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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설 <좀도둑 가족>. 이들은 모두 여섯 명으로 구성된 가족입니다. 사실혼 관계라고 볼 수 있는 오사무와 노부요를 제외하면, 법적으로 가족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좀도둑 가족> 표지
 <좀도둑 가족> 표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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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자 연금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하쓰에 할머니, 언젠가부터 같이 살게 된 가출(소)녀 아키, 파친코 주차장에 주차된 차 뒷좌석에서 구출된 쇼타, 그리고 부모의 상습폭력으로 구출된 린,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역을 맡은 오사무와 노부요까지 모두 여섯입니다.

아버지 역의 오사무는 공사장에서 막일을 합니다. 일이 없을 때도 많고, 오사무가 워낙 게으른 성격이라 일을 빼먹는 일도 많죠. 

어머니 역의 노부요는 세탁 공장에서 일합니다. 힘든 일이고 벌이도 시원치 않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일감이 줄어들어 어려워진 회사 사장은 워크 셰어라는 명목으로 근로 시간을 줄입니다. 시급제라서, 벌이도 같이 줄어들죠.

아키는 유흥업소에서 일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벌이를 가족과 나누지는 않습니다. 집주인이자 할머니인 하쓰에가 그런 조건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데요, 어떤 사정인지는 나중에 나옵니다. 

어른들의 벌이가 이렇게 신통치 않으니, 하쓰에 할머니가 받는 연금이 이 가족의 주 수입원입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좀도둑질로 해결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고, 어머니는 세탁을 맡긴 손님들의 옷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을 챙깁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와 아들은 슈퍼로 좀도둑질을 하러 나섭니다. 수요일 세일로 사람이 붐비는 틈을 이용하려는 거죠. 그런데 아파트 복도에 웬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도둑질을 끝내고 고로케를 사 들고 돌아오는 오사무와 쇼타. 복도에는 그 여자아이가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얼어 죽으면 어떻게 하지? 오사무는 여자아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기 이름이 유리라고 말하는 여자아이. 한동안 굶었는지 고로케 세 개를 먹어치웁니다. 친부모에게 아이를 데려다주려던 노부요는, 아이의 부모가 폭력 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를 다시 데리고 돌아옵니다. 이제 여섯 명 가족이 된 거죠.

두 달이 지나고, 아이의 실종 뉴스가 TV에 나옵니다. 아이의 이름은 주리. 처음에 이름을 말했을 때, 가족들이 잘못 들은 모양입니다.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자, 아이는 고개를 흔듭니다. 저런 부모에게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노부요는 아이의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이름도 새로 지어줍니다. 아이의 새로운 이름은 린.

그런데 새 옷을 사주겠다는 말에 린이 움찔거립니다. 자신도 부모에게 맞고 자랐던 노부요는 직감합니다. 아마 새 옷을 사줄 때마다 맞은 모양이라고요. 절대 때리지 않아, 이렇게 약속하고 노부요는 린에게 노란 수영복을 사줍니다. 새 수영복이 너무 좋아 목욕할 때도 수영복을 입고 하는 린은 노부요와 목욕을 하다가 노부요의 왼팔을 봅니다.
 
"여기 왜 이래?"
린이 노부요의 왼팔에 있는 화상 흉터를 가리켰다.
"아, 이거? 다리미로 지익...."
노부요는 자신의 흉터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세탁공장에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얻은 오래된 상처였다.
"나도."
린은 자신의 왼팔을 노부요에게 보여주었다.
린의 팔에도 비슷한 화상 흉터가 있었다. 가늘고 긴 버들잎 같은 모양이 노부요의 흉터와 같았다. 아마 엄마가 체벌을 이유로 지진 것이리라.
어쩌다 그랬냐고 물었을 때, 넘어졌다고 거짓말했던 린이 처음으로 화상을 인정했다.
"진짜네. 똑같다." (133쪽)

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자꾸만 비춰보는 노부요. 노부요와 린은 진정한 모녀 관계로 새로 태어난 걸까요?

여섯 가족의 관계는 하나 같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관계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노부요와 린의 모녀 관계, 오사무와 쇼타의 부자 관계, 그리고 하쓰에와 아키의 할머니와 손녀 관계입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만, 소설의 플롯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노부요와 린의 모녀 관계이고,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오사무와 쇼타의 부자 관계인 것 같습니다. 

