하는 기간별로 수수료가 상이하다. 예약 수수료가 없거나 취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일부 외식업의 경우 예약 취소 없이 나타나지 않은 노쇼 고객으로 인해 재료비를 날리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여행사에 취소를 요청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 진단서를 첨부하면 취소 수수료 중 일부라도 덜 낼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여행사 담당자는 출발 날짜가 많이 남은 상황이라 병이 나을 수도 있다고 보여 '웨이버'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첨부를 해보라고 가이드를 해줬다.

'웨이버(waiver)'의 사전적 의미는 권리의 포기라는 뜻인데 스포츠에서 구단이 계약 기간 중에 그 선수와 계약을 해지하고자 할 때, 또는 선수가 계약 해지를 희망할 때, 그 선수를 다른 구단에 싼 이적료로 양도하겠다고 공시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여행사에서는 통상 취소 수수료 면제로 불린다. 

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하면 심사팀에서 확인한 후에 수수료 부과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나는 진료를 받던 병원에서 일반적인 용도의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00병으로 치료 중'이라는 일반적인 문구의 진단서로는 웨이버가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나는 여행 취소 용도로 진단서 '무리한 신체활동은 금하며, 지속적인 치료를 요함'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진단서를 다시 발급받고 나서야 겨우 여행 취소 수수료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진단서뿐만 아니라 중요한 경조, 천재지변 등의 상황에서도 웨이버가 가능하다. 심사 내용에 따라 계약금의 일부 혹은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진단서의 경우 간혹 아프지도 않은데 진단서를 들이밀며 여행 취소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악용하는 고객도 있어서 여행사에서는 꼼꼼히 심사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공항
▲ 공항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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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해둔 여행을 취소하는 인생 초유의 사태를 만난 것은 너무 안타까웠다. 아이들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여행 날짜까지 설령 회복해서 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공항에서의 불편한 대기, 긴 비행기 시간과 좁은 의자 탑승으로 여행 후에 다시 허리가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처음 아플 때보다 치료로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여행을 10여 일 남긴 날에도 일상생활에 약간의 불편함을 줄 정도로 허리 통증은 여전했다. 여행 취소의 경험 덕분에 '웨이버'라는 제도를 알게 됐고, 아프면 여행 계획도 빨리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낫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본 것이지만, 취소 수수료가 부과되는 기간 전에 빨리 포기를 했더라면 나는 정말 아픈 사람이라고, 노쇼 같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힘들게 애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달 안에는 나을 것이라 자신했던 나도 이제는 40대, 몸 건강을 자신하지 말아야 할 나이가 됐다.

태그:#70점 엄마, #까칠한워킹맘, #건강, #여행, #웨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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