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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션샤인의 팬들
 미스터 션샤인의 팬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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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 날. 아빠를 빼고 네 식구가 소파에 조르르 앉아 드라마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처음엔 드라마가 잔인하고 무서워서 안 보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 한다. 드라마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드라마의 속도가 지지부진해서, 드라마의 뻔한 새드엔딩이 못마땅해서 보지 않는 나와 달리 나머지 식구는 꼭 그 슬픈 결말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나 역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귀는 TV에 가 있다. 직접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아내와 언론을 통해 줄거리는 대충 꿰고 있는바, 그 끝이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과연 누가 살아남아서 그 시대와 지금의 연결고리가 될까?

역시나 주인공들은 차례차례 죽어가기 시작했다. 구한말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드라마는 여실히 보여줬다. 뭣 좀 아는 첫째는 누군가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고, 둘째는 왜 일본군들이 총을 쏘는지, 왜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지 않는지 등을 연신 물어댔다. "조용히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받아가며.
 
 미스터 션샤인의 포스터
 미스터 션샤인의 포스터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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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드라마는 끝났고, 아내는 둘째에게 아주 고약한 질문을 던졌다.

"산들아. 그래서 너는 만약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누가 되고 싶어? 의병? 친일파?"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둘째의 성정 상 쉬운 질문이 아니었다. 죽기는 싫은데 의병을 하자니 살 수 없을 것 같고, 친일파를 하자니 그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사면초가의 상황. 녀석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둘째의 고민

사실 아내는 지난주에도 산들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당시 녀석은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었다.

"난, 의원 할래."

산들이가 의원을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의원은 의병의 편도, 일본군의 편도 아니었기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6살 막내는 긴 칼을 두 개나 찼다며 일본 사무라이가 되고 싶다고 마냥 떠들었지만, 8살 둘째는 벌써 삶의 애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또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칼 두 개 찬 사람이 마냥 멋있는 6살 막둥이
 칼 두 개 찬 사람이 마냥 멋있는 6살 막둥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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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필 드라마에서 의원까지 죽고 말다니. 이제는 의병과 일본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의병이 되자니 죽을까봐 겁나고, 친일파가 되자니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을 것 같고. 둘째가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하자, 첫째인 10살 까꿍이가 거들고 나섰다.

"뭘 그렇게 고민해. 난 의병 할 거야. 그리고 일본하고 싸울 거야."
"그럼 저렇게 죽을 수도 있는데?"
"죽으면 어쩔 수 없지 뭐."


역시 까꿍이다운 대답이었다. 쿨하기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녀석 같으니. 안 되겠다. 여전히 답하기가 어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둘째를 구원해주기 위해 아빠가 나설 수밖에.

"아빠는 저 시대에 태어나면 왕 할 거야. 봐봐. 왕은 안 죽었지? 그러니까 왕 해."
"그럼 저 왕은 오래 살았어?"
"응? 아니. 화병으로 오래 못 살았어. 눈 뜨고 나라를 빼앗겼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 일본한테 잡아먹히고 얼마 있지 않아 죽었어."
 
 삶의 애착이 생기기 시작한 8살 둘째
 삶의 애착이 생기기 시작한 8살 둘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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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오래 살지 못했다니 둘째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려운 질문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인 듯 보였다.

"일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네."
"그랬지.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도 일본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저랬는데 어찌 좋을 수 있겠어. 며칠 전에 일본 군함이 우리나라 들어올 때 국기 못 단다고 뉴스에 나왔잖아. 그 국기가 일본이 우리나라 잡아먹었을 때 국기여서 그래."
"치. 아빠는 그런데도 일본 갔었잖아."
"그건 그거고. 일본을 알아야지 또 같은 일을 안 당하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비록 더 이상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드라마를 보고 아이들과 이 정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아이들이 벌써 이만큼 크다니.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꽤나 많은 질문들을 던져가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겠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내가 아이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이들 옆에서 낄낄대고 있었지만 내게 똑같은 질문이 들어온다면 나는 그 시절 자신 있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을까? 의병? 친일파? 일본군?

고백건대 자신할 수 없었다. 산들이처럼 단지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의병의 길을 택할 때 짊어질 수밖에 없는 삶의 무게가 예전과 같지 않아서였다. 내가 죽으면 가족은? 자식은? 아직까지 친일파의 자손이 득세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과연 그와 같은 질문 앞에서 누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10여 년 전만 해도 난 까꿍이처럼 아무 갈등 없이 의병을 택했을 것이다.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 자체를 고민한다는 것부터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고, 보수적으로 되었다는 뜻이겠지.
 
 <미스터 선샤인>의 의병
 <미스터 선샤인>의 의병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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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뜩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한 것은 아닌가 미안해졌다. 의병도, 친일파도 되기 싫어 겨우 의원을 택한 아이에게 너무 가혹했던 건 아닐까? 잠을 청하는 아이 옆에 누워 말을 건넸다.

"산들아, 아직도 고민돼?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응."
"됐어. 그런 세상이 안 오게 아빠가 노력할 거야. 죽기도 싫고 친일파도 되기 싫은 거잖아. 그런 세상이 안 오게 하려면 우리가 열심히 자신의 맡은 바를 하면서 서로를 아끼면 돼. 그때는 높은 사람들이 자기만 잘살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거야. 나라도 팔아먹고. 이제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못하도록 우리가 지켜봐야지. 그래서 우리가 촛불도 들은 거야."


아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잠이 들었다. 짠했다. 다 자란 듯하지만 아직 어리고 순진한 8살 둘째.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라 산들아. 구한말 같은 세상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노력할게. 그래서 조금 더 눈 크게 뜨고 세상을 지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렴.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물었을 때 대답해줄 거란다. 아빠는 그때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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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