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청춘스포츠 윤지영 기자]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야구를 오래 본 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1998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고 있던 김응용 현 KBSA 회장의 유행어다. 투타의 핵심이었던 선동열과 이종범이 차례로 이탈한 팀의 상황을 한 마디로 나타낸 말로, 이후 중요한 사람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됐다.
 
 여자축구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민아

여자축구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민아 ⓒ 대한축구협회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현재, 한국여자축구가 그때의 해태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여자축구 국가대표팀과 WK리그를 대표하던 두 미드필더, 이민아와 조소현이 2018시즌 개막을 앞두고 나란히 해외로 진출한 것이다.

'비너스' 이민아는 여섯 시즌 동안 몸담았던 인천현대제철을 떠나 일본 나데시코리그의 고베 아이낙으로 이적했다. 고베는 과거 지소연과 조소현 등 많은 한국 선수들이 거쳐갔을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팀이다.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캡틴' 조소현은 유럽으로 향했다. 노르웨이 토프레시엔의 아발스네스 IL 유니폼을 입으며 노르웨이에 진출한 첫 한국인 선수가 됐다. 조소현은 이적과 동시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일정까지 소화하고 있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들을 직관을 통해 만날 수 없게 된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이별이기도 하다. 특히 이민아와 조소현은 여자축구에서 지소연 다음 가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선수들이다. 두 흥행 카드의 공백은 WK리그 입장에서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빈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기회다. 국가대표팀과 WK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차기 스타플레이어 자리를 예약한 젊은 선수들이 있다.

① 최유리(MF, 구미스포츠토토)
 
 구미스포츠토토 최유리

구미스포츠토토 최유리 ⓒ 한국여자축구연맹

  
국가대표팀과 구미스포츠토토의 돌격대장 최유리는 경기장 안과 밖에서의 모습이 180도 다른 선수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통통 튀는 감각과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는 귀요미 그 자체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두 눈은 볼을 쫓고 두 다리는 상대 선수를 놓치지 않는 싸움닭으로 변신한다.

최유리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 적극적인 수비 가담 능력, 그리고 화려한 발재간이다. 풀백 위치까지 내려와 협력수비를 통해 볼을 뺏어낸 뒤 곧장 역습으로 전환하는 속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천대교 출신 김상은과 함께 소속팀 구미의 좌우 날개로 활약하고 있다.

공격 상황에서 주로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측면에서 상대 수비수와의 일대일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주로 사용하는 스텝오버 개인기를 애용하며, 90분 내내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러한 최유리의 플레이스타일은 최전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유영아, 날카로운 왼발을 가진 플레이메이커 박지영, 그리고 피니셔 김상은 등 동료 선수들과 함께 뛸 때 더욱 빛난다.

전가을이 어느덧 서른을 넘기고 강유미가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차세대 날개를 책임질 주인공은 최유리가 매우 유력하다.

② 이금민(FW, 경주한수원)
 
 경주한수원 이금민

경주한수원 이금민 ⓒ 한국여자축구연맹

  
클럽팀과 대표팀을 막론하고 무게감 있는 최전방 공격수를 찾는 일은 모든 축구팀이 당면한 과제다. 여자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팀 사정상 공격수를 보던 지소연은 이제 자신의 본래 자리인 미드필더로 완전히 정착했고, 지소연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던 여민지는 거듭된 부상과 불운으로 태극마크에서 멀어졌다. 한동안 최전방을 책임졌던 정설빈은 소속팀 동료 비야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에 앉는 신세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금민이 한 줄기 빛처럼 등장했다. 여민지, 장슬기, 이소담 등 동료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 우승을 이끈 이금민은 2015년 WK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서울시청에 지명되며 성인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금민은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을 통해 끊임없이 상대 수비수를 괴롭히고 뒷공간을 파고드는 선수다. 이를 바탕으로 측면에 배치되었을 때는 풀백을 도와 수비에도 성실하게 가담한다.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1개 이상의 태클을 기록하고 있다.

'압박'이 현대축구의 키워드로 대두되면서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 능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골 결정력만 조금 보완한다면 대한민국을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스트라이커가 될 재목임에 틀림없다.

③ 장슬기(DF, 인천현대제철)
 
 인천현대제철 장슬기

인천현대제철 장슬기 ⓒ 한국여자축구연맹

  
장슬기는 오늘 소개한 이들 가운데 차기 스타플레이어에 가장 가까운 선수다. 이미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눈썰미 좋은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알렸다.

장슬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공격부터 수비까지 모든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멀티플레이어라는 점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최전방 공격수였고 17세 이하 대표팀에서는 풀백, 20세 이하 대표팀에서는 측면 공격수, 그리고 성인 무대에 올라와서는 미드필더까지 자유자재로 소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장슬기의 역할은 이러한 멀티 능력을 앞세운 살림꾼에 가까웠다. 경기 도중에도 포지션이 두세 번 바뀌고는 했다. 하지만 이민아의 이적으로 이제는 점차 살림꾼에서 에이스로 거듭나는 모양새다.

장슬기는 그야말로 완벽한 '육각형' 선수다. 체력과 수비력, 볼 간수 능력은 물론이고 패스 센스와 발재간까지 갖췄다. 중요한 경기마다 한 방씩 터뜨리는 해결사 본능도 탑재했다. 지난해 AFC 여자 아시안컵 예선 당시 지옥의 평양 원정에서 극적인 1-1 무승부를 이끈 동점골의 주인공 역시 장슬기였다.

대한민국 여자축구는 지소연과 이민아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스타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2015년,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은 캐나다에서 사상 첫 월드컵 16강이라는 역사를 썼다. 2019 FIFA 여자 월드컵까지 불과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예비 스타들이 써내려갈 새로운 페이지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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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6기 윤지영
여자축구 최유리 이금민 장슬기 W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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