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 '화려했던 선수생활 마감' LG 트윈스의 베테랑 좌완투수 봉중근이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KIA 타이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열리는 은퇴식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봉중근 '화려했던 선수생활 마감' LG 트윈스의 베테랑 좌완투수 봉중근이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KIA 타이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열리는 은퇴식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KIA가 전날의 패배를 설욕하며 LG와의 마지막 2연전을 1승1패로 끝냈다.

김기태 감독이 이끄는 KIA 타이거즈는 2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LG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홈런 1방을 포함해 8안타를 때리며 6-2로 승리했다. LG와의 올 시즌 상대전적을 10승6패로 마감한 KIA는 턱밑까지 추격했던 LG와의 승차를 다시 2경기로 벌리며 5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64승67패).

KBO리그 통산 최다만루홈런 기록 보유자 이범호는 8회 LG 마무리 정찬헌으로부터 만루홈런(통산17호)을 터트렸고 7회에 등판해 4타자를 완벽하게 틀어 막은 임기준은 시즌 5승째를 챙겼다. 반면에 LG는 외국인 투수 타일러 윌슨을 당겨 쓰는 강수를 두고도 뼈 아픈 패배를 당했다. LG에게 이날 패배가 더욱 아쉬운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이날 은퇴식을 치른 봉중근에게 승리를 선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 투수로 암흑기 지탱하다 마무리 변신 2년 만에 가을야구 견인

지난 2006년 고교야구 서울지역에는 유난히 우완 강속구 유망주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 대표였던 서울고의 임태훈(은퇴)과 장충고의 이용찬이 양대산맥으로 통했고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자유자재로 던지는 중앙고의 이원재와 경기고의 김강률(이상 두산 베어스)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LG는 이들을 눈 여겨 볼 틈이 없었다. 빅리그 출신의 특급 좌완 봉중근을 영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봉중근을 1차지명으로 선택한 LG는 봉중근에게 10억 원의 계약금을 안겼지만 2007년 6승7패 평균자책점5.32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봉중근은 2008년 크리스 옥스프링과 함께 LG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1승8패2.66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그 해 LG는 8개구단 중 최하위에 머물렀는데 만약 봉중근이 강 팀 소속이었다면 15승 정도는 충분했을 거라는 게 당시의 중론이었다.

이미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했지만 봉중근이 본격적으로 '전국구스타'에 등극한 대회는 2009년 제2회 WBC였다. 봉중근은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4경기에서 2승0.51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견제동작만으로 일본의 슈퍼스타 이치로 스즈키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봉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봉중근은 2010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리며 LG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당시 LG는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시기였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537이닝을 던지며 팀을 위해 헌신한 봉중근은 결국 팔꿈치에 탈이 났고 2011년 5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수술과 재활 탓에 시즌을 일찍 마감한 봉중근은 '신연봉제'의 희생양이 되며 3억8000만원이었던 연봉이 1억5000만원으로 대폭 삭감되기도 했다.

하지만 봉중근은 2012년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선발이 아닌 마무리를 맡은 봉중근은 2012년 1패26세이브1.18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변신을 알렸고 2013년에는 8승1패38세이브1.33으로 손승락(롯데 자이언츠,46개))에 이어 세이브부문 2위에 올랐다. 봉중근이 2013년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두산을 상대로 1.2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거두며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한 순간은 봉중근이 LG 유니폼을 입고 경험했던 최고의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30대 후반에 찾아온 치명적인 어깨부상, 부상재발하며 은퇴 결심

봉중근은 2014년에도 2승4패30세이브2.90의 뛰어난 성적으로 LG를 2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3년 연속 25개 이상의 세이브 기록은 LG 구단 역사에서 오직 '노송' 김용수(1993~95년)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었다. 봉중근은 김용수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4년 연속 25개 이상의 세이브에 도전한 2015년, 시즌 개막 후 10번의 등판에서 2패3세이브 평균자책점17.47로 끔찍한 추락을 경험했다.

6월부터 안정을 찾은 봉중근은 8월까지 15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이미 LG는 순위싸움에서 밀려난 상황이었고 봉중근은 시즌 후반 선발 투수로 변신했다. 봉중근은 FA를 앞둔 2016년 "리그 최고의 5선발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시즌을 맞았지만 단 하나의 선발승도 올리지 못한 채 1승2홀드 4.95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럼에도 LG는 팀의 암흑기를 지탱해준 선발투수이자 암흑기를 끝낸 마무리 봉중근에게 2년 15억 원의 FA계약을 안겼다.

2017 시즌이 개막한 후에도 등판 소식이 없어 팬들을 의아하게 했던 봉중근은 작년 6월 어깨 수술을 받으며 1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시즌을 접었다. 어깨 부상은 젊은 투수들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3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노장 봉중근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봉중근은 1년 넘게 재활과 통증재발의 과정을 반복하다가 지난 19일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12년 동안 LG에서만 활약한 봉중근은 통산 321경기에 등판해 55승46패109세이브2홀드3.41의 성적을 남겼다. 사실 LG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3년과 LG의 긴 암흑기를 끊어낸 마무리 투수였던 3년을 제외하면 이름값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 활약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서보지 못했고 12년 동안 가을야구를 경험한 것도 세 차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봉중근은 LG팬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 투수다. 어린 시절부터 '야생마' 이상훈을 동경했고 LG입단 후에는 쟁쟁한 투수들에 맞서 LG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마무리 변신 후에는 LG를 가을야구로 이끌며 팬들이 옷장에서 유광점퍼를 꺼내게 만들었다. 은퇴하는 날에도 여전히 LG에서 큰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하는 봉중근. LG팬들은 김용수와 이상훈으로 이어진 쌍둥이 군단의 '에이스 계보'에 봉중근의 이름을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LG 트윈스 봉중근 은퇴식 봉의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