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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크와 와인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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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 지금 연습실에 와있는데 이따 8시에 나올 수 있어? 오늘 '불금'인데 우리 오늘 술 한 잔 하자."
"좋지, 어디로 갈까? 그런데 전 서방은?"
"전 서방오늘 늦는데. 엄마 좋아하는 와인 바가 며칠 전에 새로 생겼는데 그리로 가자."
"그런데는 비싸잖아."
"아니야 엄마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비싸지 않아."


지난 금요일(일명 불금, 9월 28일) 딸아이와 생각지도 않은 심야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약속한 시간에 나갔다. 딸아이가 이끄는 대로 와인 바를 갔다. 불금이라 그런지 연인,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술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니. 그곳은 불황도 없어 보였다.

"여긴 나처럼 나이든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그런 핑계 김에 난 다른 곳으로 가서 간단히 맥주를 마실 심산이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엄마 저기 봐 봐.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들도 한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네" 한다. 딸아이가 가르치는 곳을 보니 정말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이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 틈새에서 차례를 기다리자니 괜스레 어색함이 느껴졌다. 잠시 후 우리 차례가 되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딸아이가 "엄마도 이런 곳에 와 봐야지. 지난번에 전 서방하고 왔었는데 전 서방도 어머니가 여기 오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라고 한번 모시고 오자고 했어. 요즘은 나이든 사람들도 이런데 잘 와"한다.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주문을 하면서 딸아이는 스테이크와 하우스와인을 주문한다. 스테이크는 내가 고기를 즐기지 않으니 와인하고 먹으면 좋다고 하면서. 하우스와인은 맛도 괜찮고 가성비도 좋다고 한다. 주문한 것이 나왔다.

그곳 종업원이 첫잔은 따라주는 친절함도 있었다.

"와인을 따라줄 때 잔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잔을 들지 마시고 잔 아래에 손만 갖다 되시면 돼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TV에서 봤지만 실전에선 소용이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어느새 딸아이도 결혼 생활이 17년차.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요즘 핫한 부동산 이야기, 우리 부부 이야기, 딸아이 부부 이야기, 아들 부부 이야기, 손자들 이야기.

그래도 대부분 잘 통하고 공감이 갔다. 가끔 어긋나는 의견차이도 있지만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딸아이가 "엄마는 집에서 마시자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다 알지만 집에서 마시는 것하고 분위기가 완전 다르지. 엄마 가끔 이렇게 나와서 즐기자고요"한다. 가끔은 언니처럼 가끔은 친구처럼 살가운 딸이다.

딸아이가 하는 말에 나도 많은 부분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문화를 난 딸아이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런 것들이 생활에 적잖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딸이 옆에 가까이 산다는 것이 감사한 마음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니 무언가 큰일을 한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다. 조금은 젊어진 느낌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딸아이의 손이 이젠 내 손보다 훨씬 커있었다. 든든한 마음이다. 딸아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엄마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내 옆에서 살아야 해" 한다. "그래야지" 하는데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덧붙이는 글 | ..


태그:#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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