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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진은 지난 5월 2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알로이지우 누네스 브라질 외교부 장관과 악수를 나눈 뒤 자리로 향하고 있는 모습.
 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진은 지난 5월 2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알로이지우 누네스 브라질 외교부 장관과 악수를 나눈 뒤 자리로 향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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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교관 정말로 그렇게 외국어를 못하나

최근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외국어 실력 부족을 지적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런 지적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차제에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사실 역사가 오래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째 계속돼 오고 있는 논란이고, 강 장관의 지시가 사실이었다 해도 강 장관이 외교관 외국어 능력 강화를 지시한 첫 장관도 아니다.

왜 외교관들의 외국어 능력에 대한 시비와 불만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여러 나라에 살아 보기도 하고 다녀 보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처럼 외교관들의 외국어 능력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이토록 강하게 이토록 오랫동안 계속되는 나라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국제 무대에서 영어 못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이 논란은 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일까?  

외국어는 좋은 외교관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지난 1월 4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신임외교관 임명장 수여 및 환영식에서 신임 외교관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지난 1월 4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신임외교관 임명장 수여 및 환영식에서 신임 외교관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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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가장 큰 이유는 외교관에게 외국어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우리 사회에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합의가 없는 이유는 실제 외교관들이 하는 일과 일반인들은 물론 일부 정치인들이 외교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간에 커다란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외교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 외국어라고 생각한다. 많은 외교관 지망생들이 그리고 외교에 관심있는 많은 일반인들이 외교관을 떠올리면 리셉션이나 파티에 가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국제회의에 가서 영어로 연설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일도 외교관이 하는 일 중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된다. 외교관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내 경험에 비춰 본다면 최소 95% 이상은 다 한국말로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외교부 본부의 경우에 서기관이나 과장급 정도 되면 매일 읽어야 되는 전문 등 문서량을 다 합쳐 몇백 페이지는 족히 된다. 그리고 그 문서라는 것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무슨 보고서 같은 것들이 아니다. 면담 기록도 있고, 행사 결과 보고도 있다.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기록 또는 그 후속 보고들도 있다. 인근 공관에서 보고한 내용에 대해 코멘트를 다는 형식으로 추가 보고가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잡다하다. 내용도 이 내용 저 내용 매우 복잡하다. 아마 외교부의 문서 양식이나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문서들을 다 보여줘도 하루이틀 정도 읽어 가지고는 그 흐름을 따라 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외교부나 대사관에 아침에 출근하면 누군가가 "오늘의 전문 내용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하고 먹기 좋게 잘라서 내 입에 떠 넣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은 그 전문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 방대하고 복잡한 내용을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게 쟁점을 정리하고 공유하고 보고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외교관으로서 아니 공무원으로서 월급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아침에 나와서 문서를 빨리 소화하지 못하면 업무를 따라가기 어렵다. 당장 과장이나 국장 혹은 참사관이나 공사참사관이 회의를 하자고 하면 대개 시간도 없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화의 전제는 참석자들이 모든 전문을 다 읽었고, 지금 현재 우리 부서 내에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만 부서내에 돌아다니는 문서를 안 읽어도 주변 동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러면 당연히 핀잔이 들어온다. "요즘 뭐하고 있어?" "(전문) 안 읽어?" 등등.

