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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작품선> 책표지.
 <강경애 작품선> 책표지.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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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의 <소금>은 지금과 같은 염전 시설이 없던 근대 이전에는 매우 비쌌다는 소금, 그럼에도 꼭 필요한 소금,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조세수단이기도 했다는 '소금'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을 떠나 간도 등을 떠돌며 살았던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봉염이네는 빚에 쫓겨 몇 년 전 간도로 이주했다. 봉염이네와 같은 조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어떤 노력으로도 벗어나기 힘든 가난과, 수시로 나타나 총으로 위협하며 식량이나 돈 등을 빼앗아가는 보위단(중국 군인)을 비롯한 마적단이나 공산당 같은 패거리들, 그리고 조선인들의 고혈로 부를 축적하는 중국인 지주들이었다. 

소금도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괴롭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고향에서는 비교적 값싸고 풍부했던 소금이 간도에서는 무척 귀하고 비쌌다. 그렇다 보니 쉽게 사지 못했다. 소금을 사지 못해 장을 담그지 못할 때도 많다 보니 간을 맞출 수 없었고, 맛이 없어 억지로 넘겨야만 했다. 그래서 원망스러운 소금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하나의 메줏덩이를 들어 보며, '간장이나 서너 동이 빼고 고추장이나 한 단지 담그고….'하며 무의식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또다시 고향을 그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향서는 소금으로 이를 다 닦았건만…달이는 데도 소금 한 줌이면 후련하게 내려갔는데'하였다. (중략)어쨌든 이곳에 온 후부터 그는 소금 때문에 남몰래 운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금 한 말에 이원 이십 전! 농가에서는 단번에 한말을 사보지 못한다. 그러니 한 근 두 근 극상 많이 산대야 사오 근에 지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장 같은 것도 단번에 담그지를 못하고 소금 생기는 대로 담그다가도 어떤 때는 메주만 썩여서 장이라고 먹곤 하였다. 장이 싱거우니 온갖 찬이 싱거웠다. 끼니때가 되면 그는 남편의 얼굴부터 살피게 되고 어쩐지 맘이 송구하였다. 남편은 입 밖에 말은 내지 않으나 번번이 얼굴을 찡그리고 밥술이 차츰 느려지다가 맥없이 술을 놓곤 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15쪽) 
 
주인공 봉염 어머니는 다 된 메주를 떼어놓고 심란하다. 장을 담그는 데 꼭 필요하지만 구할 길 없는 소금이라서다. 다른 것들은 이미 오래 전 포기하거나 길들여졌건만 몸이 알고 있는 '음식의 간'은 어쩔 수 없는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고춧가루를 잔뜩 풀어 매운 맛으로 넘기곤 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더욱 심란하기만 했다.

그런데 하필 소금 때문에 신세 한탄을 하는 한편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메는 그 무렵 남편이 허망하게 죽고 만다. 조선인들을 소작농으로 부리는 중국인 지주 팡둥의 일을 봐주고 있었기 때문에 마적단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의 장례 후 행방이 묘연한 아들 봉식을 찾다 지친 봉염 어머니는 어린 딸 봉염을 데리고 팡둥을 찾아간다. 자신 때문에 남편이 죽었는데도 보상은커녕 한마디 위로조차 없는 그런 팡둥을 말이다. 그로 인해 봉염 어머니는 결국 팡둥과의 사이에서 얻고 마는 '혹'과 봉염이마저 죽게 만들고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목숨까지 위험한 소금 밀수에 나서게 된다.

남편을 죽게 한 팡둥에게라도 삶을 의지해야만 할 정도로 처참하게 가난한 삶, 자식을 살리고자 선택한 것으로 도리어 그 자식을 죽이게 되는 아이러니하며 불행한 현실.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들의 처지이기도 했을 봉염이네의 이와 같은 불행은 왜, 무엇 때문일까. 

