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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은 어느 정도 감정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의 20대는 펼쳐질 앞날에 대한 불안과 희망 혹은 욕심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늘 해매고 방황하며 우울한 표정을 달고 살았다.

그런 20대를 보내다 30대가 되니 20대보다는 살 만했고 사십이 되니 삼십대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50, 60대가 되더라도 내 마음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여유로워져 어느 순간 부처님 미소 비슷한 것이라도 흉내 낼 줄 알았다.

지금, 그 고대하던 50대를 살고 있다. 더 이상 두려울 것이 뭐 있나. 뻔히 보이는 지는 해 같은 삶의 후반부를 향해 낭창하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했다. 그런데 50대에도 여전히 뭔가 어려운 숙제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시대는 지는 해의 여정이 너무 길다. 쉰의 초입에 들어선 내 생각 심지어 외관마저 도무지 내가 예전에 엄마에게서 보았던 혹은 10년 전 쉰의 여성들에서 보았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생로병사 네 개의 순서가 저마다 적당한 길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로(...)병(...)사로 끝나기 쉬운 시대이다. 일찍이 졸업한 줄 알았던 막막함과 고통, 고독, 우울, 지루함 같은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기 싫어도 맞을 수밖에 없는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 욕심을 비운다고만 되는 게 아니라 건강한 몸을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내 타고난 마음의 심연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

인간 감정의 다섯 빛깔이란?
 
 마음에 들다 - 불교와 정신분석으로 읽은 신화와 동화
 마음에 들다 - 불교와 정신분석으로 읽은 신화와 동화
ⓒ 서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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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다>(김권태, 서쪽나무)를 읽었다. 우리가 느끼는 이 행복도 불행도 결국 다 감정 때문이 아닌가. 감정이 담긴 마음 때문이 아닌가. 저자는 감정을 크게 '분노, 기쁨, 근심, 슬픔, 공포(怒노 喜희 憂우 悲비 恐공)'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러한 감정이 일어날 때의 그 미묘한 상태의 설명이 마음에(감정에) 와 닿았다.
 
즉 '분노'는 자신이 소화하지 못하는 것을 욕처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고, 혹은 밀어낼 때 느껴지는 것이다. '기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것이고, 혹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느껴지는 것이다. '근심'은 소화하지 못한 것을 소화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음미하는 것이고, 혹은 반복적으로 되새길 때 느껴지는 것이다. '슬픔'은 소화하기 어려운 것을 수용하기 위해 고통을 견디며 그것을 말랑말랑하게 삭혀내는 것이고, 혹은 삭혀낼 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는 압도적 자극에 대한 자동반응으로 그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는 것이고, 혹은 그 압도적 자극에 대해 느껴지는 것이다. - 본문 20쪽
 
 
감정이야말로 유리보다 더 깨지기 쉬운 것인데 우리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에 또 얼마나 무심한가. 한 마음에 다 가지고 있기 너무도 불편한 이 다양한 빛깔의 감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신화도 동화도 필요 없고 그 많은 종교도 철학도 심리분석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쩌자고 이런 섬세한 영물이 되어 무심한 자연과 달리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화(나르키소스, 오이티푸스, 에로스와 프시케)와 동화(신데렐라, 잭과 콩 나무, 백설 공주)에서 인간심리의 근원을 읽어낸다. 불교철학과 서양 정신분석의 접목을 통해 신화와 동화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한계와 희비에 대한 상징과 은유임을 밝혀준다. 오늘날에 비추면 신화는 황당하고 동화는 후지거나 한가하고 빤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한번은 그 얘기들에서 재미와 위로를 얻는다.

동화의 주인공들은 어려움에 처한 현실을 인내하고 극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한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이미 성숙해진 우리의 이성으로는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심층 내지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우리 존재의 불안한 출발점을 짚어준다.

무의식 그 아름다운 신비 혹은 잉태?
 
무의식은 정신의 내용물이자 그 내용물을 담고 있는 정신자체다.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는 자동적 사고이며, 또 기억되지 않는 경험흔적이다. 생존을 위해 생득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본능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과 감정을 불러오는 파편적 에너지다. 또 무의식은 위와 같은 분열되고 억압된 무의식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온갖 생명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흔적들이 각인돼 내려오는 유전 정보이자 선험적인 경험기록이다. 불교에서는 생의 모든 경험흔적들을 '종자식'이라고 하는데, 이때 '언어-사고-자아'에 포착되지 않은 종자식은 무의식으로 바꿔 부를 만하다.

......'본능'은 타고난 유전정보를 포함한 선험적인 경험으로서 강렬한 현재 속에서 의지를 주관한다고 할 수 있다. '감정'은 씨앗 같은 본능이 대상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발현된 것으로 발달하는 신체능력과 이에 따른 신체이미지와 함께 감각, 느낌, 정서적 경험이 정신의 육체를 형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언어이전, 사고이전, 자아이전은 의식의 경계 밖에서 나를 구성하는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이자 무의식과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며, 이 무의식 세계는 개인과 인류 전체를 포함한 영원의 기억 , 영원의 신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112~ 113쪽

 
 
가끔 내 무의식의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 그 시원의 덩어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다 들어주고 싶다. 그 무의식이 원하는 것을 건드려주고 실현시켜주어야 현실의 내가 보다 안정되고 성숙해지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궁금하지만 모르고 싶기도 하다. 그냥 모르쇠 덮어두고 싶다. 그러나 덮어둔다고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화들짝 놀라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기 위해서 알 수는 없더라도 무의식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아야할까.

평소 주(註)가 달린 책은 멀리하고 싶고 주가 많으면 건너뛰기 십상이었는데 이 책의 주는 본문과는 또 다른 빛깔로 명쾌한 여운을 주었다. 12연기법과 유식불교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곁들인 찬찬한 설명은 서너 번 곱씹어 읽게 만들었고 어떤 향기마저 느껴졌다.
 
불교는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일(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이라고 말한다. 기억할 수 없는 경험조차 우리마음에 '씨앗(種子종자,業力업력)'으로 고스란히 저장되고, 또 이 씨앗은 인연 따라 그만한 크기의 싹을 틔우며 자란다고 말한다. 씨앗에서 한 현상이 펼쳐지고(種子生現行종자생현행), 현상의 결과물은 다시 씨앗으로 저장된다(現行熏種子현행훈종자). 또 씨앗은 다시 다른 씨앗을 낳고(種子生種子종자생종자),그렇게 마음이 마음을 머금고 또 마음이 마음을 낳는다. - 본문 89쪽 주(註)

결국 모든 것은 마음인가. 이 가을 내 마음의 행로를 조용히 지켜보는 습관을 들여 봐야겠다. 수시로 일어나고 꺼지는 편린들속에서 내가 무엇을 심고 또 갈구하는지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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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