외교관이 문서를 생산하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냥 내가 전문 읽고 책상 위에서 끄적거리면 그게 대한민국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소관 캐비닛을 열거나 아니면 전자 문서 시스템에 들어가서 지금 당장 내가 작성하려고 하는 문서의 주제와 관련된 과거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읽어 봐야 한다. 분량은 많다. 때로는 다 읽기 어려울 때도 많다. 어느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외교관 역시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다른 주제들에 대해 동시에 보고서를 써야 할 때도 있다. 과장이 시킨 일, 국장이 시킨 일을 따로 그러나 동시에 처리해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바쁘더라도 최대한 눈을 부릅뜨고 과거 문서들을 읽어야 한다. 과거 전례들을 잘 알고 있어야만 결재 과정에서 질문이 나왔을 때 대답을 제대로 하고 상사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담당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결재 과정도 만만치 않다. 내가 처음에 초안을 만들고, 과 차석이 보고, 과장이 보고, 심의관이 보고, 국장도 본다. 대사관이라면 참사관, 공사참사관, 공사한테 보여주고 오케이를 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거 고치자, 이거 빼자, 그거는 중요한 것 같은데 왜 안 들어 갔어? 왜 이 문장은 석 줄이나 돼? 불필요하잖아. 두 줄이면 될 걸.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등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고, 한두 장 짜리 문서 하나가 최종 통과되는 데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정책을 만들거나 정부 입장을 정하는 것이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등본 발급하는 과정과 같을 수는 없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일을 낮잡아 보자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 조직의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고 고려해 봐야 될 사항은 점점 늘어난다. 타국의 입장이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외교의 경우에 정책을 만드는 과정은 더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공무원이라고 해서 신이 아닌데 미래를 전부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은 항상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과거 전례나 공무원의 경험, 관련 법령에 대한 해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또 결재 과정에서도 경험있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조정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점을 포괄할 수 있고, 실패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이렇게 읽고, 쓰고, 토론하고, 협의하고 하는 복잡한 일 처리 과정을 외교관이라고 해서 외국어로 할까? 전혀 아니다. 모두 우리의 말과 글, 즉 한국어로 한다.  

얼핏 생각하면 외교관은 외국에서 오래 살고, 외국 사람을 많이 만나니, 역시 외국에서 오래 살고 외국어에 익숙한 사람이면 좋은 외교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외교관들이 실제로 일하는 방식이나 그 내용에 비춰 본다면 외교관의 제일 조건이 해외생활 경험과 외국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외교부가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정치권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현재는 폐지된지 오래 됐지만, 과거 외무고등고시에 2부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 논의가 시작돼 1997년도부터 몇 년간 실제로 시행됐던 외교관 채용 방식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제도는 사실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던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도입된 것이었다. 당시 문민정부는 개혁의 추진 동력을 집중하기 위한 표어로서 세계화를 들고 나오면서 국내 여러 부문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법조인 산출의 제도적 경로로 자리잡은 로스쿨이라고 하는 것도 당시 세계화의 표어 하에 처음으로 논의가 시작된 것이었다.

외교 부문에서도 세계화에 맞춰 새롭게 내놓은 것 중 하나가 외무고시 2부 제도였다. 원래 취지는 해외에 있는 인재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한국 출신 재외동포 자녀들 중에 외국어에 능통하고 유능한 인재가 많으니, 그들을 흡수해 외교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 나고 자라 해외생활 경험이 많고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잘하니 그들이 좋은 외교관이 될 것이라는 전제에 입각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2부 제도라는 것을 신설했고, 외무고시 2차 시험을 두 과목만 그것도 외국어로 응시할 수 있게 해줬다. 그 당시에 세계 각국 재외공관을 통해서 2부 제도에 대한 홍보도 이뤄졌다. 재외동포 자녀들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응시자나 합격자들 중에 재외동포 자녀는 거의 없었고, 현직 외교관 자녀들이나 국내에서 나고 자라다가 부모의 직장 사정으로 인해 해외에서 수학을 하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해가 지나도 이런 상황은 결국 바뀌지 않았다. 당초 기대와 달리 재외동포 자녀들은 이 경로를 통해 별로 들어온 사례가 많지 않다.

이명박 정부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당시에도 해외에 유능한 재외동포들이 많으니 이들을 대사관에 많이 채용해서 외교인력으로 적극 활용해야 된다는 주장이 정부 내에서 제기됐다. 그래서 막대한 액수의 인건비 예산도 새로 배정이 됐다. 적절 수준의 대우를 해주어야만 유능한 해외동포나 그 자녀들이 응시를 할 거라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역시 막상 인력을 뽑아 보고 운용을 해보니 결국 대부분이 국내에서 나고 자라서 오래 살다가 해외로 유학을 온 분들이었다. 해외에서 나고 자란 해외동포나 그 자녀는 응시율 자체가 높지가 않았다.  

