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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한여름 땡볕에 현장의 고군분투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고군분투는 현장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글을 처음부터 읽으신 분들은 첫 번째 도면을 기억하실 게다(관련 기사: 인테리어 해본 사람은 안다,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어"). 

이 도면 이후로도, 이 도면 위에 수많은 선과 면이 그려지고 지워지기를 거듭했다. 수차례의 회의를 거듭해 기본적인 도면의 구상을 마무리했다.  

나의 말이 집으로 완성되다

하지만 도면이 그려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지을 때에 비해 세상은 진화했고, 각종 툴의 발달은 눈이 부시다. 나는 집이 지어지기 전에 이미 완성된 집의 모습을 보았다. 바로 3D 화면을 통해서였다.
 
 북서쪽 방향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그림의 왼쪽에 대문이 들어설 예정이다.
 북서쪽 방향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그림의 왼쪽에 대문이 들어설 예정이다.
ⓒ 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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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쪽 방향에서 바라본 집의 조감도다. 집 안쪽의 공간 배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동남쪽 방향에서 바라본 집의 조감도다. 집 안쪽의 공간 배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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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설계를 맡고 있는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은 집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부 공간의 배치까지 구석구석 3D화면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평면의 도면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간의 규모며 배치의 의도와 의미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오로지 말로만 전했던 공간에 대한 나의 기대와 요구, 희망이 그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숱한 대화를 나눴으나, 엄밀히 말해 그와 나는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내가 건네는 말을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해독했고,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낸 뒤 다시 내게 나의 방식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시각 자료는 각자의 요구와 해석이 제대로 반영되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매우 필요했다.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분합문을 달기로 했는데, 이 그림은 분합문이 닫힌 상태다.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분합문을 달기로 했는데, 이 그림은 분합문이 닫힌 상태다.
ⓒ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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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의 모습. 분합문이 열리면 이렇게 주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종 단계의 디자인은 아직 아니다.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의 모습. 분합문이 열리면 이렇게 주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종 단계의 디자인은 아직 아니다.
ⓒ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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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의 모습. 분합문이 열려 있는 건 같지만 바로 위 사진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역시 최종 디자인은 아니다.
 역시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의 모습. 분합문이 열려 있는 건 같지만 바로 위 사진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역시 최종 디자인은 아니다.
ⓒ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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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면이 그려지고, 3D 화면을 확인하는 과정을 본격화하면서, 매우 지난한 선택의 나날이 시작됐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각 방의 바닥은 무엇으로 할까. 일반적인 아파트 바닥에 주로 까는 마루가 손쉬울까? 마루만 깔아야 하나? 타일도 있고, 한지를 사용한 장판지도 있다. 

그럼 마루로? 온돌마루로 정했다고 하자. 이 세상에는 종류, 재질, 브랜드 등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마루가 있다. 그 많고도 많은 마루 중 딱 하나를 우리 집에 깔아야 한다. 그런데 집 전체 바닥을 모두 같은 종류로 깔아야 할까? 안방과 대청을 다르게 하면 어떨까? 요즘 타일로 바닥을 까는 게 좋아 보이던데 우리 집에 타일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그럼 타일은 또 어떤 거로? 역시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타일이 있다. 부엌의 싱크대 상판은 대리석으로 할 것인지, 타일로 할 것인지, 벽면은 페인트로 칠할 건지, 타일을 붙일 건지... 선택해야 할 것은 끝도 없었다. 눈만 뜨면 뭔가를 결정해야 했다. 화장실의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할 건지 막을 건지, 안방 천장 역시 서까래를 노출할 건지 막을 건지, 다락의 위치를 어떻게 할 건지, 대청과 안방, 주방 등과의 바닥 단차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사실 목구조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지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난방과 단열은 제대로 되었는지 아무리 황 목수님이 현장에서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셔도 나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어련히 잘 알아서 해주셨으려니 생각하고 반쯤은 흘려듣고 만다. 믿지 못할 시공자를 만났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됐다. 나는 밤낮으로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좋아 보이는 것, 멋져 보이는 것을 골랐다. 이 세상에 얼마나 멋진 집이 많은지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멋진 것은 비쌌다. 욕심을 다 부리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돈이 못 해주는 일을 감각과 취향이 해주길 원했다. 누구의 감각? 누구의 취향? 바로 엄 소장의 감각과 취향이었다. 

