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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 은평구 불광동 주택 골목을 5분가량 걸어 들어가면 2만5천m²(7,562평) 규모의 '향림도시농업체험원'(아래 향림원)이 나옵니다. 향림원은 회색 도시에 생명을 불어 넣는 보화 같은 허파입니다. 향림원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곡식과 작물이 노랗고 푸르게 익어가고 수생식물과 곤충들이 생명의 노래를 부릅니다. 코스모스와 허수아비가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향림원의 가을!

도시는 땅만 생기면 빌딩과 아파트를 짓습니다. 짓고 또 지었는데도 아파트가 부족하다고 난리입니다. 아파트가 부족해서일까. 불로소득을 챙기려는 투기세력의 난장판 때문일까. 집없는 서민들의 피눈물이 적셔진 이 도시를 그들의 욕망대로 시멘트로 뒤덮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욕심 많은 부자가 돈 때문에 죽은 것처럼 생명을 잃어버린 회색 도시는 미치거나 시멘트 묘지가 되거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 소풍 나온 아이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 소풍 나온 아이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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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원에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 소풍 온 아이들은 논둑길을 걸으며 장난칩니다. 향림원 선생님들은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보여주며 "너희들 밥상에 오르는 쌀"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아이들은 벼를 쌀 나무라고 하진 않겠지요. 잘 익은 벼는 고개를 숙였고 참새들은 벼를 쪼려고 날아듭니다. 참새도 먹고, 떠돌이도 먹고, 고아와 과부에게 나눠주고도 남을 만큼 풍성한 가을입니다. 풍성한 이 가을이 함께사는 길을 알려줍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신명기 24장19절)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한부모와 학교 밖 청소년과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과
장애인과 병든 노인과 고독한
독거인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부끄러움을 알게 하소서
이 가을 이 가을엔
내가 가진 것으로 인해
더 가난해진 이웃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이요 부끄러움인데
더 많이 가진 것을 자랑할 뿐 아니라
더 차지하기 위해서 이웃을 울렸다면
이 가을에 우리는 틀림없는 죄인입니다
부끄럽고 부끄러워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어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빌고 또 빌어도 차마
죄 사함 받을 수 없어 가을밤 귀뚜라미는 슬피 웁니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은 아이들의 천국입니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은 아이들의 천국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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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원은 아이들 놀이터입니다. 잠자리채를 든 아이들은 걱정도 없이 향림원 논둑과 꽃밭과 웅덩이 사이를 오가며 곤충채집을 합니다. 숙제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놉니다. 아이들만 노는 게 아니라 잠자리와 나비도 함께 놉니다. '잡아봐라 잡아봐! 용용 약 오르지'라며 개구쟁이 채집가들을 놀리던 잠자리가 방심하다 잠자리채도 없는 소녀에게 붙잡혔습니다.

소녀에게 붙잡힌 것은 잠자리만이 아닙니다. 가을하늘도 붙잡혔습니다. 소녀에게 붙잡힌 가을하늘은 억울하지도 않은지 눈 시리도록 푸릅니다. 붙잡았다가 놓아주는 아이들과 붙잡혔다가 풀려나는 곤충의 놀이엔 적대감이 없습니다. 전쟁도 포로도 아니기에 협상도, 조건도 없이 그냥 풀어줍니다. 향림원에서는 그냥 조금 놀 뿐입니다. 향림원의 가을하늘이 푸르디푸른 것은 이렇듯 신나기 때문입니다. 
 
향림도시농업체험원 닭장의 닭과 아이.
 향림도시농업체험원 닭장의 닭과 아이.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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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 운동장에서 엉덩이 맞추기 놀이를 하는 개구쟁이들.
 향림도시농업체험원 운동장에서 엉덩이 맞추기 놀이를 하는 개구쟁이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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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은 뛰노라,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지어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소박한 경건의 마음으로 이어가기를

(월리엄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 전문)


향림원 닭장에는 닭이 있습니다. 향림원 아이들이 닭과 무어라 무어라고 속삭입니다. 어른인 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엔 저도 채송화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기에 향림원 아이들은 닭뿐 아니라 풀과 꽃과도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통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뛰며 통하기에 아이들은 풀밭과 논둑과 작물 밭을 뛰어다니며 '배추벌레야, 무 벌레야 고만 먹어, 고만 먹어. 배추와 무가 아프다고 하잖아!'라고 타이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드의 선언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향림원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놉니다. 그냥 공차면 심심하니까 가위 보를 해서 이긴 아이가 진 아이들 엉덩이 맞추기 놀이를 합니다. 네 명의 엉덩이가 하늘로 향하면서 한 아이가 공을 차려고 시늉하자 네 명의 아이가 엉덩이를 감춥니다.

공에 맞은 엉덩이는 하나도 없고 헤헤~ 웃음보 터트린 엉덩이들이 실룩실룩 거립니다. 엉덩이 맞추기 하다 심심해진 아이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탑니다. 해 저물도록 노는 아이들의 땀을 가을 밤바람이 씻어주었습니다.
 
도시농업 체험 온 초등학생들이 만든 씨앗폭탄
 도시농업 체험 온 초등학생들이 만든 씨앗폭탄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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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씨앗폭탄을 투척합니다.
 초등학생들이 씨앗폭탄을 투척합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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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체험을 온 초등학생들이 '씨앗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이 폭탄은 산산이 부서져 터져도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꽃이 피고 생명이 자랄 뿐입니다. '씨앗'에다 '폭탄'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잘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들이 씨앗폭탄을 투척한 뒤에 환하게 웃음 지었습니다. 그건 백번 잘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꽃이 피고 생명이 자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씨앗들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그 또한 천번 만번 잘한 것입니다.
 