이 두 가지 제도의 운용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외교 현장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인력 수요와 우리 정치권이나 혹은 정부 수뇌부에서 생각하는 외교관의 하는 일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해외동포 자녀들 중에 유능한 분들이 상당수 있는 것은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분들을 우리 정부로 불러 들여 적극 활용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외교 현장의 업무 수요나 방식을 고려해 볼 때, 해외에서 나고 자라서 외국어를 모국어로 삼아 평생 살아온 분들이 외교부에 들어온다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대한민국 외교부는 외국의 정부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부기관이다. 당연히 모든 업무를 한국어로 한다. 그리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흡수해야 하는 한국어 문서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생산해야 하는 문서들 역시 복잡미묘한 한국어의 뉘앙스에 대한 고도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더욱이 그렇게 글을 써 놓고 나면, 끊임없는 내부 토론 속에서 자기의 말과 글을 방어해야 한다. 모두 고도의 한국어 실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적 기준으로 봐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 외교부가 업무를 외국어로 하나?  전세계 어느 나라 외교부가 자국 외교관을 뽑는데 국어로 시험을 안 보고, 외국어로 시험을 보나?

물론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영어로 일하는 나라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영국 혹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그리고 식민지가 되기 전에도 여러 민족이나 지리적 단위로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통일된 공용어가 없던 나라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영미의 식민지였던 적도 없고, 더욱이 수백년, 수천년에 걸쳐서 자신의 말과 글을 별도로 갖고 있던 나라가 외국어로 일을 하고 외국어로 사람을 뽑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외국에서 나고 자라 외국어에 능통하고 능력도 좋아서 그 나라의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취직을 할 때 즈음에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출신 국가인 한국에 애착을 느끼고 한국에 와서 공무원 생활을 하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해 준다면 그런 고마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 근거해서 우리 공무원의 채용과 인사제도를 운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평균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사례들이 아니라 오히려 미담에 가까운 일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예를 들었던 외무고시 2부나 재외공관 전문 인력 채용 사례를 봐도 실제로 채용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내지 대학교의 전부 혹은 일부를 한국에서 졸업한 사람들이다.

평생 외국에서 살고,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편하고, 자기 친구들도 다 외국에 있고, 외국에서도 충분히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인 것이다.

사실 일반인의 외교관에 대한 이미지와 달리 외교관 이야말로 일반인보다 더 조국에 대한 애착이 필요하고,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직업이다. 해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 외국인들이 우리 외교관들에게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대해 물어본다.

외교관이면 미국의 내부 사정이나 중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우리 외교관의 최종 목표는 결국 우리의 국가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또 그것을 증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로 귀결된다. 타국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은 모두 결국 우리의 국가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외교관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 자국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만약 어떤 외교관이 해외에 나가서 오래 살고, 외국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해서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잊어 버리게 된다면 그는 그 순간 이미 실패한 외교관이다. 조국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우리 국민의 이익과 국가이익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투철한 사상 무장이 돼 있지 않으면 외국에 가서 오랜 시간 동안 외국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조국을 위해 외교관으로서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애국심이나 국가 이익이라는 상위의 개념을 떠나 실무 차원에서 봐도 외교관에게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여러 역량 중 외국어가 일순위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 국무성에서 외교관들을 교육시킬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은 사실 '글쓰기'다. 이것은 문학 수업 시간이나 중고교 시절 작문 수업 시간에 배우던 글쓰기와는 좀 다르다. 영어로 'political writing'(폴리티컬 라이팅)이라고 하는데 우리 말로 하면 정세분석 내지 정세평가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교관 본인이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외국, 즉 주재국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을 분석해서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이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이 사실 이 정세분석과 평가 업무이다. 정세라고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또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한 현실을 읽어 내고, 분석, 평가해서,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과연 현재 이 나라의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종합적 차원에서 본부에 보고하는 것이다.  

