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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에 갔는데 나만 빼놓고 모인 사람의 수만큼 자동차가 왔다. 4년째 자동차 없이 자전거로 살아가는 나를 보고 "와 정말?"하면서 다들 놀라워했다. 여성 한 분이 자기 집은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했다. 그녀는 수도도 없어서 계곡물을 먹는다고 했다. 다들 내게 쏠렸던 시선을 거두고 그녀만 바라봤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가능하냐는 사람, 어딘지 꼭 가 보고 싶다는 사람,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사람 등 부러운 눈치를 감추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다보니 우연찮게도 내 고향 함양 사는 사람이었다. 안의면 용추계곡 쪽이란다. 얼른 내가 안의 중학교를 나왔다고 하니까 반색을 했다. 당연히 그 다음 얘기는 한국사람 인사 나누는 자리의 공통분모인 안의 중학교 몇 회냐? 아무개 아느냐, 누구랑은 어떻게 되느냐는 얘기로 이어졌다.

1989년도인가 싶다. 우리 애가 서울 불광동의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다. 퇴원을 할 때 인천 집까지 택시를 불러야 하나 어쩌나 궁리하던 차에 한 후배가 "선배님, 내 차 가져갈까?" 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와 정말?"했다. 그는 우리 그룹에서 유일하게 자가용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이다). 30여년 간극을 두고 자가용 있고 없고의 신세가 역전되었다고 하겠다. 자가용 없는 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상전벽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몰라볼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방향에서 어떤 속도로 변해 왔는지를 깊은 시선으로 돌아보면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인다. 그런 내일을 두고 어떤 이는 부정하고 어떤 이는 대비한다.

흡연 유해성 논란이 티브이 토론장에까지 나와서 치열하게 갑론을박 할 때 흡연구역을 벗어나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고액의 벌금을 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승용차나 고속버스는 제조 단계에서부터 재떨이가 달려 있던 시절이었다.

몇 가지 상상이 가능하겠다. 아직도 어떤 이들은 북이니 남이니 하면서 헐뜯고 핏대를 세우지만 100년이 안 지나서 '남북시대'라 부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한국'과 '조선'이 양립하던 남·북 시대가 있었다고 회상하는 날이 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교과서에 실린 신라, 백제, 고구려를 우리가 아무 애증 없이 '삼국시대'라 부르듯이 말이다. 북은 자주성을 잃지 않았지만 남은 미국의 속국에 가까웠다고 떠올릴 것이다.

'미투 운동'이 진행되면서 여성혐오, 남성혐오라는 말이 횡행하지만 십수년만 지나도 지금의 결혼제도는 대폭 바뀌고, 젠더로서의 성에 대한 사회적 경계가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을 것이다. 남·녀 간의 결합 형태와 방식도 사회적 억압 장치들이 없어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족보나 비석에 부인과 딸아이 이름은 거론도 않는 폭력적이기조차 한 관습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매우 중요한 법원 판결이 하나 나왔다. "와 정말?" 싶었다. 이 보도를 보면서 나는 인류 문명과 농업 판도의 전환을 강제하는 서막으로 느꼈다. 지난 8월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학교에서 정원을 관리하는 노동자가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로 인해 암에 걸린 것이 인정된다며 몬산토에 무려 약 326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다. 제초제 제조를 아예 불법행위로 단죄한 것이다. 이 판결은 화학농업의 본토 미국에서 반 화학 문명, 반 화학의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징조로 봐도 될 것이다. 수십 년 전 역시 미국에서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선 담배회사에게 폐암환자 쪽에 배상하라는 판결의 판박이다.

정부에서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계획이 나왔다. 전형적인 화학·전자·기계 농업이다. 소득 주도 성장이냐 이윤 주도 성장이냐로 정치권이 뜨겁다. 둘 다 성장에 중독된 논리다. 이미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 단계에 와 있는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 세계적 흐름이다.

폭염을 불러 온 기후폭동시대를 겪으면서 유일한 대안은 화학·전자·성장·발전의 미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세먼지, 우울증, 집단폐사, 암, 멸종의 대부분은 여기서 왔다. 화학제품과 그 대명사인 제초제가 담배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용추계곡 여성의 말이 맴돈다. 스마트 폰도 잘 안 터지는 집에 있으면 온 우주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감각과 감성이 살아나고 신성이 회복되는 순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기후폭동,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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