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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골 마당예술제에서 공연하고 있는 홍성문화연대.
 홍주골 마당예술제에서 공연하고 있는 홍성문화연대.
ⓒ 길익균 로컬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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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지난 주말 예정되어 있던 지역 축제들과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태를 겪었다. 실외에 예정되어 있던 일부 행사들은 실내로 자리를 옮겨 조촐하게 치러지기도 했다.

지난 충남 6일, 홍성문화원에서는 홍성문화연대 주최로 제2회 홍주골마당예술제가 열렸다. 태풍의 영향으로 장소를 야외인 홍성복개주차장에서 홍성문화원으로 급하게 옮겨 진행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라고해서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갈증은 섭외할 때부터 고액의 출연료 부담이 발생하는 중앙의 예술인들이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문화예술단체들이 고유의 특색을 유지하며 활동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문화 예술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늘 열려 있어야 한다.

홍성문화연대가 지닌 유전자는 우리의 전통음악인 풍물이다. 비록 정통 풍물 놀이패는 아니지만 홍성문화연대의 공연에는 여전히 우리의 '흥'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다. 한국인을 지배하는 정서는 도탄에 빠진 '한'의 정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뜻하는 '흥'이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집단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농악을 즐기며 시름을 달랬던 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이다. 대통령상까지 받은 이력이 있는 충남 홍성군 결성농요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3월, 3.1절 관련 지역 행사가 끝난 뒤 홍성문화연대가 풍물을 치며 홍성시장 일대를 돌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풍물패를 따라 다니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70년대 태생인 기자의 유년시절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이처럼 흥은 마치 DNA에 각인된 것처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계기가 찾아오면 스스로 드러나곤 한다.

풍물의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과 소리는 듣는 이의 심장을 두드린다. 풍물 소리를 듣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그 끌림과 당김의 소리는 자연스럽게 주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공동체를 복원하기도 한다.

홍주골마당예술제에서는 홍성문화연대의 공연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충남과 대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물뿐 아니라 퓨전국악과 통기타 음악을 선보였다. 다양한 음악이 한자리에 펼쳐져도 불협화음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비결은 각자 다른 음악의 색깔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데 있다. 다양성은 지역 문화예술이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다.

이와 관련해 퓨전국악그룹 풍류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 김미숙 씨는"홍성문화연대와 함께 공연하는 것은 늘 즐겁다"라며 "그 이유는 끈끈한 공동체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라고 말했다.

홍성문화연대는 4년째 이어오고 홍성세월호촛불문화제의 주역들이 만든 문화예술단체이다. 세월호 촛불의 동력을 문화예술로 삼고 꾸준히 촛불문화제를 이어온 것. 최근에는 문화연대에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여럿 영입되면서 외연도 넓어지고 다양성도 커졌다.

문화예술은 어쩌면 대도시를 찾아가거나 누군가를 초대해서 꽃피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스로 문화예술을 만들고,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그 어디든 공연장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잘 준비된 무대나 공연장이 아닌 마당에서 놀았다.

어쨌든 시골에 살다보면 가끔은 '타는 목마름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곤 한다. 홍주골마당예술제는 귀촌 3년차 기자의 시골생활에 일정부분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살아 숨쉬는 공동체와 그 안에 흐르는 정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태그:#홍주골 마당예술제 , #홍성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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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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