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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앞으로 열 차례에 걸쳐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 기자말

세계 신석기인이 새긴 구름과 비와 곡식 무늬

아래 〈사진14-16〉 노란 동그라미 속 삼각형 빗금무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 신석기인들이 비를 머금고 있는 '구름'을 새길 때 쓴 기본 도상이고, 〈사진17〉 하얀 동그라미 속 빗금무늬는 '빗줄기'를 표현한 것이다. 〈사진14, 15, 17〉의 빗줄기를 보면 엇갈리거나 지그재그 형식으로 그렸는데, 그 까닭은 비가 '비바람' 속에서 내리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달리 〈사진16〉의 빗줄기(하얀 동그라미 속)는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고 있다. 이 빗줄기 무늬에는 '바람'이 없다. 대신 빗줄기 양쪽으로 점을 찍어 그 비를 맞고 싹이 틀 '곡식'을 표현했다. 이 곡식 무늬가 있는 그릇을 기준으로 농사의 시작 시점을 잡을 수도 있다.
 
〈사진14〉 2001년 아프리카 누비아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 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600-3100년. 〈사진15〉 벨 비커(Bell Beaker), 높이 11cm, 스페인 발렌시아 선사시대박물관. 〈사진16〉 러시아 신석기 얌나야(Yamnaya) 빗살무늬토기. 〈사진17〉 남아메리카 페루 신석기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000년.
 〈사진14〉 2001년 아프리카 누비아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 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600-3100년. 〈사진15〉 벨 비커(Bell Beaker), 높이 11cm, 스페인 발렌시아 선사시대박물관. 〈사진16〉 러시아 신석기 얌나야(Yamnaya) 빗살무늬토기. 〈사진17〉 남아메리카 페루 신석기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000년.
ⓒ 발렌시아 선사시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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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금은 낱낱이 하나씩 새겼다

'빗살무늬토기' 명칭과 관련해서 이것부터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역사책에서 '빗살무늬토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상당수가, '이 그릇은 빗(또는 빗살) 같은 무늬새기개로 찍거나 그어서 무늬를 새겼다'고 말하고 있다. 아래 〈사진18〉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설명글도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은 맞는 말일까.

2018년 9월 23일을 기준으로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올라온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는 1669장이다. 지역별로 보면 인천광역시 533장, 서울특별시 480장, 경기도 203장, 부산광역시 184장, 강원도 36장, 전라남도 9장, 충청남도 8장, 울산광역시 8장, 전라북도 5장, 충청북도 5장이다.

사진 한 장에는 그릇 한 점, 토기 조각 한 점만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토기 조각이 100점도 넘게 앉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을 모두 살펴봤는데, 빗 같은 무늬새기개로 그어서 새긴 것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아래 보기로 든 〈사진19-20〉 그릇 무늬만 봐도 이는 곧 확인할 수 있다.
 
〈사진18〉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안 빗살무늬토기 설명글. 〈사진19-20〉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사진21〉 문방구에서 진흙을 사 와 직접 빚어봤다.
 〈사진18〉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안 빗살무늬토기 설명글. 〈사진19-20〉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사진21〉 문방구에서 진흙을 사 와 직접 빚어봤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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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릇 조각을 깨뜨려 그 깨뜨린 면에 생긴 이로 새긴 것은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30점도 되지 않았다. 〈사진20〉 동그라미 속 빗줄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무늬가 나오지 않고 또 빗금 무늬가 깊지 않아 더 이상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점점이 찍은 무늬 또한 낱낱이 하나씩 찍었다

'빗 같은 무늬 새기개로 찍는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점점이 찍은 무늬를 '빗 같은' 것으로 찍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찍은 것 또한 한 점도 없었다. 〈사진20〉의 위쪽 '하늘 속 물'을 표현한 짧은 빗금을 하나씩 새겼듯이 점점이 찍은 무늬 또한 낱낱이 찍었다(〈사진19〉 참조). 이것은 직접 진흙으로 세모형 토기를 빚어 무늬를 새겨 보면 알 수 있다(〈사진21〉 참조).

빗처럼 살이 달린 무늬새기개로 새기려면 그릇을 빚어 조금만 말린 다음 바로 새겨야 한다. 너무 마르면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적당히 말려도 생각처럼 무늬가 나오지 않고 자꾸 흙이 묻어 올라오고, 어쩌다 흙속에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만 있어도 흙이 파이고 만다. 그래서 '빗' 같은 무늬새기개로 새긴 것이 아니라 나무나 뼈끝을 갈거나, 돌이나 그릇 조각을 깨뜨려 끝을 날카롭게 하거나, 조개껍데기 같은 새기개를 썼을 것이다.
 
〈사진22〉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25.9cm. 〈사진23〉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20.8cm. 〈사진2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0》 빗살무늬 그림. 〈사진25〉 삼각형 비구름. 서울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26〉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굽 무늬
 〈사진22〉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25.9cm. 〈사진23〉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20.8cm. 〈사진2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0》 빗살무늬 그림. 〈사진25〉 삼각형 비구름. 서울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26〉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굽 무늬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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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는 크게 다섯 가지

