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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입국한 3만 명의 탈북자 중 대다수가 청년이다. 하지만 학교, 직장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탈북'이라는 꼬리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큰 무게이다. 북한이라는 뿌리 없이 이들의 삶을 말할 수 없지만, 이제는 탈북자보다는 한국인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7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탈북청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기사에 사용된 이름, 나이, 지명은 북에 남겨진 가족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말

탈북 청소년 그룹홈에 막 도착한 은휘에게.

은휘야, 안녕.  나는 강빈이(25·가명) 형이야. 형도 네가 지난주부터 살기 시작한 탈북 청소년 그룹홈에서 5년 전까지 살았어. 그곳에서 13살 때부터 살기 시작해서 근 10년을 지냈지.
 
* 그룹홈
'그룹홈'은 소규모 아동복지시설로 가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곳을 말한다. 글에 등장하는 탈북 청소년 그룹홈은 탈북 청소년들에게 한국 학교 생활과 청소년기에 필요한 도움을 주어 학교와 사회 적응을 돕는 공동생활 시설을 말한다.

이제 막 한국에 와서 적응을 시작했다며?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지? 친구 관계, 공부, 낯선 한국 생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어렵고 힘든 것도 많을 거야. 나도 그랬어. 네 소식을 듣고 내가 그룹홈 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르더라고.

엄마랑 단 둘이 한국에 왔는데, 엄마는 하루 종일 돈 벌러 나가서 얼굴 볼 틈이 없었고, 학교에서는 북한에서 온 아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우울했던 때에 그룹홈 삼촌을 만나서 조금씩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었던 것 같아. 형 이야기를 들으며 낯선 한국 생활이 조금은 더 편해졌으면 좋겠다.

내 고향 이야기부터 들려줄게. 은휘는 신포에서 왔다며? 내 고향은 그 근처 함흥이야. 고향을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 가득해. 아버지는 어부였고, 어머니는 좋은 집안 출신이어서 하루 세끼니 거르지 않고 행복하게 자랐던 것 같아. 게다가 외국에 먼저 나가 있던 가족들이 보내준 돈으로 어려움이 없이 살 수 있었어.

사계가 뚜렷한 내 고향에서 여름엔 친구들과 야영하고, 겨울엔 눈이 소복이 쌓인 집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즐겁게 지냈지. 하지만 이 행복이 오래가지는 않았어.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거든.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말이야. 그 이후로 어머니가 가정을 책임지시게 됐어.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리웠지만,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은 그 전과 같이 유복하게 지낼 수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탈북해 있는 고모에게서 연락이 온 거야. 고모는 엄마에게 나를 한국으로 데려가자고 했대. 내가 우리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고 4대 독자여서, 한국에서 제사 지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물론 그때는 나도 몰랐어. 나도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야.

고모는 누군가를 통해 두만강으로 와서 돈을 받아가라는 쪽지를 전해줬어. 그 쪽지만 보고 우리는 두만강으로 간 거지. 그런데 거기서 납치를 당한 거야. 어머니와 사촌 형까지 같이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중국으로 가게 됐지. 너도 알잖아. 국경을 넘다가 잡혀서 북송되기도 하고, 물에 떠밀려 죽기도 하고, 총에 맞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난 왜 밤하늘의 별들이 그리 아름다웠을까
 
 김하늘 에디터
 김하늘 에디터
ⓒ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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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납치를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브로커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중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아.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손쉽게 국경을 넘어간 이후 연변에서 3개월을 체류하다가 고모를 만났어. 그리고 고모는 나를 봉고차에 태우고 알약을 하나 줬지. 멀미약이라고 해서 먹었는데 수면제였나 봐. 잠이 쏟아지더라고. 험한 길을 가는데 잠든 채로 이동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

2박 3일 동안 내내 자다가 깼다가, 다시 수면제에 취하기를 반복하며 몽골 인접의 국경까지 가게 되었어. 혹시 너, 그거 아니? 중국과 몽골 사이 국경 주변은 3km 정도 도랑으로 파여있어. 눈을 뜨니 국경이었는데 브로커가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앞으로 달리라고 말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트랙터가 쫓아오기 시작했어.