좋은 정세분석과 평가를 하려면 객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 동시에 실제로 발로 뛰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외국어는 사실 양질의 정세분석과 평가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설사 외교관이라 해도 외국어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외국어를 잘하고 외국 사정을 잘 안다고 해서 그것 만으로 절대 좋은 정세분석과 평가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교의 세계에서 말하는 좋은 정세분석과 평가는 그냥 사실을 나열해 놓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먼저 우리의 국가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관점을 분명히 하고 그 입장에 서서 외국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강한 애정, 방대한 문서를 소화해 내는 독해력, 동료들과의 긴밀한 의사소통 능력,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정세를 분석, 평가하고 정책을 건의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 이런 능력들이 외교관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능력들이자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어를 잘 하거나 혹은 외국에 오래 살면 이런 능력이나 조건들이 저절로 따라올까?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만나서 좋은 외교관의 요건을 토론해 봤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외국 외교관도 외국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교관의 외국어 실력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이면에는 분명 우리 정부가 해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해 올바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본이고 무엇이 말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을 모른다면 결국 본말이 전도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외국어 못하는 외교관'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반복돼 온 것은 기실 대한민국 외교관들 스스로가 외교관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 여론에 따라 흔들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30년, 40년 전,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 여권 만들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던 시절에야 외국어 실력과 해외 생활 경험이 훌륭한 외교관의 요건 중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이나 능력 자체가 희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가? 요즘 세대들은 이미 취직하기 전에 해외여행도 해보고, 해외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해본 경우도 많다.  6개월, 1년씩 해외연수를 해본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교관 채용 방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 과정을 봐도 이미 외교부 들어오기 전에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해외 생활 경험과 높은 외국어 실력이 과거에 비해 확산돼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까지 외교관을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 내지 외국어 잘하는 사람 정도로 보는 이미지에 매몰되어 외국어와 외국 생활 경험이 마치 외교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외교관을 통역관 정도로 보는 잘못된 이미지에 질질 끌려 다닐 것인가?  

모든 외교관이 동시통역사 수준의 외국어 실력을 갖추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애국심있고, 글 잘 쓰고, 교섭도 잘하고 한국말도 잘하고 거기다 외국어도 동시통역사 수준으로 잘하면 금상첨화겠지요"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국가행정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최고면 좋다고 하면서 모든 '금상첨화'들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고 하는 것은 실제 조직 운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업무와 교육이 따로 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외국어 통역대학원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치열한 경쟁을 시키고 있다. 모든 대한민국 외교관들에게 그 정도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외국어 통역대학원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치열한 경쟁을 시키고 있다. 모든 대한민국 외교관들에게 그 정도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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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이든 무슨 역량이든지 간에 조직원의 역량을 강화하려면 우선 조직원의 목표 역량을 정하고, 주어진 시간과 제한된 재정 자원을 놓고 목표 달성을 위해 최적의 결과가 나오도록 자원 배분을 해야 한다. 모든 '금상첨화'들을 다 잡겠다는 것은 마치 '파랑새'를 잡으러 다니는 것과 같은 허망한 생각이다. 실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은 언제나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라는 문제를 놓고 목표 순위를 정하고 집행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시 통역사 한 명을 키우려면 최고의 외국어 실력을 갖춘 사람을 모아 놔도 집중교육에만 3~4년이 걸리고 그 와중에 또 다수가 탈락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외국어 통역대학원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치열한 경쟁을 시키고 있다. 모든 대한민국 외교관들에게 그 정도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외국어만 훈련시키고 그 와중에 다른 일은 안하고 다른 능력은 안 키울 것인가? 허구헌날 교육만 시키면 현장에는 언제 투입할 것인가?

만약 많은 일반인들 내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교관의 제일 요건 혹은 가장 중요한 기본 덕목이 외국어라면, 외교관 채용 시험에 외국어 과목만 남기든지 아니면 외국어 점수 배정을 획기적으로 올리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외국어 못하는 외교관' 논란에 대해 옳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언론의 비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특정 시기 여론의 흐름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정말로 대한민국 외교관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판단해 보고, 가능하고 바람직한 수준의 목표 역량 설정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이나 혹은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좋은 외교관이 될 것이라는 부분적이고 오도된 이미지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외국어 역량에 대한 수요 측면에서의 인식의 불일치가 '외국어 못하는 외교관' 논란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분명 공급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외교관의 외국어 능력에 대한 불만이 이토록 오래 제기돼왔다면, 서비스의 공급 측면에서도 뭔가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동안 그런 대응이 없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외교관들의 외국어 능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외교부는 이를 단지 외국어 교육의 문제로만 다뤄왔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대한민국 외교관들의 외국어 역량 강화가 잘 안 돼왔던 이유는 외국어 역량을 교육의 문제로만 봤기 때문이다.

조직 역량 강화의 기본은 역량과 업무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업무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기 역량이 강화되도록 제도 설계를 해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업무와 역량 강화를 직결시키는 것, 이것이 조직 역량 강화의 근본적 대안이다.  

예를 들어 보자. 주북한 러시아대사 마체고라는 외교관 경력이 거의 40년이다. 그 중 거의 절반을 남북한에서 살았다. 모스크바에 근무할 때도 대부분 한반도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마체고라 대사는 러시아에서 'MGIMO'라고 불리는 국립모스크바 국제관계 대학교 출신이다. 이 학교는 국립 외교관학교이다. 구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 외교관의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들로 충원됐다.  