애초 그와 계약을 한 것도 바로 그 취향의 동일함에 대한 기대이자 근거 없는 신뢰였다. 나도 나를 모르지만, 어쩐지 비슷한 취향일 거라는 느낌적 느낌. 집 한 채를 짓지만 누구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단 한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물론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바라고, 바라고, 바랐다

우선, 대청의 바닥을 꼭 우물마루로 하고 싶었다. 최근 지어지는 대부분 한옥의 대청에는 바닥 난방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위에 마루를 깐다. 마루를 까는 방식은 주로 일자다. 그래서 바닥만 놓고 보면 아파트의 거실과 흡사하다.

아파트에서는 헤링본 방식으로 깔기도 하고, 간혹 퓨전 한옥 대청 바닥에 헤링본 방식으로 까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옛날 전통 한옥의 마루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비록 바닥 난방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는 부분은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우물마루가 내가 찾은 답이었다.
 
 우물마루
 우물마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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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한국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저렇게 대청마루를 만들고 싶다고 하니, 어렵거나 안 된다는 이유가 100개도 넘었다(비약과 과장임을 밝힌다). 가능할 거라고 내 귀에 속삭여준 사람이 바로 엄 소장이다.

이런 바닥에 매끈하고 규격화된 일반 마루 소재는 피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옹이도 있고, 나무의 결도 살아 있는, 그런 바닥재를 쓰고 싶었다. 과연 될까 싶었는데 엄 소장은 백문이 불여일견, 아예 나를 건축박람회장으로 이끌었다. 드넓은 박람회장을, 박람회에 참여한 수많은 마루업체를 전전할 필요가 없었다. 두세 군데를 콕 집어 안내했고 마침내 마음에 딱 드는 바닥재를 만났다. 

문제는 이 바닥재가 일반 바닥재에 비해 가격이 세다는 것이었다. 집 전체를 다 이 바닥재로 깔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엄 소장은 대청과 방 하나 정도만 바닥재로 하고, 나머지는 타일을 추천했다. 수도 없이 많은 타일 중 뭘 고를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는 두세 가지 샘플을 골라와 눈앞에 딱 펼쳐 보였다.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고르는 지난한 일들이 몇 날 며칠,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대청 바닥만이 아니었다. 나는 전문 브랜드에서 만드는 시스템 주방을 원하지 않았다. 개별 구성이 이미 완벽하게 모듈화되어 퍼즐 맞추듯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편리하고 안락한 주방을 원하지 않았다.

다소 불편해도, 옛날 시골 할머니 댁에서 쓰던 찬장 같은 그런 주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구가 많지 않으니 대대적인 수납을 고려하기보다 어디에도 없는 이 공간에 딱 맞는 그런 부엌을 원했다. 상부장을 최소화하되 찬장처럼 유리 미닫이문을 달고 싶었다. 유리는 이 집에서 80여 년을 버텨온, 방문에 붙어 있던 바로 그 유리를 쓰고 싶었다.

손잡이가 겉으로 노출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안으로 파서 겉면이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또 바라고, 바랐다. 내가 바라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자니 이게 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를 위해 엄 소장은 얼마나 많은 도면을 그려야 했는지 모른다. 
 
