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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에 공 넘겨 '조속한 비핵화' 이행 견인 우회 압박 관측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북한의 비핵화 시한과 관련,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달 26일 발언을 "정확하게 옳은 말"이라며 재확인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맞바꾸는 북미 간 빅딜의 1차 분수령이 될 오는 7일 4차 방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 비핵화 달성'이라는 명시적 가이드라인을 거둬들인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러면서 '2021년' 시간표는 자신의 말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특정 시한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한 발 빼며 장기전에 본격 대비하면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나눈 이야기라는 점을 부각, 남북 정상에게 다시 공을 넘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2021년 시한은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6월 14일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한의 주요 비핵화 조치를 달성하길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의 뜸 들이기로 북미 간 후속협상이 지연된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은 같은 달 25일 비핵화 시간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발 물러서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달 27일 '칠면조 구이론'을 꺼내 들면서 서두르지 않겠다고 '속도 조절론'을 내세웠다.

폼페이오 장관의 7월 6∼7일 3차 방북을 앞두고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핵과 생화학 무기를 포함한 대량파괴무기(WMD)+탄도미사일 1년 내 해체'라는 시간표를 공개적으로 제시, 이러한 방안이 조만간 북미 간에 논의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시간표 논란은 재점화했다. 국무부는 당시 "우리는 시간표를 내놓지 않겠다"고 다시 거리를 뒀다.

폼페이오 장관의 3차 평양행이 빈손 방북 논란에 휩싸이고 그 뒤 교착상태가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7일 "시간제한도, 속도제한도 없다"며 아예 시한의 빗장을 풀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 시간표가 다시 수면 위로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달 초 방북해 김 위원장과 면담한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의 70년간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 소개되면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멋지다, 아주 멋지다"며 공개적으로 환영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19일 북미 협상의 즉각적 재개 방침을 선언하며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자고 북측에 제안한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에도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과정"이라는 표현으로 이 시간표가 다시 한 번 거론됐다.

당시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정상회담 직후 이 시간표를 언급했던 것을 상기시킨 뒤 "목표는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2021년 1월)까지 이것(비핵화)을 마치는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이후 나온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은 시한에 쫓겨 졸속 합의를 하기보다는 북한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협상의 주도권을 유지해가며 내실을 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서두를 것이 없다"며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여기에는 비핵화 협상이 그 특성상 '마라톤'식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 인식도 깔렸다. 그 핵심에는 물론 '사찰'과 '검증'을 둘러싼 양측간 힘겨루기가 자리 잡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이것은 수십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장기적인 문제"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속도전식 타결 전망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은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을 공개적으로 내놓을 경우 자칫 외부의 기대치만 높이고 시한을 맞추지 못하면 역풍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3차 방북 후 '빈손 논란'에 시달린 전철에 비춰볼 때 이번에 명시적 시간표를 못 박을 경우 협상의 총책임자인 폼페이오 장관으로선 4차 방북을 앞두고 또 하나의 압박이 될 수 있다.

내부적으로 비핵화 시간표 자체를 접었다기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위한 전술적 궤도수정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우리는 빨리하고 싶다"는 희망 사항은 분명히 했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2021년 초 시간표'가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논의한 사안이라고 끄집어냄으로써 비핵화 이행의 당사자인 김 위원장과 중재자인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조속한 비핵화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면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의 일종의'치고 빠지기'식의 전술은 볼턴 보좌관의 앞선 시간표 언급 때와 '데자뷔'(기시감)를 연출하며 오버랩된다는 시각도 있다.

볼턴 보좌관은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직전인 지난 7월 1일 '1년 내 비핵화' 시간표를 공개적으로 언급, 논란을 빚은 지 약 한달 뒤인 지난 8월 5일 4·27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1년 안에 비핵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주장했다.

볼턴 보좌관은 그 뒤에도 김 위원장이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가 2년 이내에 할 수 있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1년 이내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그렇게 하자'고 화답했다며 "1년 이내 비핵화는 남북이 이미 동의한 것으로, 진정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거듭 주장한 바 있다.

hanks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폼페이오, #방북, #비핵화, #북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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