마체고라 대사는 어떻게 한국 전문가가 됐을까. 그는 국립 외교관학교를 졸업하면서 한국 전문가로 선발됐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하향식 결정 방식이다. 직업은 당과 국가가 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평생을 북한, 한국, 모스크바를 오가면서 근무하게 됐다. 마체고라 대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러시아 사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외국인으로서 한국말을 잘하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어 속담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국인이 잘 모르는 단어들도 마치 한국 사람인 것처럼 맛깔나게 잘 쓰곤 한다.

10여 년 전에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열리는 동아시아포럼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각국 대표가 돌아가면서 연설을 하는 순서였는데, 중국 측 대표 차례였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저게 어느 나라 말이에요" 하고 물었더니 캄보디아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연설을 한 여자 분은 당시 주캄보디아 중국대사였다. 중국 사람들 한테 물어보니 그 대사는 평생 캄보디아 업무만 해온 중국 외교부내 대표적인 캄보디아 전문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날 씨엠립에서 일본 측 대표단도 만났다. 그 중 한 명은 전문직으로 일본 외무성에 들어온 분이었는데, 해외 연수 기간까지 합치면 자기는 캄보디아 근무가 네 번째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쿄와 캄보디아를 오가면서 근무할 것 같다고 했다.

과거 블라디보스토크 근무 시절 만난 중국 영사관 직원은 러시아어를 기가 막히게 했다. 눈감고 들으면 러시아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물어보니 자기는 중학교 때부터 러시아어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중국 외교관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자기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무심코 영어로 말을 하면 이 중국 외교관은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은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일본 외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러시아권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외교부에서는 언어 전공을 한 쪽으로 정하면 계속 그 업무를 맡긴다. 그리고 그 쪽 전공인 사람들 중에 경쟁을 시켜서 나중에 대사도 시켜 주고 다른 고위직도 시켜 준다. 당연히 소수 언어라 해도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외교부에서는 캄보디아어를 잘하거나 캄보디아 전문가가 됐다고 해서 주캄보디아 대사를 시켜 주지 않는다. 몽골어를 열심히 하고 몽골의 정세에 해박하다고 해서 주몽골 대사를 시켜 주지 않는다. 오히려 캄보디아 전문가가 되면 주캄보디아 대사가 되는 데 불리하고, 몽골 전문가가 되면 주몽골대사가 되는데 불리하다.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을 잘하면 역량도 강화되는 인사와 조직의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국 외교부에서는 영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오히려 불리해진다. 한국 외교부에서 차관보급 이상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소위 요직으로 분류되는 주요 과와 국들을 두루두루 근무해서 다양한 경력을 확보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 어느 한 분야나 언어 쪽으로 전문가가 되면 여러 부서를 총괄하는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데 유리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풍토는 사실 일본 외무성도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은 절충안을 쓰고 있다. 일본의 외무고시에 해당하는 것이 국가공무원시험 종합직이다. 일본 외무성의 전체 인력 규모가 우리보다 거의 3배 가까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매년 이 종합직 출신을 대략 20명 내외 밖에 뽑지 않는다. 일본 외무성보다 인력이 3분의 1 정도 밖에 안되는 우리 외교부는 일본의 종합직에 해당하는 5급 공채를 매년 40명이 넘게 신규 채용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의 종합직 출신들은 나중에 혹독한 훈련을 거쳐서 본부의 국장급 이상 간부들과 대사, 총영사 등 해외공관장을 시킬 사람들이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젊어서부터 본부의 여러 과들을 돌아가면서 실무 경험을 쌓게 한다. 외교관이긴 하지만 해외 공관 근무도 많이 안 시킨다. 이들 종합직 출신들에게는 외국어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책 입안과 운용 능력 위주로 훈련을 시킨다.