향림원 가든터널에서 수채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향림원 가든터널에서 수채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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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천연염색 천이 가을하늘보다 더 푸릅니다.
 쪽빛 천연염색 천이 가을하늘보다 더 푸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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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와 조롱박이 주렁주렁 매달린 향림원 가든 터널에서 수채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 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라고 노래한 '비오는 날 수채화'처럼 가든 터널 수채화는 행복한 물감으로 그렸는지 아무도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행복한 얼굴로 전시회를 관람했습니다. 아, 가을은 행복한 수채화로구나. 아, 욕심 부릴 필요 없는 수채화로구나.

향림원 멘토 선생님들이 물들여 빨랫줄에 넌 천연염색 쪽빛 천은 어떻고요. 가을하늘과 천연염색 천이 누가 더 푸른지 경쟁하며 햇빛과 바람에 한들거리는 것을 바라보다 천연의 빛깔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저 은은한 쪽빛 바다를 저어 저어가면 가을 종착역에 닿을 것입니다. 도시농부들은 웃자란 곡식과 작물을 추수하고, 나누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얼룩은 지워지고 그 자리에 쪽빛이 물들면서 조금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가을 채소와 곡물로 만든 특별한 밥상
 가을 채소와 곡물로 만든 특별한 밥상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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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원은 지난 6일 텃밭분양자와 서울시민을 초대해 가을 채소로 만든 특별한 공동체 밥상을 차렸습니다. 엄마와 아빠들이 아이들과 밥상을 만드는 행복한 자리를 취재한 덕분에 건강 밥상을 얻어먹는 호강을 누렸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가을 채소로 만드는 건강 밥상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우엉 채소 쌈 재료] 우엉1대, 당근 반개, 풋고추 2개, 깻잎, 소금
[양념] 고추장 1큰술, 매실청 1큰술, 식초 1/2큰술, 깨
[밀전병] 우리밀가루 반컵, 물 1/2컵, 단호박 찐 것 1큰술
[조리순서]
1. 우엉, 당근, 풋고추는 가늘게 채 썬다.
2. 우엉은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물기를 제거한다.
3. 초고추장 재료를 잘 섞어 소스를 만든 다음 1과 2의 채소를 넣고 버무린다.
4. 밀가루, 물, 단호박을 넣고 덩어리 없이 잘 풀어 반죽을 만든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키친타올로 닦아낸 다음 지름 5~6cm 크기로 밀전병을 부친다.
6. 깻잎 위에 밀전병을 얹고 그 위에 3을 얹어서 먹는다.

[곡물 샐러드 재료] 우리 밀 통밀, 현미, 귀리, 기장, 수수 등 햇곡물, 사과, 양파, 견과류, 크렌베리
[드레싱] 꿀 3큰술, 레몬즙 1큰술, 사과식초 1큰술, 올리브오일 3큰술, 소금, 후추
[조리순서]
1. 통곡물은 깨끗이 씻어 물에 1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3배의 물을 넣고 삶는다.
2. 삶은 곡물은 물기를 완전히 빼둔다.
3. 사과, 양파는 잘게 썰고 잎채소는 잘게 뜯어둔다.
4. 드레싱 재료를 잘 섞어 2와 3과 견과류와 크렌베리를 버무려 먹는다.

 
텃밭 농사 때문에 행복했다는 60대 도시농부 부부.
 텃밭 농사 때문에 행복했다는 60대 도시농부 부부.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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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행복까지 사고파는 도시에서 행복을 구매하려면 얼마의 돈을 지불해야 할까. 고액을 지불하고 행복을 샀다는 이들이 거들먹거리곤 하는데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향림원 텃밭 한 두럭을 분양 받은 60대 도시농부 부부는 행복을 사지 않고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부는 텃밭을 오가면서 건강해졌고 정성들여 작물을 키우면서 부부의 사랑까지 돈독해졌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실하게 자란 무와 배추가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행복은 돈지랄 순이 아니라 수고어린 땀과 진실함 순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향림원은 서울시 부지로 은평구가 관리하고 'S&Y도농나눔공동체'(대표 문대상)가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평구와 향림원은 매년 봄에 210두락 정도를 도시농부들에게 분양합니다. 1두락은 10㎡입니다. 내년에도 분양받기를 희망한다는 이 부부는 경쟁율이 높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웃었습니다. 부디, 내년에도 행복하길 빕니다.
 
오는 18일 '향림 논두렁 축제'가 열립니다.
 오는 18일 "향림 논두렁 축제"가 열립니다.
ⓒ 향림도시농업체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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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일(목) 향림원에서 논두렁 축제가 열립니다. 콤바인 벼 베기가 아닌 전통 농기구를 이용해 벼 베기를 하면서 수확의 기쁨을 나눌 계획입니다. 벼도 좋아할 겁니다. 기계에 우르르 스러지는 것보다는 도시농부의 손맛을 보면서 베어지는 옛 맛을 볼 테니까요.

게다가 추수 장단에 맞춘 국악 한마당과 시낭송까지 곁들여진다니 이것 참 장관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잎 밥에 배추 전, 오곡강정에다 향림원에서 추출한 양봉 꿀과 떡을 제공한다니 짬을 내서 꼭 오세요. 저는 꼭 참석할 겁니다. 도시농부들의 흥타령을 들으면서 수확의 기쁨과 밥상을 맛 볼 겁니다.

태그:#향림도시농업체험원, #도시농부, #서울시, #은평구, #S&Y도농나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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