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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러운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2018년 추석 연휴가 지났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3년 추석연휴에 나는 밀양에서 캠핑을 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밀양 표충사 국민야영장에서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며 '제발 검사 결과가 암이 아니기를' 빌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보름달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암 환자'가 됐다. 몇 번의 검사 끝에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부터, 모든 치료과정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내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들일 겨를도 없이 나는 살기 위해 암과 전쟁을 해야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된 내 투병생활은 순식간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국가에서 지정한 '중증환자'가 됐다. 수술하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으며 독방에 갇혀 새해를 맞이해야만 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세월 속에 묻혀 아련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추석 연휴 다음날인 27일, 아침 일찍부터 병원 진료가 예약돼 있었다. 지난 1월에 마지막 초음파 검사를 받고 9개월 만이다. 10/4일이면 내가 암 선고를 받고 '중증환자'로 등록된 지 만5년이 된다. 그 전에 마지막 혈액 검사를 통해 암의 재발 여부를 확인했다.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채혈을 한다. 팔에는 하도 바늘을 찔러대서 다음번에 다시 구 구멍에 바늘을 꽂으면 될 정도다. 채혈은 흔히 하는 행위인데도 나는 그 주삿바늘이 적응 안 된다. 게다가 올해는 치핵과 치루 수술을 2차례나 더 하면서 2달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일 같이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기에 더욱 주삿바늘이 싫었다.

9개월 만에 왔는데도 병원은 이제 내 집 안방같이 익숙하다. 몇 달 만에 병원에 오면 가끔 병원 구조가 바뀌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오전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 진료가 예약돼 있었는데 저녁형 인간으로 살다가 아침 일찍부터 병원 가려고 일어났더니 늦잠을 자는 바람에 9시가 조금 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본관 3층에 있는 채혈실로 향한다. 역시나 채혈실에는 사람들이 엄청 붐빈다. 모든 과에서 다 이용하는 채혈실이다 보니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채혈실은 거쳐 가는 곳이다. 채혈실에는 종일 앉아서 채혈만 하는 분들이 5명이 넘고 거의 30초에 1명꼴로 채혈이 되는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은 끝이 없었다. '참 세상에 아픈 사람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혈을 하고 별관 5층에 있는 <갑상선·유방암센터>로 갔다. 9개월 전에 받은 예약 접수증을 간호사분께 보여드리고 순서를 기다렸다. 채혈 후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는 1시간 30분가량 걸리기 때문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병원 올 때마다 들르는 병원 앞 커피전문점에 갔다.

오랜만에 아침형 인간으로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배가 고팠다. 달달한 커피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니 기가 막히게도 바로 내 이름이 불렸다. 정말 10초에 오차도 없이 정확한 타이밍으로 병원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는 병원 진료 순서 기다리는 것도 '도'가 텄다.

9개월 만에 나를 집도 해준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항상 나를 볼 때마다 '얼굴 좋아졌다' ,'피부 좋아졌다' 와 같은 덕담을 해주신다. 역시나 이번에 만났을 때도 잊지 않고 덕담을 해주시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이내 교수님의 PC 모니터에는 내 진료기록과 함께 혈액 검사 결과표가 띄워졌다.

"약을  아주 잘 드시나봐요? 재발 수치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재발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항목의 수치는 여전히 제로가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 그 외에 평상시 컨디션을 위해 조절하는 갑성선 호르몬 수치 또한 정상범위 내로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년이 지나면 암 재발의 위험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중증환자'가 5년 동안 유지된다. 물론 5년이 지나서 재발하는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 그 위험성이 5년 이내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뻤다. 드디어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빛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1년치 약을 받아가고 2년에 한 번씩만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재발 여부를 관리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꼭 집에서 먼 이 대학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되니 필요하면 집 가까운 병원을 가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여기서 관리를 받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료실을 나오며 교수님께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나는 갑상샘 유두암의 크기도 3cm로 큰 편이었고 림프절로 전이도 된 상태였는데 수술도 한 번에,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한 번에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여러 번 수술하고 여러 번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는 분들과 비교하면 정말 행운아다.

완치하고 나니 병원비가 50배 넘게 뛰었다
 
내년부터는 병원에 오면 검사비를 선납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 진료 안내 내년부터는 병원에 오면 검사비를 선납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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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받고 병원비를 계산하려고 자동화기기 앞에 서서 환자코드를 입력했다. 평소 같으면 진료 내역이 뜨고 카드 결제하면 처방전과 영수증이 출력되는데 오늘은 오류가 뜨면서 유인 수납처에서 진료비를 계산해야 했다. 수납을 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았는데 앞에 대기자가 40명이 넘었다. 한참을 기다려 수납을 하기 위해 수납하시는 분과 대화를 했는데 '중증환자' 혜택이 종료되기 때문에 안내차 유인 수납 창구에서 수납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 진료에서 내가 지불한 금액은 혈액 검사비까지 모두 포함해서 1100원이다. 하지만 이제 중증환자 혜택이 끝나고 다음번 진료에서는 혈액 검사하는 비용이 5만 원이 넘게 청구된다고 했다. 대학병원의 검사비와 진료비는 엄청 비싼데 나는 지금까지 '중증환자' 혜택을 받아 공짜 수준의 비용으로 병원에 다녔다.

5년이 지나 완치가 돼서 좋긴 한데 늘어난 병원비는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나는 이제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데 특례 혜택이 끝나 늘어난 병원비는 계속해서 지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완치돼서 기분은 좋았지만 또 하나의 작은 걱정이 생기긴 했다.

병원 앞 약국에서 2100원에 1년치 약을 받았다. 이제 다음부터는 이 약값도 얼마나 오를지 모른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병원으로 '약 쇼핑' 온 듯이 한 손엔 약이 가득 담긴 비닐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지난 5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갑상샘암과 이별했다. 그리고 이제 중증환자가 아닌 일반인이 됐다.

그동안 내 인생은 참으로 다이나믹하게 바뀌었다. 직업도 바뀌었고 인생의 가치관도 달라졌으며 행복의 기준 또한 달라졌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됐고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생겼다. 이 모든 것이 어느날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암이라는 녀석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나를 엄청 괴롭히고 힘들게 했지만 진정한 나를 찾게 해준 동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제 나는 더 재미나게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또 힘차게 발걸음을 내 딛어본다.

태그:#투병일기, #갑상샘암, #갑상선암, #대학병원,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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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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