일본 외무성에서 외국어 전문가들은 종합직보다 한 직급 아래에서 채용하는 전문직이 맡는다. 이들은 특정 언어나 지역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전문성을 쌓게 해주고 해외공관도 가급적 그쪽으로만 계속 반복해서 보낸다. 그러니 당연히 해당 지역 외국어를 잘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인들이 외국어에 약하다고 하지만, 일본 외무성에서 한반도 담당하는 전문직 외교관들을 만나면 생각보다 훨씬 한국어를 잘한다. 연수부터 시작해서 계속 한국 관련 업무를 해왔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일본, 중국, 러시아의 사례에서는 업무와 역량 강화가 일체화돼 있다. 업무를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조직에서 요구하는 역량이 올라간다. 이것이 바로 조직 역량 강화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조직의 제도 설계 차원에서 업무 집중과 역량 강화를 일체화시켜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업무와 교육이 따로 놀고 있다. 외교관의 외국어 능력 부족 문제가 나오면 언제나 본부의 외국어 강좌를 늘린다거나 혹은 해외 공관에 배정하는 외국어 교육 예산을 늘린다거나 아니면 국립외교원에서 제공하는 외국어 교육을 확대,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실제 업무와 역량 강화를 일치시켜 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일본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실제 업무 로테이션이나 경력 경로는 순환보직과 일반적 정책 역량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본 외무성의 종합직 출신들 다루듯이 하고 있다.

반면 외교관의 외국어 능력 관련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실제로 업무 능력상으로는 일본 외무성 전문직 수준의 외국어 역량을 요구한다. 실제 조직의 제도 설계나 운용 방식이 일본 외무성과 판이하게 다른데, 조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만 일치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직이나 인사 구조의 변경 없이 제한된 교육자원의 재배분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니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감기에 안 걸리게 하려면 운동을 하고 밥을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병원을 많이 만들고 의사들을 늘리는 것은 대책은 될지 모르지만 하수인 것이다. 역대 우리 외교부의 외국어 능력 강화 방안이라는 것이 꼭 그런 식이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많으니, 병원을 많이 지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면역력을 어떻게 강화시켜 줄지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다.

미 국무성의 경우에는 우리 외교부의 현실과 비슷한 면이 있다. 미국 국무성은 전통적으로 언어나 지역 전문성을 상대적으로 덜 중시해 왔다. 신규 외교관을 채용할 때도, 정무, 경제, 영사, 총무, 공보라는 5개 직류 구분은 있지만, 특정 지역 전문가나 언어 전문가를 따로 뽑는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외교관들의 경력을 보면 지역이나 언어적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마케도니아에 있다가 한국에 왔다가 다시 파나마로 간다. 혹은 파키스탄에 있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다가 부산으로 가기도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채용과 인력 운용이 가능한 것은 우선 세계 어디를 가든 어느 정도 영어가 통한다는 사정도 작용할 것이다.

그런 미 국무성도 언어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대안은 갖고 있다. 그것이 이른바 사전연수(pre-posting) 제도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이집트 미국대사관에 어떤 국무성 직원이 근무를 희망했는데 아랍어를 못한다. 그러면 그 직원은 자신의 언어 연수 기회를 옵션으로 사용해서 자기 약점을 보강하고 이집트 발령을 받을 수가 있다. 우선 북버지니아에 있는 국무성 연수원(Foreign Service Institute)에 가서 몇 달동안 단기로 전일제 집중 연수를 받고 기초를 다진다. 그 후, 현지 대사관 발령을 받아 가서 실제 대사관 업무에 투입되기 전에 다시 반년 내지 1년간 집중 현지 언어 연수를 받는다. 구체적인 국내 및 국외 연수기간은 국무성 내규상 정해져 있는 각 언어별 난이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그러나 기본적인 운용 구조는 다 비슷하다. 인사내정, 국내 집중연수, 공관 발령, 현지 연수, 업무 투입 순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해외연수를 운용하면 업무와 교육간 연관성이 아주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연수자 본인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자연히 교육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진다. 교육 성과에 대한 평가도 특별히 필요가 없게 된다. 현지에서 바로 이어서 3년간 근무할 텐데 현지어 연수를 게을리 하면 자기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더욱이 주변 동료 직원들이나 직속 상사가 보기에도 막상 대사관 업무에 투입됐는데 현지어를 못하면 바로 당장 "연수 때 뭐한 거야"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신의 근무 성적 평가나 평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연수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 외교부는 해외연수를 이런 식으로 운용하지 않아 왔다. 해외연수를 어느 나라로 갈 것인지, 어느 기관으로 가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연수자 본인이 정한다. 나라별 쿼터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들쭉날쭉이다. 대부분이 영어권을 희망하기 때문에 결국 관건은 영어권 연수 정원을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지가 돼버린다. 

