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상> 포스터

영화 <협상>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스릴러 장르의 매력이라면 시작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긴장감으로 몰아넣는 스릴감일 것이다. 순수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 중에는 작품의 완성도나 개연성보다는 스릴감을 최우선으로 두고 얼마나 자신을 긴장시켰느냐를 재미의 척도로 두기도 한다. <협상>은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충분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협상가 채윤(손예진 분)은 긴급 투입 된 인질극 현장에서 범인과 인질이 둘 다 죽고 마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며칠 후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윤은 태국에서 한국인 기자를 납치한 무기 밀매업자 태구(현빈 분)와의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태구가 채윤을 협상가로 지목한 이유, 출장을 떠난다던 경찰 정팀장(이문식 분)이 태구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이유, 태구가 인질을 잡은 이유를 모른 채 협상을 진행하던 채윤을 중심으로 하나씩 진실이 밝혀진다.
  
 영화 <협상> 스틸컷

영화 <협상>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협상>의 장점으로는 세 가지를 뽑을 수 있다. 첫 번째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속도감이다. 채윤이 인질들이 죽는 장면을 보게 되는 도입부 사건부터 태구와의 협상 과정까지 드라마적인 요소를 최소화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이런 속도를 위해 관객에게 제공하는 정보를 최소화시킨다. 채윤은 자신이 어떤 일에 대해 협상하는지도 모른 채 협상 테이블에 앉고 태구는 요구 조건을 숨기고 인질을 위협하며 협상을 이끌어간다.
 
정보를 던져주는 방식도 핵심만 요약한다. 많은 정보를 던져 관객에게 생각과 쉼표를 제공하기 보다는 채윤과 태구 사이의 물음표를 해소하는 정도에 그친다. 두 번째는 협상의 과정이다. 각각의 협상에서 주는 재미가 유효하다. 인질로 정팀장이 등장한다는 점이나 납치된 기자의 예상외의 정체,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잔혹하게 변하는 태구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익숙함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로움 또는 의외성 없이 익숙한 장면의 연속임에도 관객이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세 번째는 현빈과 손예진이라는 두 배우의 열연이다. 남성미가 느껴지는 외모와는 달리 부드러운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현빈은 이 작품에서 악역으로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인질범이라는 악랄한 캐릭터를 맞은 그는 첫 악역임에도 악과 선의 강약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연 있는 악역답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인질범다운 냉혹함을 보여준다.
  
 영화 <협상> 스틸컷

영화 <협상>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손예진은 현빈과 좋은 합을 선보인다. 협상가와 인질범이 능숙하게 서로의 연기를 받으면서 협상 과정의 집중력을 높인다. 두 배우가 선보이는 리듬감은 작품의 속도와 맞물려 상투적인 이야기를 흥미롭게 조율해나간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치밀함의 부족, 두 번째는 거대권력까지 나아가기엔 부족한 구성이다. 작품에서 태구는 최악의 인질극을 벌이는 악당처럼 보이지만 채윤은 유능한 협상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와서 그런지 기본이 되어 있다'는 태구의 말처럼 협상의 기본은 아는 것 같지만 이 사실이 태구라는 악역의 무게감에 어울리는 전문적인 협상가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치밀함의 부족에 있다. 채윤의 캐릭터는 자신이 유능한 협상가임을 작품에서 어필해야 함에도 불구 그러지 못한다. 그녀의 협상 과정에는 치밀함이 부족하다. 전문적인 지식이 동원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다. 채윤의 움직임과 반응은 태구가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된다. 태구의 캐릭터는 꼼꼼하게 준비를 했으나 이에 대응하는 경찰을 비롯한 정부 기관의 모습은 미숙하다.
 
손예진과 현빈이 보여준 연기의 합처럼 인질범이 벌이는 상황에 대한 경찰의 반응 또는 전문지식의 동원도 준비가 되어야 되는데 이런 치밀함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논리적인 전개를 생각하는 관객들에게는 큰 실망을 준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이런 치밀함의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다. 거대 권력을 배후로 설정한 작품들은 정부 기관과의 대결을 다루고 있기에 구성에 있어 치밀하고 철저하다.
  
 영화 <협상> 스틸컷

영화 <협상>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이야기의 규모를 크게 가져오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생각이나 개념을 촘촘하게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협상>은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에도 거대 권력을 다루었기에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는 협상의 과정이나 결과에서 피어나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아닌 분노와 경멸이라는 익숙한 감정과의 연결을 시도하기에 거부감이 든다.
 
긴장감을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 스릴감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의 측면에서 보자면 <협상>은 흥미로운 범죄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힘과 속도감을 지니고 있으며 협상가와 인질범을 맡은 두 배우의 합이 좋다. 다만 치밀함과 개연성을 생각할 때 조금은 아쉬운 영화라고 본다. 스릴감을 주는 빠른 길을 택한 건 현명하지만 영화가 주는 감정과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채우지 못한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루나글로벌스타와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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