우리는 그 도랑을 겨우겨우 넘고, 사막용 트랙터를 탄 중국 공안은 질주하며 우릴 계속 따라왔어. 그걸 브로커들이 차로 진로를 방해하며 막아주고 있었지. 그렇게 15분 정도를 달려 몽골 땅에 들어가니 더 이상 중국 공안들이 쫓아오지 못하더라고. 이제는 몽골이니까.

국경을 넘고 이삼일을 돌아다녔어. 밤에는 몽골 군인들이 우릴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모닥불을 피웠지. 그런데 어린 마음에는 그 추운 밤, 잠이 안 와서 바라보았던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 내가 정말 기분이 좋을 때나, 좋은 꿈을 꿀 때는 아직도 그 밤하늘이 떠오르거든.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흘렀거든.
 
 
ⓒ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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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광경이 정말 인상 깊었던 것 같아. 사실 생각하면 위기에 순간에서 그런 낭만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을 텐데 너무 어릴 때여서 순수함이 더 컸던 것 같아. 그날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데 엄마랑 나랑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는데, 다음 날, 말 타고 국경을 지키는 몽골 군인들이 우리를 발견한 거야.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감옥에 갇혀 난민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며 감옥 생활을 했고, 3개월 후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온 거야. 그때부터는 너도 겪어봤겠지만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가족들 모두 독방을 쓰면서 몇 달 동안 세밀한 조사를 받았어. 그 후에는 네가 그룹홈 오기 직전에 머물렀었을 하나원에서 지냈고.

한국 생활이 쭉 행복했냐고?

형이 한국에 온 지가 10년이 지났는데, 아마 요즘도 비슷하지? 은휘는 어땠니? 
아직도 하나원 생활은 기억난다. 신용카드 만드는 법처럼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을 가르쳐주잖아. 난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국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어. 바로 전국일주야. 내가 12살 때인 2005년 12월에 한국에 왔고, 2006년 2월에 그룹홈 삼촌을 처음 만났거든. 삼촌하고 같이 산지 10개월쯤 됐을까, 삼촌이 여행을 떠나자고 했어.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 지리도 잘 알아야 하고, 직접 보고 겪어야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다며 여행을 떠났지. 12월부터 3월까지 무려 4개월을 돌아다녔어.

겨우내 걷고 버스 타면서 섬 빼고 거의 전국을 다 돌았지. 바닷가 마을들을 따라 전국을 한 번 돌고, 또다시 인천에서부터 전국 곳곳을 다녔어. 날씨도 춥고 고생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행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던 나에게는 모든 순간이 너무 좋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야.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아, 그래서 한국에서 생활이 그 후로 쭉 행복했냐고? 사실은 아니야. 학교 가서 사고를 많이 쳤거든. 은휘도 12살인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 다시 시작한다던대, 맞니? 나도 13살 때 4학년부터 시작했으니까, 학교 가면 2살 아래의 친구들을 사귀겠구나. 그래도 요즘은 남북 정상회담도 열리고, 한국 사람들이 탈북한 우리들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긴 해.

그런데 형이 처음 학교에 갔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 처음 가는 학교도, 새로운 친구들도 무서웠고, 나도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었거든. 처음에는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왕따를 심하게 당했어. 게다가 바쁜 엄마를 대신해 그룹홈 삼촌이 나를 키워줄 때 우리 한 달 생활비가 20만 원이었어. 결국 학교 적응도 힘들고, 서울 생활 자체도 너무 힘들어서 안산으로 이사 가서 전학도 갔는데, 그때 소위 말하는 양아치 짓을 시작했지 뭐야.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탈북청년
 탈북청년
ⓒ 은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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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취재, 글, 삽화 : 김하늘 에디터
미디어눈 팀 블로그에도 연재중입니다. https://brunch.co.kr/@medianoon/22
미디어눈은 "모든 목소리에 가치를"이라는 비전으로 활동하는 청년미디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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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목소리에 가치를" 김하늘 미디어눈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