더 큰 문제는 연수가 끝나고 나서다. 연수 종료 후 연수받은 내용과 연관된 업무에 투입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중에 해외공관에 발령 받아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 연수를 받은 사람이 미국으로 가고, 러시아어 연수를 받은 사람이 일본으로 가기도 하고, 그때그때 희망이나 수요에 따라 달리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자기가 연수받은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으로 간다 해도 연수 시기와 실제 그 외국어를 사용해서 일을 하게 되는 시점 간에 중간 간격이 너무 길어서 연수의 업무 능력 향상 효과가 반감돼버린다.

이런 식의 묻지마 연수와 인력운용은 사실 민간 분야에서는 1997년 IMF 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이미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 우리나라 민간 대기업들은 철저히 업무상 필요 위주의 단기 연수 중심으로 운용한다. 드물게 6개월 이상 장기연수를 운용하는 경우에도, 기업 측에서 전문 연수기관과 협의해서 연수 프로그램 자체를 자기들 필요에 맞게 별도로 만들어 버린다. 내부 연수를 외주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수기간 동안 해당 연수기관에서 받은 종합 점수를 연수 후 첫 번째 연도 연봉이나 승진실적 고과에 철저하게 연계시켜 버린다. 당연히 연수 몰입도가 고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1년 이상 기간의 연수를 학위 과정으로 보내주는 식의 해외연수는 매우 드물게 그것도 기업내 고성과자에 대한 포상 형식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직 역량 강화의 기본은 일과 학습을 최대한 일치시켜 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연수의 직무 연관성을 최대화시켜 주는 것이다. 이 기본을 망각하면 아무리 교육에 자원을 많이 투입해도 교육은 교육대로 일은 일대로 따로 놀고 결국은 조직 전체 차원에서는 자원이 낭비된다.

일과 학습을 일치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 러시아,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별 직원이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장기간에 걸쳐 유사 업무를 반복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인력 운용이 여러 조직내 여건상 불가능하다면 미 국무성이 실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전연수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볼만하다.

물론 이 역시 쉬운 것은 아니다. 해외연수를 위한 정원과 예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한민국 공무원의 인력 운용은 법령상 정해진 정원 구조의 테두리 안에서만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연수 정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현업에 투입돼 있는 직원을 빼내다가 연수를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당장 현장 지휘관들이 반발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현재 한국 외교부에는 이러한 정원 확보의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과거에는 외무고시 출신 초임 외교관 전원을 입부후 2~3년내로 약 2~3년간 해외 장기연수를 보내줬다. 이를 위한 연수 정원이 매년 30~40명씩 확보돼 있었다. 그런데 현재 국립외교원을 통해 선발된 신규 외교관들의 경우, 과거 초임 외교관들 전원을 보내주던 해외기본연수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유휴 연수 정원과 예산이 있을 것이다. 이를 활용하여 차제에 미 국무성이 운용하는 것과 같은 단기 사전연수를 운용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외교관의 외국어 교육, 성과평가는 제대로 되고 있나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의 모습.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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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못하는 외교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던 세 번째 이유는, 우리 외교관의 외국어 교육이 성과 개념 중심으로 운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을 시키려면 교육 예산을 효율적으로 잘 집행해야 한다. 효율적인 교육 예산 집행의 기본은 성과다. 성과가 있는 교육에는 돈을 더 쓰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교육은 예산을 깎거나 아니면 교육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외국어 능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얘기이긴 하지만, 기존의 외국어 능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이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는지 평가를 해보고 좋은 평가를 받는 제도에는 예산을 더 배정하고 성과가 없는 제도는 축소 내지 폐지해야 한다. 그냥 어차피 확보된 교육 예산이니 그 돈은 누군가에게 쓰이고 어떤 식으로든 성과가 나오겠거니 하는 안일한 심정으로 예산집행을 한다면,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되고, 외국어 능력 강화는 요원한 일이 된다. 그리고 성과 평가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 그저 피교육자들에게 설문해 보니 '반응이 좋더라' 식의 주관적인 통계 숫자에 근거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성과를 못내는 예산은 과감히 삭제해야

예를 들어보자. 외교부에는 현재 외교부 부령으로 제정된 재외근무수당 가산금 제도라는 것이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제외하고 다른 언어에서 외교부 어학등급을 획득한 외교관이 해당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에 근무하면, 등급에 따라 최대 월 1000달러까지 재외근무수당 가산금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한다.