봉염이네와 같은 간도의 조선인들에게 소금은 떠나온 고향 혹은 빼앗긴 조국과 같은 존재다. <소금>은 존재 자체는 물론 가치조차 생각한 적 없지만 부지불식간에 잃고 보니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가지지 못해 '음식의 맛'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그런 소금을 통해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식민지 백성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말하는 소설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여성작가 '강경애'를 아십니까

강경애(1906~1944년)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그리 많지 않은 여성 작가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지만 운 좋게 공부할 수 있었던 강경애는 '숭의여학교를 다니던 중 동맹휴학(주:1920년대, 3.1운동 후의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에 대항한 학생운동)에 가담하는 것으로 퇴학처분을 받기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야학교를 개설해 학생과 농민을 지도, 신간회와 여성조직인 근우회 활동에도 가담(프로필에서)'하는 등, 학생 때부터 이미 선 굵은 삶을 살아간다.

이와 같은 강경애가 아마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 그것도 여성의 인권은커녕 남자를 위한 부속물 혹은 희생을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태어난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나라를 잃은 식민지 백성이라는 것, 가난하고 핍박받는 대부분의 민중들 그 중 한사람이라는 것, 그럼에도 자신의 어떤 노력으로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을 것 같다.  

이 책 <강경애 작품선>(에세이 펴냄)에는 <소금>과, <어머니와 딸>,<지하촌>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강경애를 대표하는 <인간문제>나 <파금>, <원고료 이백 원> 등 강경애의 모든 작품들은 이와 같은 현실들을 다루고 있다.

가난하거나, 나라를 잃고 떠도는 식민지 백성이거나, 봉염이 어머니처럼 굽이굽이 고난을 겪는 어머니 또는 착취당하는 여성, 소외받는 사회 약자, 가난한 노동자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불행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사람들의 불행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삶 말이다.

게다가 <소금>을 통해 이미 느꼈겠지만 강경애의 모든 작품들은 문제의식이 강하다. 두 번째로 수록된 <어머니와 딸>에서는 가족의 생계 때문에 딸을 팔아야만 하는 어머니와 그렇게 팔려간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는 딸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남성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여성을 통해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여성 해방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 수록 작품인 <지하촌>으로는 동냥질로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칠성이의 비극을 통해 소외받는 사회 약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수록하지 않았지만 강경애 대표 작품으로 반드시 꼽히는 <인간문제>는 인천에서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나갔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쓴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현실을 이야기하는 장편소설이다.

그래서 강경애에게는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라는 수식어 외에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 운동가',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 '간도문학 대표작가', '노동운동가', '사회운동가'라는 수식어들이 붙는다. 
 
<소금>마지막 장을 찍은 것이다. 강경애 작품들은 이처럼 원문 일부분이 탈락되거나 수정되었다고 한다. 문제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소금>마지막 장을 찍은 것이다. 강경애 작품들은 이처럼 원문 일부분이 탈락되거나 수정되었다고 한다. 문제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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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민중의 고된 삶은 형태만 바뀐 채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를 넘어 집, 인간관계 등도 포기하는 'N포 세대'까지...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강경애의 통찰은 빛이 바래지 않는다'(출판사 책 설명 중에서)
 
이 책을 설명하는, 아마도 강경애의 소설 하나만이라도 읽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동감할 글 일부다. 강경애가 소설을 통해 주로 이야기한 여성의 인권, 노동문제, 사회약자나 소외계층, 가난한 사람들에게 산재한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이하 원문 탈락'으로 끝맺음 된다. 일본의 검열과, 남편의 참견으로 원문이 수정되거나, 삭제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경애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은 1930년대. 그 무렵 우리 문단은 남자 문인들이, 그리고 중앙의 문인들이 주도했다. 변방의 여성작가인 강경애의 작품 활동이 얼마나 힘들고 치열했을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어려움 속에 강경애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몇 안 되는 여성작가 중 한사람인 강경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강경애 작품선

강경애 지음, 에세이퍼블리싱(2016)


태그:#강경애(작가), #한국근대소설, #간도문학, #페미니즘, #원고료 이백원(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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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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