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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했다. 사육사가 부주의하게 우리의 문을 잠그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동물원 측에서는 퓨마를 사로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총을 쏘아 사살했다. 혹시라도 있을 인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그런 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동물은 익숙한 곳을 가지 낯선 곳은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맹수 우리를 나온 퓨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퓨마는 동물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을 헤매고 있었다. 필경 퓨마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도 안 가 총에 맞아 죽었다.

혼돈에 빠진 퓨마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사살했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무참하게 살육당한 퓨마의 사진을 보며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퓨마의 죽음을 통해 본 동물원의 존재 이유
 
 중국 사천성 성도의 팬더기지에서 본 팬더들.
  중국 사천성 성도의 팬더기지에서 본 팬더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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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의 탈출 소동과 사살을 보면서 얼마 전에 본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청두)의 동물원이 생각났다. 사천성 성도는 삼국지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판다(Panda)의 고장이기도 하다. 청두에는 판다를 볼 수 있는 '판다연구문화기지'가 있다.

아침 일찍 가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개장 시간인 오전 7시 30분에 맞춰서 갔더니 판다들이 한참 대나무 순을 먹고 있었다. 아주 귀한 동물이라서 그런지 판다들에 대한 대접도 달랐다. 자연 상태에 가깝도록 우리를 만들어서 살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겉보기로는 우리에 갇혀 사는 판다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특별 대접 받는 중국 성도(청두)의 팬더들

그러나 성도동물원의 경우는 달랐다. 시멘트로 만든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비루하고 천해 보였다. 어느 한 동물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동물들이 놓여 있는 환경이 결코 그 동물에게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원의 유리창 안과 밖.
 동물원의 유리창 안과 밖.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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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관에는 온갖 종류의 뱀과 악어가 있었지만 활기차 보이는 뱀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가로 2미터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좁고 네모난 방에 뱀이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곳은 감옥과 다름 없었다. 세계의 어떤 동물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환경을 조금 더 좋게 꾸며 놓았다고 해서 그곳을 감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호랑이를 가둬둔 곳으로도 가봤다. 그곳에는 열대호랑이도 있었고 동북(東北)호랑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백두산 호랑이라고 부르는 호랑이를 중국에서는 동북호랑이라고 부른다. 또 러시아 사람들은 아무르 호랑이라고 하는데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시베리아 호랑이다.

시베리아호랑이의 영역은 수백제곱킬로미터에  달해

시베리아호랑이는 열대호랑이와 달리 체구도 크고 돌아다니는 영역도 넓다.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박수용 감독이 쓴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이란 책에 의하면 암컷 시베리아호랑이 한 마리의 행동범위는 4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며 수호랑이의 영역은 암호랑이의 네 배에 달한다고 한다. 또 시베리아호랑이는 먹이를 찾아서 하룻밤에 대략 100km 정도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좁은 시멘트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새끼 호랑이들.
 좁은 시멘트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새끼 호랑이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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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호랑이 한 마리가 관할하는 영역은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시베리아호랑이 한 마리가 관할하는 영역은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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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막힌 데가 없이 넓고 광활한 영역을 차지하고 사는 호랑이를 좁은 우리 안에 가둬두었다. 호랑이는 좁은 우리 안이 답답한지 계속 빙빙 돌아다녔다. 포효라도 한 번 하면 야성이 돌아올까. 그러나 그마저도 잊은 지 오래인 듯 무료한 눈빛으로 맴돌 뿐이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위엄도 당당한 호랑이가 무력한 존재가 되어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야생이 제거된 호랑이를 어찌 호랑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안에 갇혀 제 정신이 아닐 호랑이를 사람들은 즐거이 구경한다. 호랑이도 또 그걸 구경하는 사람도 정상이 아니다.

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노라니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어느 한 동물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란 존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동물원의 동물들에게서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다. 
 
중국 사천성 성도(청두) 식물원.
 중국 사천성 성도(청두) 식물원.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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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겨울에만 날아오는 귀한 두루미(학)도 조류관에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 붉은 색 점이 있어 더 특별하게 보이는 '단정학(丹頂鶴)도 있었다. 몇 해 전 겨울에 강화도 갯벌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학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자태가 고고해서 마치 점잖은 선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청두동물원의 학들은 고고한 것은 고사하고 비천해 보여 딱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죽어서야 빠져나갈 수 있는 동물원 우리는 그 동물들에게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빨리 동물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무와 풀을 보면 토할 것 같은 이 기분이 좀 가라앉을까. 나는 서둘러 동물원을 빠져나와 식물원으로 갔다.

태그:#동물원, #중국청두동물원, #시베리아호랑이, #퓨마, #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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