소설의 플롯 전개는 린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제1장 고로케, 제2장 밀개떡, 제3장 수영복, 모두 린과 관련된 소재입니다. 그렇게 린이 가족의 일원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면, 소설은 오사무와 쇼타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집니다.

쇼타에게 오사무는 어떤 존재일까요? 오사무는 게으르고 한심한 남자의 전형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다리를 다친 그는 산재 처리가 되면 놀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흐뭇해합니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주인이 없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아들에게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그런 모습을 늘 보는 쇼타. 쇼타에게 아빠라고 불리고 싶어 하는 오사무지만, 쇼타는 그렇게 불러 주지 않습니다. 쇼타는 오사무가 싫은 걸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추운 날씨에 바깥에 앉아 있던 린을 번쩍 들어 집으로 데려온 것도 오사무니까요. 쇼타에게는 이 집에 오기 전의 기억이 없습니다. 한여름에 차 안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오사무가 구해왔다는 이야기만 숱하게 들었을 뿐입니다. 목숨을 구해준 오사무에게 감사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도둑질에 성공할 때마다 주먹을 맞부딪히는 두 남자에게 정이 없을 리가 없죠.

그런데 어느 날 오사무는 그동안 말만 하던 '크러셔'라는 망치를 가져옵니다. 쇼타와 함께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를 털러 가는 오사무. 유리창은 멋지게 깨졌지만, 요란하게 알람이 울립니다. 오사무는 쇼타를 내팽개쳐 두고 꽁무니를 뺍니다. 자신을 팽개치고 도망가기 바쁜 오사무를 쫓아가며 쇼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사무가 린을 구했을 때도, 나도 이렇게 구했구나 생각하며 칠칠치 못한 '아버지'이지만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자신을 팽개치고 도망치는 오사무를 보니, 첫 만남의 기억이 조금씩 변질되는 것을 느꼈다. 오사무는 쇼타를 구하려고 유리를 깬 것이 아니라 뭔가 훔치려던 게 아닐까. 쇼타는 그저 우연히 거기 있었던 게 아닐까. (210~211쪽)

저는 이 장면이 소설 전체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쇼타가 오사무의 동기를 의심하는 장면이죠.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이 가족은 혈연관계로 이어진 가족이 아닙니다. 피를 대신하는 것이 신뢰죠. 신뢰가 무너진다면 이 가족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하쓰에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바다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린의 말에, 이 가족은 어느 날 무작정 바다로 갑니다. 오사무가 어디에선가 훔쳐 온 파라솔 그늘에서 하쓰에 할머니가 쉬는 동안, 다른 다섯 명은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쓰에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고, 검버섯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태양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갑자기 날이 흐려졌다. 하쓰에는 등에 한기를 느꼈다.
노부요까지 합류해 다섯 명이 손을 잡고 파도를 기다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쓰에는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웠어."
하지만 그 목소리는 파도 소리와 다섯 사람의 웃음소리에 묻혀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다. (187쪽)

하쓰에 역을 맡은 키키 키린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 중 한 명입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거의 주연급이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많은 작품에 출연합니다. 잠깐만 나와도 참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분의 연기가 참 좋았는데, 얼마 전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팬으로서,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슬픕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여섯 명을 둘씩 짝지어 보면 모두 열다섯 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오사무와 노부요, 오사무와 하쓰에, 쇼타와 린의 관계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오사무에게 크게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린에게는 오빠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쇼타의 마음가짐은 소설의 후반부 모든 사건의 원동력이 됩니다.

배다른 자매들의 우정을 그린 <바닷마을 다이어리>, 낳은 부모와 기른 부모 중에 누가 진정한 부모일까를 묻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모두 아버지가 다르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려는 아이들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모든 영화는 '가족'이라는 단 하나의 주제만을 탐구합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덧붙이는 글 | 저의 팟캐스트 '1000권 가즈아'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https://itunes.apple.com/us/podcast/1000%EA%B6%8C-%EA%B0%80%EC%A6%88


좀도둑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비채(2018)


태그:#<좀도둑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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