이 제도가 실시된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 제도가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 성과 평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성과 평가를 하려고 한다면, 실제로 그 가산금 제도 실시 이후에 원래 제2외국어 지망을 하지 않던 직원들이 얼마나 제2외국어를 많이 선택하게 됐는지, 혹은 제도 실시로 인해 기존 제2외국어 구사자의 외국어 능력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고액의 재외근무수당 가산금을 수령하고 있는 직원들이 원래 외교부에 입부하기 전부터 해당 외국어를 잘하던 직원들인지 아니면 외교부 입부 이후에 가산금 제도의 장려에 힘입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킨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만약 원래 외교부에 들어오기 전부터 높은 제2외국어 실력을 갖고 있던 직원들이 대부분 고액의 가산금을 수령하고 있다면 그것은 제도의 성공적인 운용 결과로 보기 어렵다.

어떤 제약회사에서 키가 커지는 영양제를 개발했다고 하자. 이 영양제의 성과를 측정하려면 키가 크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양제를 먹어서 키가 커진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줘야 한다. 그냥 원래 키가 컸던 사람들이 모두 이 새로이 개발된 영양제를 먹고 있다는 것은 영양제의 키크기 효과를 증명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성과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어차피 가산금이라는 것이 우리 직원들 중 누군가 받는 돈이니 그게 성과가 있든 없든 기존의 제도를 없앨 필요가 있나 하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응한다면 외국어 능력 강화라는 목표 달성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성과가 없다면 그런 예산은 폐지하고 차라리 좀 더 성과가 있는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성과가 있는 곳에는 돈을 더 넣고, 성과가 없는 곳에는 돈을 줄인다. 매우 간단해 보이는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집행할 때 진정 성과가 향상될 것이다.  

'업무에 필요한 만큼의 외국어 역량'과 '외국어 못하는 외교관'의 갈림길

이 글은 제목에서부터 질문으로 시작했다. 외교관에겐 외국어가 얼마나 필요한가? 답은 정해졌다. 업무에 필요한만큼. 그리고 이 답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글에서 세 가지 조언을 제시했다.

첫째, 외교관이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고 이에 맞춰서 우선 목표 역량을 제대로 정하라는 것이다. '외교관에게 외국어가 제일 중요하다'라든가 '외국에서 오래 살면 좋은 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외교관이 하는 일에 대한 잘못된 혹은 부분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기존의 외교관들부터 스스로 좋은 외교관의 상에 대해 자기 중심을 명확히 하고 그에 근거해서 필요 역량을 구성해야 한다.

둘째는 업무와 교육을 일치시켜 주라는 것이다. 외교관들이 업무를 열심히 하면 그것 만으로도 전체적으로 조직의 외국어 역량이 올라가는 구조를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단지 교육 강화라는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절대 안된다. 인사와 조직의 구조 자체가 외국어 능력이 강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 점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주요국 외교부의 사례들을 잘 연구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외국어 교육 강화 제도가 외교부의 업무상 필요한 외국어 능력을 실제로 향상시키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고 이에 따라 기존 제도를 냉정히 재평가해 보라는 것이다. 제도별 성과 평가를 구체적으로 해서 외국어 능력 제고 효과가 있는 곳에는 돈을 더 넣고, 성과가 없는 곳에는 돈을 깎으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언을 외교부가 수용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업무에 필요한 만큼의 외국어 역량', 다른 말로 하자면 제한된 자원 하에서 최적화된 업무역량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세 가지를 지키지 못한다면, 외교관들의 외국어 능력에 대한 의문과 '외국어 못하는 외교관'에 대한 타박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대한민국 외교관의 외국어 능력 강화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부승씨는 전직 외교관으로 현재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지난 9월 28일 석간 '내일신문'에 글쓴이가 기고했던 칼럼 '한국 외교관 외국어 실력 논란의 이면'을 확장, 보완한 글입니다.


태그:#외교관, #외국어능력, #외교부, #외교관에대한오해, #외국어못하는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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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탠포드대학교 쇼렌스틴 펠로우, 랜드연구소 스탠턴 펠로우를 거쳐 현재는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 재직중. 일본 및 미국,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ooseung.chang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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