 대청에서 바라본 주방의 모습. 공사에 들어가기 전 우리가 합의한 최종 디자인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다. 매우 작고 좁은 주방이다. 게다가 불편하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내게 효율과 편리함을 위한 널찍함이 꼭 필요할까? 내게는 꼭 필요한 역할만 할 수 있는 이 정도 공간이 딱일 것이다.
 대청에서 바라본 주방의 모습. 공사에 들어가기 전 우리가 합의한 최종 디자인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다. 매우 작고 좁은 주방이다. 게다가 불편하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내게 효율과 편리함을 위한 널찍함이 꼭 필요할까? 내게는 꼭 필요한 역할만 할 수 있는 이 정도 공간이 딱일 것이다.
ⓒ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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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게 없었다. 화장실은? 옷장은? 신발장은? 나는 점점 요구하는 게 많아졌다. 이건 내 탓이기도 했지만, 내 탓이 아니기도 하다. 나는 갈수록 궁금해졌다.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세상 어디에서든 찾아서 내 눈앞에 보여줬던 그 누군가의 탓이기도 하다. 

나만의 집이 아닌 '우리'의 집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건축가가 할 일이 어디까지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도면만 그려주고 '바이바이'하는 건축가도 있다고 들었다. 도면을 그려준 뒤 공사현장에 가끔 들러 한두 마디 하고 가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간혹 매우 유명한 건축가들이 지은 집을 둘러볼 때가 있다. 구조와 겉모습은 매우 독특하고 멋있지만 내부 구성이 매우 흔한 경우를 종종 보곤 했다. 건축주들 말로는 건축가가 그런 것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들 했다. 그렇다면 도면과 시공의 유기적인 결합을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책을 만들 때 나는 끊임없이 상관하고 개입하는 사람이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뒤로 저자들의 원고를 처음 받아들고 그대로 책을 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하고 보완을 요청한다. 나랑 책을 만드는 동안 지쳐서 짜증과 화를 내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책이 저자의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책은 저자의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몰라줄지언정 내가 만든 책은 내가 만든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책은 내 책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책을 만드는 데 투여하는 노동의 양에 비례해 금액이 책정되는 것과는 다른 셈법이다. 원고를 받아서 그냥 만들어도, 끝없이 참견하고 상관해서 만들어도, 회사 다니면서 내가 받았던 월급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만드는 한 권의 책에 더 많은 개입과 더 깊은 상관을 마음껏 해보기 위해 아예 내 회사를 차린 셈이다. 
 
 가장 최근에 만든 책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수 년 전에 만든 책 한 권으로 인연을 맺은 저자와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은 물론 저자의 책이지만, 나는 누군가의 책을 만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의 책이면서 동시에 나의 책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집 역시 만든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가 되기를 꿈꿨다.
 가장 최근에 만든 책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수 년 전에 만든 책 한 권으로 인연을 맺은 저자와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은 물론 저자의 책이지만, 나는 누군가의 책을 만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의 책이면서 동시에 나의 책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집 역시 만든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가 되기를 꿈꿨다.
ⓒ 혜화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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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집을 함께 만드는 이들에게 나의 집이 그러하기를 꿈꿨다. 수많은 업무 리스트 중 하나가 아닌, 벽돌 한 장, 타일 하나까지, 휴지걸이 하나까지 함께 고민하며 만든 집. 나의 집이면서 그의 집이기도 한.

그럴 거면 비용을 많이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다. 간혹 너무 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닌지 돌아볼 때가 없지 않다. 하지만 내 집에 쏟아부어준 엄 소장의 정성을 어떻게 비용으로 치를 수 있을까. 이렇게 요구 많은 건축주와의 경험이 훗날 그에게 어떻게든 약으로 쓰일 수 있기를 그저 바랄 따름이다.

어쩌면 그는 다시는 이런 건축주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마음속 단단히 벼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건축가를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이냐, 마음속 깊이 늘 고마워하고 있다.   
 
 지붕을 걷어내면 이런 모습이다. 작은 집 한 채를 이렇게 사방에서 한눈에 바라보는 재미는 집 짓는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지붕을 걷어내면 이런 모습이다. 작은 집 한 채를 이렇게 사방에서 한눈에 바라보는 재미는 집 짓는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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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hyehwa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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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