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2 21:30최종 업데이트 18.11.13 11:33
 

박재혁 의사가 재학했던 '부산공립상업학교 교정' 박재혁 의사가 재학했던 '부산공립상업학교 교정'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박재혁이 다닌 이 학교 출신들은 민족의식이 강하여 병탄 직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줄기차게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앞에서 잠깐 소개한 대로 박재혁을 비롯하여 서훈된 독립유공자가 30명에 이르고, 최천택과 박재혁 등이 주도한 구세단(救世団) 사건 등 항일구국운동이 19건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1개 고등학교에서 이같이 많은 항일결사 독립운동이 전개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박재혁은 15세 때에 나라가 망하는 국치를 당하였다. 
당시는 아직 철부지였으나 1910년 8월 29일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른들의 말에서, 그리고 학교 선생님을 통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후 부산상업학교에서도 예외없이 일본어를 배우고 우리나라 역사 아닌 일본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부산 거리에는 하루가 다르게 일본사람들이 설치고 상점에는 각종 일본상품들이 진열되었다. 허리에 긴 칼을 찬 일본 순사와 헌병들이 걸핏하면 한국 사람들을 거칠게 두들겨 패거나 붙잡아 가고, 그들은 길거리에서 일본말을 공공연하게 지껄여댔다. 

박재혁은 국치를 겪으면서 사회의식과 역사정신에 눈이 틔었다. 정의감이 강해지고 따라서 리더십이 발현되었다. 시대상황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타고난 바탕도 있었던 것 같다.
  

왼편 한복 차림의 박재혁의사부산공립상업학교 재학 때 급우들과 함께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박재혁은 병탄 2년 후인 1912년 2학년 당시 학우 최천택ㆍ김병태ㆍ박홍규 등과 함께 <동국역사>를 등사기로 찍어 자신들의 학교는 물론 동래고보ㆍ부산진일신여학교 등 부산지역 주요 학교와 학생들에게 배포하기로 하였다. 애국학생들이 이런 일을 하게 된 데는 시대적ㆍ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후 가장 먼저 서두른 일은 전국적으로 우리나라의 사서(史書)를 약탈소각하는 것이었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취임하자마자 총독부에 취조국을 설치하면서 내세우기는 '조선의 관습과 제도조사'라고 했지만 실제 목적은 이른바 '불온서적'의 압수에 있었다. 

병탄 이틀 후인 1910년 10월 1일부터 <관보>를 발행하는 기민성을 보인 총독부는 그해 11월에 설치한 취조국을 통해 전국의 각 도ㆍ국 경찰과 헌병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사서를 비롯하여 전통ㆍ문화ㆍ예술ㆍ인물ㆍ전기ㆍ열전ㆍ충의록ㆍ무용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뒤져 압수하기 시작했다.

서적의 압수는 서울 종로 일대의 서점은 말할 것도 없고 경향 각지에서 행해졌다. 총독부가 눈에 불을 켜고 찾은 서적은 특히 단군관계의 조선고사서를 비롯한 각종 역사서가 중심이었다.

이와 함께 조선지리와 신채호의 을지문덕 등 애국충절을 고취하는 내용, <미국의 독립사>, <월남망국사> 등 외국의 역사책도 압수했으며, <유년필독>과 같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교과서, 심지어 조선시대의 창가집까지도 빠지지 않고 강탈해갔다.

이같은 총독부의 서적 수색ㆍ압수ㆍ소각 작전은 1918년 말까지 8년간에 걸쳐 저질러졌다. 초기에는 위협과 '대출'의 명목으로 수거하다가 나중에는 강제로 수색하고 수거한 책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지 않음으로써 크게 물의를 빚고, 따라서 소장자들은 더욱 깊숙이 은닉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총독부에서는 우리 사서 20여만 권을 수거하여 불태우고 중요한 서책은 일본으로 가져갔다. 

박재혁과 최천택ㆍ김병태ㆍ박홍규 네 친구는 어느 날, 일제가 우리나라 역사책을 모조리 불태우고, 학교에서는 일본 역사만 가르치는데 대해 분노하면서 대책을 의논하였다. 일본 순사들이 가정집은 물론 학교나 향교ㆍ종가에 보관된 각종 고서와 족보까지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의 족보도 거두어 불태워 버린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가서 우리 모두가 왜놈이 다 되어 버리고 말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의 뿌리인 우리나라 역사를 우리 학우들에게 알리자는 거야."
"어떻게…."
"여기 동국역사책이란 우리나라 역사책이 있어. 이것을 인쇄해서 우리 학우들에게 나누어 주면 돼!"
"우리 네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할 수 있어. 그런데, 비밀이야. 철저하게 비밀로 해야 해."
"비밀로 하는 것은 문제 없지만……."
"등사기구는 어떻게 구하지?"
"염려마……. 이미 내가 여기저기 다 알아봐 놓았으니까."

모든 준비는 최천택과 박재혁이 맡아 하기로 하고 준비가 되는 대로 최천택의 사랑채에 모여 인쇄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학교 공부를 제쳐두고 국사책 인쇄하는 데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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