〈사진24〉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0> '빗살무늬토기' 편에 나와 있는 무늬 이름이다. 우리나라 역사 관련 책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다룰 때 보통 이 무늬 이름을 쓴다. 보면 알 수 있듯이 무늬 모양만 말해 줄 뿐 그 무늬가 '무엇을' 새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들은 그릇 아가리 쪽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하늘 속 물(水)'을 새겼고, 그 다음 '하늘 속 물'과 '구름'을 '하늘(맨 눈으로 봤을 때 파란 하늘)'로 경계를 지었다. 그런 다음 그 아래에 비를 품고 있는 반타원형 또는 삼각형(〈사진22, 25〉 참조) '비구름'을 새겼다. 〈사진22〉의 '삼각형 구름'을, 빗줄기를 양쪽으로 내리 뻗치면서 새기다 보니 저절로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강원도 양양 지경리·오산리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삼각형 구름'을 보면 암사동 신석기 장인이 처음부터 이렇게 삼각형 구름을 새기려 마음먹고 한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한국미술의 자연스러움, 없는 듯한데 찬찬히 보면 그 자리에 태연히 앉아 있는, 그러한 천연덕스러움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사진25〉의 삼각형 구름 속 점은 수분(水)을 뜻한다. 이제 곧 비를 뿌릴 비구름인 것이다. ('삼각형 구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세계 신석기인이 새긴 구름(삼각형·반타원형)과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구름을 낱낱이 견주어 가며 자세히 밝히겠다) 그리고 구름 아래로는 양쪽으로 비스듬히 내리는 비(〈사진22〉) 또는 지그재그로 내리는 비(〈사진23〉)를 새기고 그 물이 깊은 심원(深遠, <열자(列子)> <탕문(湯問)> 편에서는 그곳을 '바닥이 없는 골짜기'라 하여 '귀허(歸墟)'라 한다)의 세계로 흘러가는 것을 밑굽에 표현했다(〈사진26〉 참조).
 
〈사진27-28〉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밑굽 무늬, 서울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29〉 스페인 신석기 그릇 밑바닥 무늬, 높이 9.2cm, 기원전 2200-1500년, 스페인 고고학박물관. 세 그릇 모두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속 심원의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표현했다. '초기' 신석기인들은 비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데도 땅이 물에 잠기지 않는 것이 신기했고, 또 두려웠다. 비가 흘러들어가는 곳, 그들에게 그곳은 심원의 세계였고 ‘공포’였을 것이다. 〈사진28〉에서 초록선 위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그 아래는 땅속이다.
 〈사진27-28〉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밑굽 무늬, 서울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29〉 스페인 신석기 그릇 밑바닥 무늬, 높이 9.2cm, 기원전 2200-1500년, 스페인 고고학박물관. 세 그릇 모두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속 심원의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표현했다. "초기" 신석기인들은 비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데도 땅이 물에 잠기지 않는 것이 신기했고, 또 두려웠다. 비가 흘러들어가는 곳, 그들에게 그곳은 심원의 세계였고 ‘공포’였을 것이다. 〈사진28〉에서 초록선 위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그 아래는 땅속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스페인 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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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굽 무늬와 한반도 신석기인의 세계관

〈사진22〉는 빗살무늬토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릇이다. 〈사진22〉와 〈사진23〉은 둘 다 서울 암사동에서 나온 것인데 〈사진22〉가 더 먼저 빚은 그릇일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이 살아가는 땅과 그 아래 공간(땅속)을 뚜렷하게 경계 지었기 때문이다.

〈사진26〉이 바로 〈사진22〉 같은 토기의 아래 굽이다. 무늬를 새기기 힘든 곳인데도 아주 세심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사진23〉은 굽 부분 무늬를 새기지 않고 빗줄기가 아래 밑굽까지 쭉 내려온다. 이것은 아래 밑굽 무늬에 대한 생각이 그들의 세계관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선사 시대 그릇 무늬와 관련하여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먼저 밑굽 무늬가 없어지고, 그 다음 몸통, 마지막 아가리 무늬가 없어지면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민무늬토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문제는 왜 그들이 밑굽에서부터 아가리까지 점점 더 무늬를 새기지 않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앞으로 빗살무늬를 낱낱이 해석하면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올라온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474장에서 밑굽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릇과 토기 조각은 274점이다. 이 가운데 밑굽 무늬를 새긴 그릇은 238점이고 새기지 않은 그릇은 36점이다. 인천시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533장에서 밑굽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릇은 22점인데, 이 가운데 2점만 무늬를 새겼다. 경기도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203장에서 밑굽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릇이나 조각은 26점이고, 이 가운데 6점만 무늬를 새겼다.

부산 동삼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는 179장인데, 이 가운데 밑굽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릇이나 조각은 없었다. 부산 동삼동, 경기도, 인천 빗살무늬토기에서 밑굽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릇이나 조각은 그 수가 많지 않고, 또 있다 하더라도 무늬를 새기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은 밑굽 무늬에 대한 세계관이 그들의 삶과 사고에서 해결이 되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그러한 세계관이 없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를 크게 다섯 가지(하늘 속 물(水)과 통로(天門), 경계(파란 하늘), 반타원형·삼각형 구름, 빗줄기, 땅속으로 흘러가는 비(雨))로 나누고 간략하게 소개했다. 이것은 다음 글부터 세계 문양학자들의 의견과 세계 신석기 그릇 예술사 속에서 하나하나 근거를 들어가며 자세히 밝혀 나갈 것이다. 

*다음 글의 주제는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水)과 파란 하늘'입니다.

*연재 첫번째 글 : 빗살무늬토기, 과연 기하학적 추상무늬일까

덧붙이는 글 | 전공은 문학이지만 어느 순간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07년 문화체육부는 한국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발표했다. 그 해 나는 그것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정리해 <우리 민족문화 상징 100>(한솔수북) 1-2권을 썼다. 그 뒤 <문화유산으로 보는 역사 한마당>(웅진) 1-3권을 쓰고, 최근에는 <한국유산답사-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발자취>(사계절), <조선왕조실록-목숨을 걸고 기록한 사실>(사계절), <삼국유사-역사가 된 기이한 이야기>(사계절)를 냈다. 한국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할 때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일은 늘 즐겁다.


태그:#빗살무늬토기, #삼각형 구름, #타원형 구름, #빗살무늬토기의 비밀,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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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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